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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1994년 여름, 서울의 피서

1994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해였다. 7월 어느 날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와 통일이 멀지 않았다며 김일성의 죽음을 알렸던 해이기도 했고, 채점을 마친 학력평가 시험지를 남산 타임캡슐에 묻힐 예정이라며 걷어가기도 한 해였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1994년의 추억은 더위로, 어지간히도 지독했었는지 33일 동안 이어진 불볕더위 동안 3,027명에 달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얼마나 더웠는지 돌이켜 보면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설거지를 하려고 벽에 붙은 수도꼭지를 돌리면 분명히 찬 물을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열에 데워진 수도관에서 뜨거운 물이 나온 적도 있고, 너무 더워서 물에 적신 채 입고 나온 티셔츠가 집 문을 열자마자 바짝 말라버렸던 일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모 방송사의 대구 특파원이 아스팔트의 온도를 측정해 보겠다며 길에 달걀을 떨어뜨렸는데, 이 달걀이 순식간에 프라이가 되어 뉴스를 보던 온 식구가 경악했던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단지 내의 전력 공급 문제로 정전이 되어 더 이상 선풍기를 돌릴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재빨리 부채와 돗자리를 챙겨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 흙바닥, 돌바닥 가릴 것 없이 자리를 잡고 누워 바람을 맞았다. 이제 와서는 웃어 버릴 일화이지만 당시로서는 이 지겨운 더위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원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옛날 어른들은 어떻게 피서를 했을까.
동국세시기를 보면, 서울풍속에 남북계간南北溪間에서 탁족濯足을 한다고 적혀 있다.
남산南山과 북악산北岳山의 골짜기 물을 찾아가서 발을 씻는 것이다.
<경향신문 1978. 7. 19. 「피서의 진보」 홍승면>

자정이 넘기 직전 약 3만 여명이 모인다. 「한 여름 밤의 꿈」이 절정을 이룬다.
한결같이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
남의 시선쯤은 개의치 않는 듯 아예 윗옷을 벗어 젖힌 반라차림의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
돗자리와 베개 등 이부자리를 준비해 와 더위를 쫓는다.
여름을 보내는 「새 명소」로 한강고수부지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새벽 2시쯤 귀가행렬이 시작된다.
<경향신문 1994. 7. 29. 「르포 ’94: ‘열대야 탈출’ 한강고수부지 휴일엔 10만」 박문규>

조선 시대 서울 지역의 피서는 남산과 북악산의 계곡을 찾아가 발을 담그거나 천연정天然亭, 현 동명여자중학교 자리의 연꽃과 삼청동三淸洞, 탕춘대蕩春臺, 현 종로구 신영동, 정릉貞陵의 수석水石을 찾아 술 마시고 노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은 산업화를 거치며 점점 확장과 변화를 거쳤고, 천연정의 꽃과 삼청동의 수석도 자취를 찾을 길이 요원해 졌으니 피서의 방식도 변해갔다.

여유가 있었더라면 산으로, 바닷가로 떠났겠지만 우리 집을 포함하여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시원한 물가를 찾아 한강으로 모였다. 새로 장만한 아이스박스에 얼린 물과 수박을 담고 한강 고수부지로 떠나, 흰 사기그릇 위에 초록색 소용돌이 모기향을 피운 후 간이 모기장을 둘러쳤다. 물 냄새 나는 강바람에 꾸벅꾸벅 졸다가 새벽이 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하나 둘 들쳐 업고 집으로 향했다.

17일 하오의 한강 유원지는
올 여름 들어 최고의 더위를 피하여
물을 찾아 나선 십 만경찰 추산 인도교 쪽 3만 명, 뚝섬 쪽 7만 명, 광나루 2천여 명의 인파로 법석을 이루었다.
이 날 한낮 서울의 최고기온은 섭시 32도 4분화씨 90도 3분으로
평년보다 5도 9분이나 높았다.
<동아일보. 1962. 6. 18. 「성하盛夏의 한강에 10만 인파」>

밤 더위를 피해서 한강으로 떠났었지만 낮 더위를 피해서도 한강으로 떠났다. 1931년 한강철교 아래, 1934년 뚝섬유원지에 수영장이 문을 연 이래로 한강의 수영장은 도심 속 피서지로 지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잠원지구, 망원지구, 여의도 등 1994년 즈음엔 일곱 곳의 야외수영장이 개설되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이곳을 찾았다. 여름이 되면 친구들은 자라난 몸에 맞추어 수영복을 사러 갔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야외수영장에 대한 기억이 없다. 당시 유행하였던 아폴로 눈병의 영향으로 수영장만은 안 된다며 부모님이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대를 한 친구들을 보면 속으로 한강 수영장에 다녀왔구나라며 부러워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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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의 한강시민수영장 출처_한국정책방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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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의 한강시민수영장
2016년의 여름은 1994년만큼 덥다. 1994년 7월 24일에는 당시로서는 관측기록 사상 처음으로 서울의 온도가 38.2도를 기록하였고 2016년 8월 4일에는 36도를 넘어섰다. 그러나 2016년 서울에서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1994년 보다 더 다양하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떠나기도 하고 도심의 호텔에 투숙하기도 한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보급되어 더 이상 정전 걱정을 하며 선풍기만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며, 야외수영장은 전국에서 사시사철 문을 연다.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오히려 가을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1994년 같은 여름 피서는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글_ 이인혜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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