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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돌이표, 복고 문화

2016년이다.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새로운 증후군이 나타날 만큼 우리는 디지털 기기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없는 하루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더 발전된 기기도 아닌, ‘과거’. <응답하라 1988> 등의 드라마를 보고, 90년대 음악을 다시 듣고, 추억 속의 분위기로 연출된 공간을 찾는다. 갈증이다. 무엇에 대한 갈증일까? 소비자 심리를 연구하는 가톨릭대학교 소비자학과 김경자 교수를 만나 이 현상에 대해 들어보았다.
   

숨 가쁜 현대인은 어제가 그립다

 
우리는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그때를 그리워하며 당시에 사용했던 물건들에 애정을 갖는다. 이런 그리움은 개인의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금기를 그리워하고 있고, 우리는 1970~1980년대의 고도성장 시기를 줄곧 떠올리곤 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파고든 복고는 이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유행이 아니라 소비 문화의 한 축으로서 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경험하는 복고 문화는 조금 다르다. 어머니가 나팔바지를 입던 몇십년 전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나의 어린 시절처럼 멀지 않은 과거에서 복고를 찾고 있다. 주기가 당겨진 것이다. 왜일까?
 
“최근의 복고 문화는 우리 삶의 ‘현재’가 잘 반영되어 있어요. 저성장 시대,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청장년 계층의 절망감, 너무 빠르고 복잡해지는 일상으로 인한 피로도가 옛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땐 정말 단순하고도 행복했었잖아요. 내가 잘 모르는 먼 세계가 아니라 한 번은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비교적 기억이 뚜렷한 과거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요즘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선호하고 빠르게 취하려는 성향이 짙다. 이를 ‘뉴이즘Newism’이라는 말로 부른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려면 그것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사회는 사람들의 인지 속도를 뛰어 넘은 채 변화해 가고 있고, 사람들은 그 속도를 따라잡느라 아주 피곤하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고, 우리가 사는 사회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복고 문화’가 등장했다는 얘기이다. 김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이런 일반적인 정서를 이용한 기업의 마케팅도 한몫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복고 문화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요. 어떤 개념이 트렌드가 되기까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습니다. 트렌드 리더가 이뤄낸 문화를 기업이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따져본 뒤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벌여야 비로소 대중적인 트렌드가 되죠. 그러니까 지금의 복고 문화는 상당히 상업적인 계산을 바탕에 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죠.”
 
기업이 이러한 복고 문화를 잘 적용하는 예로는 노래 리메이크가 있다. 과거에 흥행했던 노래를 편곡하여 발표하면 이미 그 노래에 친숙한 사람들이 별다른 적응 과정 없이 노래를 듣게 되고, 자연스럽게 인기를 얻게 된다. 이처럼 과거에 성공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현대적 요소를 덧붙이는 방식을 활용하여 기업은 상품을 출시하고 마케팅을 벌인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한 마케팅이라 해도 대중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므로 복고 문화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결국 대중인 셈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생각해 볼까요. 한 시대를 회고하는 이야기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전해졌고, 그 시절의 진솔한 인간 관계를 그리워하는 대중이 이를 끌어안았죠. 이것이 복고 문화를 촉발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현대 사회의 피로도, 과거의 안락함, SNS 매체 등이 한데 어우러져 일어난 문화라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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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5집에 실린 ‘붉은 노을’은 2008년 빅뱅이 리메이크 하면서 젊은 세대들에도 크게 흥행했다. 과거와 현재의 감성, 마케팅이 세대를 아우르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복고 트렌드다.
 
 

늘 다르다, 오늘이 섞인다

 

복고 문화란,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과 향수를 소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반복되는 복고 문화를 싫증 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걸까?
 
“레트로 풍의 찻잔이나 옷감이 유행한다 해도 디자인이나 컬러, 소재는 현대적 취향이 가미되어 있어야 해요. 복고를 좋아한다는 것은, 과거의 어떤 시절을 모조리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특정한 부분 만을 좋아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과거의 것을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새 옷을 입히는 작업이 중요해요. 각 시절마다 유행한 복고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상, 그리고 그 시대가 추구한 가치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 사고 싶을 때, 우리는 항상 갈림길에 선다.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것인가, 유행을 좇으며 대중에 소속될 것인가. 그 사이에서 자신만의 타협점을 찾고, 최종 선택을 하게 된다. 복고 문화도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의 타협점을 찾아냈기 때문에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과거의 어떤 시점을 맹목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자리에 꼭 필요한 과거의 어떤 모습을 끌어당기는 것.
 
“복고 문화라는 것이 최소 과거의 몇 년 전을 말하는 걸까요? 또 얼마나 회고적인 요소가 복고 문화라고 불릴 수 있는 걸까요? 애초에 복고 문화가 진짜 있기는 한 걸까요? 객관적인 잣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측정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어요.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면접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패턴을 통해 트렌드의 이유를 파악하는 거죠.”
 
면접법이란, 다수의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최소 세 번 이상 묻는 방법이다. 세 번이나 묻는 이유는 그 행동의 진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이고, 이것이 축적되면 집단의 뚜렷한 경향을 알 수 있다. 또 포털 사이트의 유행 키워드나 검색어를 분석하는 방법도 최근에 많이 쓰이고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어떤 과거의 시점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현재의 시점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순간과 당시의 시대상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갈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의 이상향이 담겨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어요. ‘새로운 것은 반드시 뛰어나다’는 개념이 흐려졌고, 신기하고 궁금한 것을 왜 참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SNS를 통해 세계를 만나는 우리에게 일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던 외국으로 여행도 이제는 시들해 졌어요. 그러다 보니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일에 열광하죠.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것에 식상함을 느끼고 실망한 우리가 찾은 것이 바로 복고 문화이다. 그것도 그저 과거의 패러디가 아닌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복고 문화. 우리말 ‘온고지신’이 더 합당하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복고 문화를 비롯해서 사회의 중요한 트렌드를 기록으로 남긴다면, 과거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현재의 민속을 기록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은 있어요. 범위가 아주 넓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대중적 소비’라는 관점을 다루면 어떨까 해요. 하나의 트렌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대중 소비 현상과 이유를 분명히 하려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반추해야 하니까요.”
 
‘소비가 나를 규정한다’는 말은 ‘소비를 이해하면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민속에서 소비 트렌드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만큼 정확하게 현재성을 말해줄 수 있는 항목이 드물기 때문이다. 복고 문화를 민속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좀 더 큰 맥락, 대중 소비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편이 타당하다고, 김 교수는 말을 보탰다.
 
“트렌드란 결국 소비의 문제거든요. 민속을 조사하거나 기록할 때 대중 소비 성향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그것이 복고 문화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뚜렷한 소비 성향이 우리 사회를 지배할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주체인 인간을 중심에 놓고 변화를 기록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를 신중하게 바라보니 현재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말은 과거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이라는 게 생각만큼 빨리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과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무엇인가를 끌어낼 수 있다. 복고 문화란 과거의 형상을 빌린 현재의 모습이다. 복고 문화가 지닌 현재적 의미를 잘 기록하면 우리의 삶이 담긴, 즉 민속의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음은 틀림이 없다.
 

김경자 | 가톨릭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글, 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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