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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시대를 앞서간 명품 도록

1980년대 초에 작가 김주영이 쓴 소설 <객주>가 전파를 타고 TV 드라마로 방영된 지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하지만 얼마 전 리메이크된 <장사의 신-객주 2015>는 오랜 세월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낯설지 않게 우리 앞에 다가왔다. 각종 사극이 퓨전·판타지와 더불어 마치 홍수라도 난 것처럼 범람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전통 상인이나 상업을 주제로 한 스토리 라인이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간편하게 역사를 만나는 ‘소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우선 소설 <객주>에 담겨 있는 두 가지 소재를 들 수 있다. 하나는 1960~70년대의 한국 상업사 연구가 축적한 초기적 성과이다. 거칠게 요약해 본다면, 조선후기 상업발달 가설과 민중사 연구의 시각이 적절히 결합된 형태로 소설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작가가 직접 전국 각지의 시장을 누비며 발품을 팔아 수집한 견문의 기록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만 굴려 써나간 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음은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물론, 소재만 갖춘다고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로서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탄탄한 플롯을 통해 각종의 재료를 요령 있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가 버무려져 작성된 소설이기에, 드라마로, 또 만화로 인기를 누리며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다시 말해, 소설은 독자에게 즐거움이나 감동을 주기 위해 써내려간 문학 작품이지,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자나 시청자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접하는 정보를 당시의 생활이나 역사적 사실과 직결시켜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해방 이후의 장터에서 얻을 수 있는 구전이나 견문은 그보다 100년 앞선 19세기 후반의 것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객주>가 세상에 나온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경제사 연구는 그 깊이를 한층 더하였고, 보다 실증적인 성과가 다수 양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30년도 넘게 지나 다시 돌아온 그때 그 드라마를 시청하는 역사가의 눈초리에는 여전히 의심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소설이나 드라마와 달리 그나마 당대의 현실을 지금의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는 유물이나 유적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 연구자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각종의 고도서나 고문서 등의 문헌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통 상인이나 상업에 관한 종이 뭉치는 고서 또는 골동품 시장에서 헐값으로 거래되기 일쑤였다. 아마도 대부분은 폐지나 불쏘시개의 형태로 사라져버린 듯하고, 최근에 어렵게 빛을 보곤 하는 것은 병풍에 배접되어 현존한 경우 정도이다. 조선 시대에 장사를 한다는 것이 사농공상 중의 말업末業으로서 천시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상인이나 후손들이 거래나 청산이 완료된 문서를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문서와 장책, 유물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도록 <한국의 상거래, 商>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4년 11~12월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상인·상업·시장 등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 기획되어 열렸고, 그 전시 도록으로서 <한국의 상거래, >이 발간되었다는 점은 꽤 주목할 만하다. 상업이나 시장에 관계된 각종의 유물을 한 자리에 모아서 전시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선구적 시도였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주요 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 대여한 각종의 자료가 ‘시장가는 길’, ‘시장과 상인’, ‘거래관행’, ‘시장의 민속’, ‘상거래의 역사’, ‘시장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여섯 가지 주제로 전시되었고, 도록에도 수록되었다.

그 내용 중에서 특히 상인에 관한 문서는 실로 다양한 층위에 걸쳐 있다. 국내 상인 중에서 가장 상층이었다고 할 수 있는 서울의 칠주비전七矣廛, 즉 시전市廛 조직이 남긴 문서, 중간층 또는 객주에 해당하는 선여각주인船旅閣主人이 남긴 문서, 최하층의 보부상褓負商이 남긴 문서 등과 더불어, 국가에 특산물을 납품할 권리를 가졌던 공인貢人 관련 문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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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특별전 도록 <한국의 상거래, 商>의 표지
그 중에서도 지역 행상들의 조직이 남긴 보부상 관련 문서 중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특별 전시의 진행을 위해 곳곳의 개인 또는 기관으로부터 대여하여 균형 있게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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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거래, >의 22쪽에 수록된 칠주비전하왕양주등소七矣廛下往楊州等訴
팔주비전八矣廛, 소위 육의전과 같은 개념에 해당함 중에서 중국산 비단을 취급한 입전立廛을 제외한 일곱 전에서 다락원樓院 등에 세워진 장에 의해 이권이 침해 당하고 있음을 관에 호소한 소장訴狀이다. 병풍에 배접되었다가 현존한 문서에 해당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문서 및 장책을 비롯하여 각종의 민속 유물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수록하면서도, 각각의 주제별로 대표성을 가지는 문헌을 엄선하여 배치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업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대한천일은행의 장부현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소장까지도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그 포괄성의 정도를 실감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상거래, 商>은 일반 대중의 구미에 맞을 뿐만 아니라, 전통 시대의 상업 관련 연구를 위한 입문서나 초급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특별전을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에 국립민속박물관의 학예연구사로 재직하고 있었던 정승모 박사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회보다 2년여 앞서 발간된 그의 스테디셀러 <시장의 사회사>1992가 전시회의 골격을 제공하였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의 상거래, 商>이 도록으로서의 한계로 인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시장의 사회사>에 담긴 내용으로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장의 사회사>의 경우에도 지면상 실리지 못한 각종의 도판을 <한국의 상거래, 商>에서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두 책은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한국 상업사와 민속학 분야의 연구에서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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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도록 <한국의 상거래, 商> – PDF

 

글_ 조영준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 조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위를 취득하였으며(학사·석사·박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HK연구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경제사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 및 번역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요 저작으로 <조선 후기 왕실재정과 서울상업>2016, <장돌뱅이의 조직과 기록: 예산·덕산·면천·당진 편>2015, <시폐市弊: 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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