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이 죽었다. 이제 다 아는 사실이다. 몇 년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날짜는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 그가 만우절에 죽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만우절… 홍콩… 만다린오리엔탈 호텔…투신…이라는 단어가 장국영의 죽음에 함께 갇혀버렸다. 그래서 장국영이 죽고 나서 만우절이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장국영의 죽음을 함께 떠올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한 소설가는 장국영 죽음을 소설로 썼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이다.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다. 이 소설은 다른 단편소설들과 함께 2005년에 발간된 동명의 소설집에 실려 있다. 장국영이 2000년대 초반에 죽었고 얼마 되지 않아 작가가 그것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채팅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주인공 남자는 ‘이혼녀’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자와 채팅을 하게 된다. 남자의 닉네임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남자가 이혼했음에도 ‘이혼남’이라는 닉네임을 쓰지 않는다는 것뿐. 둘 사이에 여러 가지 우연이 겹친다. 그들은 13년 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영화 – 장국영의 <아비정전> – 를 봤으며, 같은 날에 결혼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면, 여자가 만우절에 장국영이 죽었는데 자기도 만우절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말하는 것. 그러자 우리의 주인공 역시 만우절에 결혼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 그것도 같은 해의 만우절에. 그것으로 모자라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고, 제주에서 묵은 숙소도 일치한다.결혼식 식장만은 다르다고.
이 남자는 누구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은 거의 없다. 이혼한 남자라는 것 정도?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 정도? 그전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는 것 정도? 그 이전에는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것 정도? 이름도, 나이도 밝혀지지 않는다. 닉네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남자가 있는 곳은 가상의 세계다.
남자가 PC방에서 일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몇 가지가 없는데 PC방 특유의 관계 맺기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PC방을 택했던 것. 편의점은 조명이 너무 밝고, 노래방은 일이 많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는 비디오방과 노래방, PC방, 편의점 등 90년대적인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우리가 무시로 지나치고 그래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그곳들을 작가는 문학의 공간으로 가져온다.
이 소설은 플래시몹Flash Mob으로 끝난다. 이메일 등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한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모여서 약속된 행동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흩어지는 모임이나 행위가 플래시몹이다. 남자는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장국영의 영화가 개봉되었던 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모이라는 지령(?)을 전달받는다. 검은색 옷에 마스크가 드레스 코드.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자기 차례가 오면 군중 속으로 사라지라는 것. 상상해보길. 검은색 옷에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일렬로 섰다 스르르 사라지는 모습을. 그래서 광장이나 거리로 섞여 드는 모습을.
이만하면 우아하고도 쓸쓸한 행위 아닌가? 개인이 군중이 되었다가 잠시 개인이 되고, 익명의 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상 세대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고, 가상 세계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고, 관계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관계란 무엇인가? 결국 누군가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김경욱은 ‘접속’할수록 외로워지는 이 기이함에 대해 감정을 배제하고 쓴 결과 어느 소설보다도 감정적인 소설을 써버렸다.
플래시몹의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남자의 부분을 읽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결국, 우리들은 엑스트라가 아닐까. 아주 작은 역을 하고 있지만 망쳐버릴까 전전긍긍하며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사소할 수 있어도 시시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상세계란 그런 우리의 미미함을 드러내기 쉬운 곳일 것이다. 닉네임이라는 걸 쓰지만 닉네임으로 대체 우리가 뭘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작가는 이 남자의 닉네임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궁금하다. 이 남자의 닉네임은 무엇이었을까?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