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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관우의 깊은 잠을 깨우다

서울 숭인동에는 신으로 추앙된 삼국지의 관우를 제사하는 사당인 ‘동관왕묘’가 있다. 임진왜란 때 관우가 조선과 명을 도왔다 하여 그를 기리기 위해 1601년선조34에 건립한 사당이다. 자그마치 400여 년 전의 일이다. 이곳 벽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 그림 7점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박물관에서는 이를 입체적으로 조사, 연구, 그리고 보존처리하였다. 400년이 넘도록 잠들어있던 관우를 깨운 세 명의 연구자를 만났다. 보존처리의 전지연 학예연구사, 민속학의 장장식 학예연구관, 미술사학의 김윤정 학예연구사가 그 주인공이다.

3년 전,
잠들어있던 <삼국지연의도>를 만나다

<삼국지연의도>는 중국 고전 소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의 명장면을 골라 그린 19세기 후반의 지본 채색화이다.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관왕묘의 동·서무를 장엄하는 데 사용한 이 그림은 민속학자 故 김태곤 교수가 수집하고, 부인 손장연 여사가 2012년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 당시 이 그림은 원래 장엄 양식인 창호 형식의 벽체로부터 떼어낸 상태였으며 열화가 심해 보관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Q. 삼국지연의도를 처음 만났던 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전지연 학예연구사이하 전지연_이 유물을 처음 본 것은 2012년 겨울이었어요. 기증 담당자에게 ‘빨리 내려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얼른 달려갔죠. 담당자가 저에게 꾸깃꾸깃 접혀있는 ‘무엇인가’를 보여주면서 이걸 어떻게 보관하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살펴보니, 10등분으로 접혀있는 거대한 종이뭉치였지요.

조심스럽게 펼치기 시작했는데,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아서, 조금씩 들춰볼 때마다 종이 편이 뚝뚝 떨어지는 정도로 손상이 심한 상황이었어요. 모두 펼쳐보니 2.5m 정도 되는 그림이 5점, 부분만 남아있는 그림이 2점, 이렇게 총 7점의 그림이었어요. 크기도 어마어마 했어요. 훼손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그림인지 예측하기 힘들었고요. 일단은 더 이상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 담당자에게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대략 찍은 사진으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보여지는 그림만으로는 막연히 <삼국지연의도>의 실물이 아닐까 추측했어요. 문득 몇 해 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했던 ‘우리의 삼국지 이야기’에 ‘삼국지연의도 병풍’을 대여해주고 받았던 전시 도록이 떠올랐어요. 그 도록에는 1911년 동묘를 방문하고 기행문을 쓴 독일의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와 안드레 에카르트의 저서 내 도판이 실려 있었는데, 한눈에 그 도판 그림이 우리 관에서 기증받은 유물과 도상학적으로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보존처리가 진행되어 그림이 온전하게 보일 때쯤 ‘이 그림이 그 그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죠.

이건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다 싶어 박물관 내 진행하고 있는 ‘박물관형 연구’에 서화보존, 민속학, 미술사학의 공동 연구를 제안했고, 그렇게 장장식 학예연구관, 김윤정 학예연구사와 함께 <삼국지연의도> 및 국내외 관왕묘와 관우신앙 관련 자료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장장식 학예연구관이하 장장식_2012년에 무신도와 같이 기증된 그림이에요. 무신도는 그나마 원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눈길이 갔던 반면 삼국지연의도는 뜯겨나간 부분도 많았고, 접혀 있었던 터라 알아볼 수가 없었죠. 이런 그림을 전지연 학예연구사가 보존처리를 해낸 겁니다. 이 수고로움은 이후에 또 이런 그림이 입수되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를 학습한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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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증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 감쪽같이 복원됐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전지연_그림 하나를 펼치면 작업하는 방이 꽉 찰 만큼 그림의 규모가 커요. 유물 한 점의 보존처리 작업을 마친 뒤 건조판에 붙여 세워둬야 겨우 다음 유물의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죠. 이렇게 2014년 한 해 동안 4점의 유물을 작업했고, 2015년에는 제일 크고 상태가 가장 험한, 약 170cm의 폭과 250cm 높이 유물의 보존처리 작업에 돌입했죠. 총 6겹으로 이루어진 종이가 모두 갈라져 들뜨고 바스러져 있었어요. 종이 한 켜 한 켜를 어떻게 접착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였어요. 종이라기 보다는 흙에 가까운 상태였죠. 결국은 사람의 손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 작업만 2~3개월을 진행했어요.

