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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동네 빵집

누군가는 ‘빵집’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제과점’이라 부른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잠시 갸웃거려보기도 하지만 빵집이면 어떻고 제과점이면 어떠랴.

대전, 군산, 서울
오랜 역사를 가진 빵집들

대전역 대합실에 가면 대전의 명물빵집 성심당이 있다. 매장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줄을 서서 빵을 구한다. 튀김소보로, 부추빵 등등. 그들은 성심당이라 쓰여진 봉투를 들고 열차에 오른다. 선물하고픈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서인지 그들의 표정은 뿌듯하기만 하다. 성심당 빵은 그렇게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과 만난다. 사람들은 그 빵에 대해, 그 빵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벌써 60년이 됐다는 얘기, 2005년 불이 났었다는 얘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간식으로 제공됐다는 얘기 등. 성심당의 본점은 대전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대전의 옛 도심에 있다. 성심당은 1956년 생겼다.

전북 군산에 가면 이성당 빵집이 있다. 그동안 다녀본 빵집 중 제일 붐비는 곳이다. 군산에 가면 그 빵집에 들러야 한다. 들를 때마다 손님들이 빵집 앞 도로변 멀리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주말에는 난리가 날 정도다. 손님이 하도 많다 보니 직원들은 늘 바쁘다. 카운터에서 빵을 봉지에 담아주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빵집이 어떻게 저리도 바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군산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이성당 빵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빵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맛있다고 느끼든 그렇지 않든물론 이성당 빵은 맛있다! 군산에 가면 이성당 빵집 앞에서 줄을 서봐야 한다. 그것이 군산이다. 이성당 빵집은 1945년에 생겼다.

서울 장충동에는 태극당 빵집이 있다. 1946년에 생긴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이 빵집이 2016년 리노베이션을 했다. 리노베이션을 한다고 할 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리노베이션을 마친 태극당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외관은 예전 모습을 유지했고, 내부는 과거의 흔적을 많이 살렸다. 1960, 70년대 분위기의 실내 풍경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홍보 간판과 카운터 안내판은 옛날식 그대로다. 카운터 안내판에는 여전히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라고 쓰여 있다. 실내 곳곳에 오래된 타일, 찌그러진 전기 스위치, 고장 난 두꺼비집누전 차단기도 살려놓았다. 참 재미있다.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작은 박물관 같은 느낌까지 든다.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옛날 빵집의 기분 좋은 추억이 하나 둘 몰려온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세월의 빵집’이란 표현이 제대로 실감 난다.

사랑 받는 빵집들의 미담,
받은 만큼 돌려주고픈 그들의 선한 마음

요즘 빵집 얘기를 참 많이 한다. 전국의 유서 깊은 빵집을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빵을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빵 맛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역사와 스토리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1960~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빵집에 대한 추억이 한두 개쯤 있을 것이다. 성심당에서, 이성당에서, 태극당에서 줄을 서 빵을 사는 사람들은 빵만 사는 것이 아니라 빵과 함께 추억을 챙기는 것이다.

수재민에 빵 오천 개 희사, 태극당서 본사에 기탁
시내 충무로3가 107에 있는 과자점 태극당 사장 신창근 씨는 8일 상오동사에서 만든 특제 ‘빵’ 대형 오천 개를 한강수재민들에게 전해달라고 본사에 기탁하여 왔다. 신 씨는 이날 아침 “이 빵이 집과 가산을 잃어버린 한강 수재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고 말하였다.
<경향신문1958년 9월 9일 자>

빵집의 추억은 주인들의 선행으로 더욱 깊어지고 더욱 오래간다. 1956년 밀가루 두 포대를 자산 삼아 대전역 앞 노점 찐빵집으로 문을 연 성심당.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그대로 둔 채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믿음으로 60여년 동안 나눔을 실천해왔다. 매달 3,000만 원 이상의 빵을 대전시내 양로원과 고아원 등에 기부한다. 성심당은 2005년 큰 화재가 발생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직원들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이 같은 기적은 모두 선행의 결과였다. 작은 빵집은 이제 직원 400여 명의 중견 기업으로, 대전의 자부심으로 성장했다.

군산 이성당 빵집 앞에는 쪼그려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빵집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채소를 파는 할머니다. 이성당은 이 할머니를 잘 보살핀다고 한다. 작지만 공존을 위한 소중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빵집에는 이렇게 빵 만큼이나 맛있고 아름다움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꾸준히 빵집을 찾는 것이다.

잊히고 묻히지 않길,
역경을 함께 해온 빵집들이여

빵집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재건을 꿈꾸는 빵집도 많다. 최근 동대구역에 삼송빵집의 매장이 생겼다. 대구 삼송빵집은 1957년에 문을 열었다. 이 빵집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조금씩 조금씩 지명도를 키워나가고 있다. ‘마약 옥수수빵’으로 유명한 삼송빵집은 이제 서울에도 진출했다. 삼송당 빵집도 성심당, 이성당, 태극당처럼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대구지역 빵집의 추억을 되새겨냈으면 좋겠다.

둘러보면 우리의 지역마다 오래된 빵집들이 있다. 서울의 나폴레옹제과, 부산의 백구당, 전주의 풍년제과, 광주의 궁전제과, 안동의 맘모스제과, 목포의 코롬방제과…. 빵을 먹으며 우리는 그 빵집의 역사를 주고받는다. 빵집의 역사는 소중한 생활사이다. 우리의 역사이고 낭만이고 문화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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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를수록 오래된 빵집들은 건물은 건물대로, 빵의 맛과 스토리는 또 그들대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미래의 유산인 셈이다. 우리 빵집들이 오랫동안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살아 남았으면 좋겠다. 오래 살아남아 100년을 넘기고, 빵집 어딘가에 빵 박물관 같은 것이 생겼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글_ 이광표 | 동아일보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홍익대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했다. 저서로 《사진으로 보는 북한의 문화유산》, 《국보 이야기》, 《손 안의 박물관》 등이 있으며, 《영혼의 새》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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