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마치 약점처럼, 나약해지는 말이 하나쯤 있다. 그것은 어떤 경험이나 충격에 의해, 혹은 살아오며 느꼈던 숱한 감정이 공고히 쌓여 이루어진 말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별’, ‘병’, ‘졸업’ 등이 그렇다. 그러나 그런 것과 별개로, 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바로, ‘엄마’다. ‘엄마’라는 말은 참으로 사소하고 평범하면서도 늘 애틋하다. 엄마에 얽힌 사연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를 낳고, 나를 기른, 항상 나와 같은 터울로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누구에게나 같다. 늘 같은 나이 차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고, 나보다 조금 빠르게 늙어가는 사람.
박혜령 학예연구사가 추천하는 유물 ‘버선본’과 ‘어머니의 편지’에도 엄마의 한없이 고운 마음이 담겨 있다.
엄마의 마음 ‘버선본’
“제가 소개할 ‘버선본’과 ‘어머니의 편지’는 2012년 당시 99세였던 이석희 할머니께서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신 유물입니다. 당시 100년 전, 양반가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는 과연 어떻게 자랐을까 알아보기 위해 이석희 할머니를 만나 뵈었지요. 그분이 살아오셨을 100년이란 시간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얼마나 격동적으로 움직였던 때였어요. 그런 파란만장한 세상의 변화에서 여자의 삶은 어땠을지 할머니 말씀을 통해 알아보고자 했죠.”
이석희 할머니는 1914년 양평에서 태어났다. 국권 피탈을 당했던 1910년으로부터 불과 4년 후다. 그 후로 한반도에 벌어졌던 그 모든 일을 몸소 겪으며 지금의 시대까지 살아왔다. 특히 나라를 위해 일했던 양반가의 딸로 태어났으니 나라의 형세에 따라 집안의 굴곡이 여실히 반영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물건들을 참 잘 보관하셨어요. 깨끗하고 상하지 않게. 세월 때문에 여기 약간 좀먹은 것 이외에는 원형 그대로 아주 잘 보존되어 있죠.”
박혜령 학예연구사가 보여주는 버선본은 이석희 할머니의 어머니가 딸을 위해 손수 지어주신 버선본이었다. 버선본이란 버선을 만들기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버선의 모양을 만들어놓은 종이로, 밑그림과도 같은 것이다. 이석희 할머니의 어머니는 시집간 딸의 집에 와서 이 버선본을 만들어놓고 가셨다.
“당시에는 남자건 여자건 하얀 버선을 신었어요. 지금의 양말처럼 신었으니 얼마나 많이 필요했겠어요. 가족들의 버선을 만드는 일은 다 그 집안의 엄마 몫이었죠. 한 집안의 엄마이기도 한 자신의 딸을 위해 이석희 할머니의 친정어머니가 이렇게 직접 버선본을 지어주신 거예요.”

뒤꿈치에 덧댄 누런 종이로 버선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갑인생 복본, 슈명장슈, 부여셕슝, 자손창셩’이라 적혀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버선본 중앙에는 ‘갑인생 복본 / 슈명장슈 / 부여셕슝 / 자손창셩’라는 글자가 한글로 곱게 적혀있다. 옛날에는 버선본에 이렇게 덕담을 적어놓곤 했다. ‘갑인생 복본’이란, 이석희 할머니가 태어난 해인 ‘갑인년’과 버선본의 또 다른 말인 ‘복본’이란 말을 붙여 적은 것이고, ‘슈명장수’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부여셕슝’은 중국의 석숭이라는 사람처럼 부자가 되라는 뜻으로, 그리고 아이를 많이 낳아 화목하라는 마음을 담아 ‘자손창셩’이라는 말까지 적었다. 엄마가 딸의 행복을 빌어주는 가장 따뜻한 말들이다.
“제일 마음 짠한 부분은, 바로 여기 뒤꿈치예요. 원래의 하얀 한지와는 다르게 누런 종이로 덧대어져 있죠. 이렇게 종이를 덧댐으로써 더 큰 발을 위한 버선도 만들 수 있으니 다른 식구들의 버선도 다 이걸로 지으셨죠. 딸의 노고를 헤아린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걱정과 애틋함으로 채워진 ‘어머니의 편지’
어머니의 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편지에도 듬뿍 담겨있다. 194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 쓰여진 딸에게 쓴 어머니의 편지글이다.

며칠 전 편지를 부쳤는데, 보았느냐.