Q. 보존처리, 복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전지연_원형존중입니다. 보존처리자가 함부로 원형을 변형시켜선 안되죠. 원래 그림 주변을 꾸며주는 파란띠가 있었다면 그 파란띠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복원해 내는 것이 가장 올바른 보존처리랍니다. 처리하기 번거롭다고 해서, 그림부분이 아니라고 해서, 그림 주변을 꾸며주는 장황 부분을 처리시 없애 버리면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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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처리 작업 중인 <삼국지연의도>.왼쪽 그림의 사방을 돌아가며 장식된 19세기 후반 청색 능화판지 회장.오른쪽

 

보존처리부터 민속학, 미술사학을 아우르는
융복합 박물관형 연구가 시작되다

 

이번 연구의 특징은 보존처리의 진행과 동시에 보존처리 및 물질을 분석하는 보존과학, 민속학, 미술사학 등 관련 전공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구팀이 꾸려져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유물의 발굴과 분류, 사용된 안료 분석, 민속학적, 미술사학적 의미 등에 대한 연구결과물이 도출되었다. <삼국지연의도>가 관왕묘 좌우의 동·서무를 장엄하는 데 사용된 것을 확인하였고, 나아가 이 그림이 동관왕묘에 합사된 북관왕묘, 서관용묘, 남관왕묘의 것이 섞여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울러 <삼국지연의도>에 남아있는 청색 만자문 능화판지 회장에 대한 연구를 통해 19세기 후반 장황의 제작기법을 알 수 있는 단서도 찾았다.

Q. 어떤 계기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나.

장장식_관우신앙에 대해 논문을 쓴 적이 있기 때문에 그림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고, 김윤정 학예연구사는 평소 민화 등 그림을 연구하는 분이니 그쪽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오준석 학예연구관이 안료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안료분석은 정황과 추측으로 이루어진 연구결과에 주요한 증거가 되어주죠. 그 역할을 오준석 학예연구관이 해 주었습니다. 저희는 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어요. 조직을 억지로 맞추면 깨지기 쉬운데 우리는 달랐죠.

Q. 각 분야에서도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 텐데.

장장식_‘지벽화가 있었다.’라는 이 한 줄을 찾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저나 김윤정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없었던 것을 가시화해야 합니다. ‘이 그림이 있었다.’, ‘이 그림이 어디에 있었다.’, ‘이 그림이 어디에서 어떻게 쓰였다.’라는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에 그 근거가 될만한 자료들을 일일히 찾아내야 했지요.

겨우 찾아낸 ‘지벽화가 동서무에 봉안되어 있었다.’라는 말이 어느 시점부터 보이지 않기도 했어요. 다시 조사를 벌인 끝에 그 말이 ‘회랑에 있었다’라고 바뀌었다는 걸 알아냈죠. 시대에 따라 사용하는 용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생긴 차이였어요. 이렇게 추적하고 추적하면서 인문학적인 연결을 찾아가는 것이 저희 분야입니다. 미로 찾기죠.

김윤정 학예연구사이하 김윤정_과학적인 분석 데이터는 미술사의 부족한 실증자료를 보완해줍니다. 양식적으로 보아 19세기로 추정해 놓았는데 당시에 사용한 재료가 아니라고 하면 사상누각이 되어버리니까요. 작화에 대한 기록과 그에 맞는 작품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옛 방식대로 그려넣을 수 있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그러한 정황을 확정해 주거나 또는 뒤바뀌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줘요. 그래서 유물이 가진 사실 정보를 찾아가는 입장에서는 과학적 분석이 중요해요.

