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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생애 가장 귀한 의례

필자는 경상북도 김천에서 옹기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중 ‘술두루미’가 혼례의 상징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혼례 연구에 들어서게 되었다. 김천에서는 혼인할 때에 신부 집에서 옹기로 만든 술두루미에 술을 담아 신랑 집으로 보내고, 신부는 일생 동안 그 술두루미를 소중히 보관하는 민속문화가 존재했다. 이렇게 혼례 때 보낸 술두루미는 친정이 지역사회에서 꽤 행세 하는 집안임을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혼례, 의례의 복합이자 물질문화의 집합

한국 전통 혼례를 신랑과 신부가 서로 맞절하는 교배례만으로 한정한다면 오산이다. 혼담 오가기로 시작하여 사주 보내기, 날받기, 떡 보내기, 함보내기, 초행, 대례, 신행, 근친으로 끝나는 혼례는 다양한 절차와 의례의 복합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례의 복합은 다양한 물질문화를 요구하기 마련이어서, 필요한 물품 또한 사주단자와 청혼서, 허혼서, 함, 물목단자, 가마, 관복, 초례상, 엿, 떡, 폐백 음식, 신, 모자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07년부터 5년 동안 아시아의 혼례를 비교하는 차원에서 중국과 일본, 네팔, 베트남의 혼례민속을 조사하고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필자가 서평을 쓰는 혼례 전시회 도록 〈혼례〉는 그 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도록과 관련된 전시회는 2012년 12월 12일 시작하여 2013년 2월 11일 막을 내렸다.

도록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혼인을 준비하며’, 2부는 ‘혼례를 올리며’, 3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4부는 ‘여러 나라의 혼례복’이다. 모두 263점의 도판 사진이 수록되어있고 부록처럼 첨부된 ‘사진이 들려주는 혼례이야기’에는 30여 점의 귀중한 혼례 사진들이 실려있다.

1부에는 동아시아 3국에서 본격적인 의례를 치르기 전 신랑 집과 신부 집이 상호 교환하는 데 사용한 여러 문서와 물품이 소개되어 있다. 한국에서 사용되었던 청첩장과 허혼서, 간찰, 납폐서, 동상례문서, 의양단자, 혼수함, 각종 장신구가 담겨 있고 중국의 시헌서와 가취주당도, 통서, 청혼서, 결혼증서, 차잎 통 등의 사진도 실려 있다. 일본에서 사용된 혼례품으로는 축의금 봉투와 방명록, 축의금 명부, 혼례지침서, 유이노9품이 소개되었으며 이외에도 베트남과 네팔에서 쓰인 여러 장신구와 결혼 선물도 있다.

2부는 혼례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의 진행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일제강점기 신부의 신행을 묘사한 그림이 소개되고 있다. 가마가 화려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류층의 혼례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어 중국의 결혼식 사진을 중심으로 전통 혼례와 현대 혼례를 함께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 혼례용구와 함께 요괴괴담집과 삽화가 첨가된 혼례지침서가 담겨 있지만, 1800년대나 190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3부에는 혼례 예물과 신방 차림새가 담겨있고 4부에는 전통적인 혼례복과 현대식 혼례복을 포함, 다양한 혼례복이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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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아 더 선명해진 혼례의 가치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사진이 들려주는 혼례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1933년에서 2012년 사이에 결혼한 97쌍의 상견례나 결혼식, 폐백, 신혼여행 등에 관한 사진인데, 사진을 제공한 사람들이 사진에 대해 구술한 것을 함께 정리하여 더욱 가치가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1933년의 혼례는 다양한 꽃장식이 눈길을 끈다. 다음으로 소개되는 시인 김광균의 개성지방 혼례사진은 신부가 화려한 꽃으로 장식 된 큰 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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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도록의 장점은 다양한 혼례 용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중국의 여러 소수 민족을 비롯하여 네팔까지 아우르며 문화의 다양성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문화를 아우른 경우는 많지 않다. 또 혼례 문화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통점까지 제시하고 있으며,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혼례 문화를 전시품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장엄한 장례와 달리 화려한 혼례를 도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색감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데, 도록의 물품들은 실제로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한 자태를 자랑한다. 내용상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을 통해서 보는 혼례 이야기인데, 사진 제공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한 것은 현대 박물관에서 지향해야 할 민주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민속박물관은 더욱 인간적인 박물관으로 탈권위 시대의 표상이 될 수 있다.

이 도록이 가지고 있는 장점만을 나열하는 것은 도록을 돋보이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세상 어떤 사물이나 일도 장점만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도록에서 가장 먼저 느낀 아쉬움은 -전시 담당자들이 전시품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을 최대한 경주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 제시된 전시품들의 시간적 맥락이 국가별로 상이하다는 점이다. 어떤 시기의 혼례 관련 물품이 주로 전시되었는지가 불분명하다. 19세기나 20세기 중에서 한 세기만으로 제한하든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제한하였다면 학술성에서 더 체계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에서는 20세기에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0세기 아시아의 혼례문화 정도도 적절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혼례는 인륜지대사라고 하였고, 이는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인식한 점이다. 우리 조상들은 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핵심 사건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결혼은 출생이나 성인식, 죽음보다 더욱 화려한 축제이자 잔치였다. 이 도록에서 혼례의 잔치성, 축제성이 물씬 드러났으면 혼례가 가지는 정수가 표현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혼례 잔치가 희미하게 표현된 점도 이 도록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박물관이 오랜 시간을 들여 한 번의 전시회를 준비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 짧은 시간에 훌륭한 전시회를 구성해낸, 탁월한 민속박물관의 학예관과 학예사를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턱없이 부족한 기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전시회와 짜임새 있는 도록을 준비한 여러분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전시도록 <혼례> – PDF
글_강정원 |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민속학을 전공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민속학회 회장, 한국민속학회 편집위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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