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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不老口

한입 가득 ‘복’ 한가득

우리나라처럼 쌈을 즐기는 민족이 있을까. 날로 먹을 수 있는 잎이라면 삼겹살 구이, 불고기, 생선회, 편육, 족발 등 밥, 고기, 생선 어느 것이든 간이 되는 된장, 고추장을 넣고 싸서 먹는다. 사계절 농사와 함께 살림살이를 노래한 『농가월령가』에서도 “아기어멈 방아 찧어 들바가지 점심하소. 보리밥과 찬국에 고추장 상추쌈을 식구들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라고 노래했듯. *능: 넉넉하게 잡은 여유

강된장에 보리밥이라도
한 쌈에 싸 먹으면 복이 되는 음식

한국인은 어떤 음식을 먹든 간에 그 음식이 가진 영양만 섭취하는 게 아니라 ‘기분’으로도 먹는다. 우리 옛말에 쌈 싸먹는 행위를 복과福裹라 하며 복을 싼다는 뜻으로 여겼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정월 대보름에 나물 잎에 밥을 싸먹으니 이것을 복쌈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쌈이라고 하면 흔히 여름철 푸성귀인 상추, 쑥갓, 깻잎 등을 펴 보리밥 한 수저 떠 얹고, 빡빡하게 끓여낸 강된장이나 고추장을 넣어 입을 크게 벌려 먹는 쌈을 떠올리지만, 실은 무엇이든 넓고 얇은 보가 될 수 있는 재료로 자잘한 음식을 넣어 돌돌 말거나 오므려 싸서 먹는다면 쌈이라 할 수 있다. 밀피에 고기나 두부, 채소를 합하여 소를 넣고 싼 정월 초하루의 만두도 쌈이 되고, 대보름에 먹는 묵은 나물이나 김도 오곡밥을 싸 먹는 쌈이 된다. 밀가루 전병에 고기, 달걀, 채소 등 여덟 가지 재료를 채 친 고명을 넣고 말은 구절판도 일종의 쌈인 셈이다. 그래서 쌈의 소재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잎들이 쌈 재료로 식탁에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채식 열풍으로 상차림에 상추뿐만 아니라 외래 채소도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쌈밥집에서 채반에 상추, 쑥갓, 실파, 깻잎 외에 치커리, 근대, 겨자잎, 청경채, 로메인, 뉴그린, 오크, 양배추 등 종과 상관없이 손바닥에 펴 놓을 수 있는 채소들이 듬뿍 담겨 올라온다. 이렇듯 채소를 많이 먹는 방법은 쌈 만한 것이 없기에 소쿠리에 담아 내는 쌈 채소는 한국인의 식탁에선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이다.

대표적인 쌈 재료인 상추는 생으로 먹는 채소인 ‘생채生菜’를 차츰 ‘상추’로 부르게 된 듯하나, 와거, 부루, 천금채, 월강초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유래가 재미있어 몇 가지 소개한다. 천금채千金菜에는 고려 여인의 한이 담겨있다. 몽고로 간 궁중 여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서러움을 달래고자 정원에 상추를 심고 쌈을 싸먹기로 했다. 그런데 상추씨를 구하지 못해 고려 사신이 가지고 온 씨앗을 천금을 주고 샀다는 전설이다. 또, 농촌의 산모가 아기를 낳고 미역이 없어 밭의 상추를 넣고 국을 끓였더니 상추의 찬 성분으로 아기가 설사하는 등 좋지 않으니 강 건너에 심으라고 하여 월강초越江草라는 이름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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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게 먹으려면 안 먹고 말 일,
임금도 즐겨 먹은 우리의 문화 쌈

상추쌈이란 자고로 입맛이 없을 때 구운 고기와 하얀 밥, 쌈장을 얹은 푸른 잎 뭉치를 입 크게 벌리고 먹는 것이고, 그 모습을 보면 덩달아 입맛이 돌아 많이 먹게 되는 법인데, 옛날에는 그 모습이 점잖지 못하다고 흉을 잡아 양반들이 자주 글로 남겼다.

1775년 영조 때 학자인 이덕무가 쓴 <사소절士小節>에서 “상추, 취, 김 따위로 쌈을 쌀 때는 손바닥에 직접 놓고 싸지 마라. 점잖지 못한 행동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쌈을 싸는 순서는 먼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그릇 위에 가로놓고, 젓가락으로 쌈 두세 잎을 집어다가 떠놓은 밥 위에 반듯하게 덮은 다음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고 곧 장을 찍어 먹는다.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서 볼이 불거져 보기 싫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자유롭게 먹기에 매력 있는 쌈을 예를 지키며 먹어야 한다니, 차라리 안 먹고 말 일이다.

하지만 쌈은 궁중에서도 먹었다. 궁중에서의 쌈은 그저 채소를 먹거나 편하게 밥을 먹으려는 방편이었다기보다 한 상 차림에서 채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양을 섭취하기 위함이었다.

궁중상추쌈은 쌈재료는 상추, 쑥갓, 세파아주 가는 파이며 쌈에 넣는 찬으로는 절미된장조치, 약고추장, 생선감정, 장독또기, 보리새우볶음, 참기름 등이 있다.

절미된장조치는 쇠고기와 표고버섯을 잘게 썰고 된장을 넣어 바특하게 끓이는 찌개이다. 약고추장은 다진 고기를 볶다가 고추장과 참기름, 꿀을 넣고 볶은 장이다. 생선감정은 웅어, 병어 등 연한 생선을 작게 토막으로 잘라 고추장에 바특하게 끓인 고추장찌개이고, 장똑또기는 쇠고기살을 곱게 채 썰어 달게 만든 장에 조린 반찬이다. 보리새우볶음은 말린 작은 새우를 기름에 바삭하게 볶아 설탕과 깨소금으로 맛을 낸 마른 찬이다.

쌈 채소의 잎을 뒤집어 펴고 밥을 조금 떠 얹은 후 다섯 가지 찬과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싼다. 쌈을 쌀 때는 억센 대가 안으로 들어가게 해야 입에 닿는 부분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쌈을 먹고 난 후에 따뜻한 계지차를 낸다. 계지차란, 계피나무 가지를 짧게 잘라 물을 붓고 끓인 차로, 약간 붉은빛이 돌며 조금 맵고 단 맛이 난다. 채소를 많이 먹으면 몸이 냉하고 나른해지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시는 차다.
삶이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간편한 음식을 찾는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식사 관습은 물론이고 찬이 없어도 충분한 영양을 취할 수 있는 쌈의 문화야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방식이 아닐까. 좀 더 다양한 음식을 간단하게 즐기는 세상을 쌈의 문화에서 엿본다.

글_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3대 기능보유자. 궁중음식 연구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식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 하는 것에서 사람의 기본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기며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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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성복 댓글:

    쌈은 시아버지 앞에서는 안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덕무의 사소절 처럼 먹으려면 안먹는게 낫겠어요.
    어릴때는 시험공부할때 쌈 먹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졸려서 공부 못한다고요.
    요즘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중에 삼겹살이 있는데, 상추를 손 바닥에 얹고 삼겹살, 고추, 마늘, 쌈장을 얹어먹는게 아주 재미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어요. 불고기를 좋아하는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삼겹살 구이와 함께 하는 쌈도 충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식중의 하나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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