장장식_연구결과를 예상하고 연구하지는 않아요. 다만 중요한 유물일 것이라는 짐작을 중심으로 퍼즐을 맞춰가듯 나아가는 것이었죠. 우리가 세운 결과들의 근거는 바로 보존과학팀의 공적입니다. 엄청난 유물이었다는 것을 거꾸로 알게 됐으니까요. 이 분들이 매일 엎드려서 그 큰 그림을 하나하나 손 본 덕분에 얻을 수 있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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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도> 보존처리와 그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 김윤정 학예연구사, 장장식 학예연구관, 전지연 학예연구사왼쪽부터

 

미술도 역사의 한 부분,
과학적 데이터로 힘을 싣다

 

Q. 이번 연구에서는 그 과학적 증거가 ‘안료’일 것 같다. 연구에 있어 안료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전지연_보통 파란 능화판지 회장이라 하면 쪽으로 물들이고 밀랍을 칠해 능화판으로 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요, 삼국지연의도는 안료 분석 결과, 유기질 쪽이 아닌, 무기질 안료인 울트라마린블루, 프러시안블루, 탈크, 석고 등이 검출되었어요. 그리고 밀랍이 검출되지 않아 제작 방법도 고증할 수 있었답니다. 그림에서 검출된 셸레즈그린Scheele’s green과 회장에서 검출된 울트라마린블루 안료로 그림의 제작 시기를 1860년대 이후로 추정할 수 있었어요.

김윤정_오준석 학예연구관이 진행한 안료분석은 사실 제 연구에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이미 <삼국지연의도>를 주제로 한 전시나 논문이 나온 바가 있기 때문에 화면 구도나 이 도상이 어디에서 연원했는지 등 미술사적인 부분에서 다룰 수 있는 대부분의 정보가 나온 상황이었죠.

저희가 한 연구는 박물관형 연구의 일환이었고, 저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속된 미술사연구자로서 이 유물을 우리 박물관에서 필요로 하는 각도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약간은 풍속사적인 시각으로 보려 했습니다. 논문의 첫 장에 사당이라는 공간에 어떤 그림들을 장식했나 하는 것을 쓴 것도 그런 노력이죠. 그리고 미술사적인 시각으로 제작시기와 작자를 추정해 보았습니다. 두 번째 부분을 쓰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이 안료에 대한 분석자료입니다. 어떤 안료를 썼는지에 따라 정황을 살펴 시대를 좁히고 집단을 예측할 수 있거든요.

이를 토대로 <삼국지연의도>에 쓰인 안료 중 1860년대에 서양에서 수입한 합성 안료인 셸레즈그린Scheele’s green을 통해 <삼국지연의도>가 제작된 때를 1860년대 이후로 추정할 수 있었고, 이러한 년도 추정을 토대로 화풍의 검토를 거쳐 누가 이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데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확한 화가를 지칭하지는 못하지만 도화서 화원들이 개입했을 정황을 뒷받침 해주는 사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궁중에서 화원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등 화원제도에 대한 상을 갖게 된 연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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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연구와 전시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전지연_저는 이번 작업이 너무 행복했어요. 작업을 통해 가설이 입증되고, 가려진 이야기를 조금씩 알아내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유물을 만난다면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존처리를 위해 종이를 하나하나 붙이고 궂은 일을 함께 했던 서화보존실 팀원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팀워크가 다져진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김윤정_미술사라고 하는 것이 결국 역사를 이루는 한 부분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이번 사료를 통해 신앙사 쪽으로 의미를 가졌을 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역사에 그림이 어떻게 존재했고, 또 왜 존재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장장식_민속 연구에는 ‘기록’ 내지 ‘문헌’, 그리고 ‘과학적 분석 자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지금까지는 구술사적 자료에 근거한 관습과 관행에서 의미를 찾아야 했는데, 여기에 과학적 자료가 제시되니 더욱 분명하게 추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 재미있는 연구였습니다. 민속은 기록이 적습니다. 구전에 의존하면 와전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이 문헌으로 적힌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 그 발굴을 위해 민속학계는 조금 더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별전 <신이 된 관우 그리고 삼국지연의도>는 2016년 7월 4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열리며 연구의 자세한 내용은 유물보존총서 <삼국지연의도>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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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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