아쉽게 떠나던 그 날, 비 내리는 중에도 잘 갔는지 염려가 되었는데, 잘 갔다니 다행이다.
여독은 없는지, 오죽 고단했겠느냐.
자호는 잘 노느냐. ‘자호’는 이석희 할머니의 둘째 딸.
갑작스레 만나서 긴히 대화나 보고 싶던 정도 나누지 못했는데 차는 어이 그리 빨리 가니.
창을 붙들고 보려고 해도 안 보이더라. 나중에 얼굴만 보았다.
너만 괜찮으면 좋다.
회충은 없어졌느냐. ‘비자’가 특효약이긴 하나 독하니 먹지는 말아라.
대신 배에 헝겊이라도 대어서 바람 안 들도록 주의하거라.
가족들 모두 여전하고, 아이들은 건강하냐.
자호가 더 밟힌다. 옥수수가 익어 먹노라니 인호 생각이 난다.
중략
먼데 다니지 말고, 무엇이든지 이고 다니지 말아라.
배급 쌀도, 돈 들여서라도 사람 불러 들게 해라.
허투루 듣지 말아라.
하략
*박혜령 학예연구사의 해석을 편집자가 문장화 함.
요즘은 자녀에게 훨씬 더 많은 시간과 품을 들일 수 있는, 들여야 하는 환경이 되었다. 아이의 학습부터 생활 습관, 대인관계, 여가 시간까지 엄마의 몫이다. 엄마의 노력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신념으로, 오로지 아이에게 몰입한다.
하지만 먹고 살기 바빠 고사리 같은 아이 손이라도 빌리며 살아야 했던 그 옛날, 별것 해준 것 없이 잘 자라준 딸이 먼 곳으로 시집을 가면, 엄마의 미안함과 애틋함은 오죽했을까. 게다가 이제부터 자신의 삶처럼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쓰럽고 애처로웠을까. 목소리 듣고 싶을 때 전화를 걸거나, 보고 싶다고 찾아가 만날 수도 없었던 그 시절에 몇 개의 글자로 딸을 걱정하고, 버선본 하나로 딸에게 보탬이 되어주려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귀하고 애틋한 것인지 감히 짐작해 볼 뿐이다.
“결혼 초에는 잘 몰랐는데, 아이가 크면서 엄마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요. 사실 딸과 엄마는 딸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많이 티격태격하잖아요. 하지만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서로를 헤아리고, 의지하면서 친구처럼 지내게 되는 게, 바로 엄마와 딸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석희 할머니도 어머니 얘기할 때엔 목소리가 흔들리셨어요. 100세 할머니에게도 엄마는 엄마인 거죠. 영원한 엄마.”
이석희 할머니는 ‘버선본’과 ‘어머니의 편지’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조만간 따뜻함이 가득 담긴 그 기증품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나볼 기회가 있길 기대해본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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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참회의 마음이 드문드문 올라오는 기억에 밤새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일어났습니다
힘들어도, 부모님께 너무나 많은 불효로 지낸 세월이 있어도 그 기억들 참회하며 낳은 자식들 부모님 마음으로 잘 키우며 내 마음 잡아보려고 아이들 프로그램을 신청하려 들어왔다가 읽어 내려갔습니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다 나아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래된 것들 속에서 남은 세월을 토닥이며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자꾸 눈물이 납니다.
아직 자식은 없으나 100세 할머니에게도 엄마는 엄마인 거죠 란 말이 가슴에 뜨겁게 들어옵니다.
“알아서 할께, 내가 애가?”
무뚝뚝한 남편과 무심한 두 아들들 틈에서 세월을 정면으로 맞은 듯한 요즈음 엄마의 어깨가 한없이 초라해 보입니다.
“내가 엄마 친구 역할을 해야대. 나는 막내니깐” 이란 생각으로 애교를 떨려고 매일 다짐하지만 쉽지 않은게 엄마와 아들관계이네요.
사는게 바쁘단 핑계로 중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젠가는 그리워질 엄마의 잔소리를 조금은 즐겨 보아야 겠습니다.
엄마라는말은 언제들어도 가슴이 먹먹….
그시절에 그 힘든 시절 엄마는 정말 힘드셨을텐데~~~
그사랑이 묻어납니다
제가받는 사랑을 알기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삽니다
사랑해요! 엄마
과거나 현재나 어머니의 입장은 시대가 변했어도 같은것 같습니다
중요한 박물관의 자료 보고 읽으며 마음이 짠해지는군요
무언가 오랜 우리 역사의 한부분에기운이 느껴 지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