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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대를 둘러볼 시간, 15초

지난 시간의 것들을 민속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지금도 1분 후에는 민속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삶을 남겨둘 만한 기록에는 무엇이 있을까. 광고를 생각해 보았다. 광고에 담긴 상품, 제작 기법, 그리고 배우들과 그 차림새만으로도 시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얕은 짐작이다. 최인아 크리에이티브디렉터를 만났다. 그리고 더 깊은 얘기를 들었다.

‘핫’한 것은 시간 앞에 무력해진다

몇 해 전부터 우리의 일상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자꾸만 회귀시키는 것이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xx’다. 우리를 1997년에 데려다 놓으며 시작된 이 드라마는 1994년을 거쳐 이제 1988년에 이르렀다. 어느새 촌스러워져 버린 패션과 가물가물한 브랜드, 그리고 사라진 물건투성이지만 아련한 마음으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광고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심해요. 감각의 첨단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던 광고라 해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촌스러워지죠. 이런 식이라면 만들어진 지 오래될수록 더욱 촌스럽게 보여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다시다’ 광고를 한 번 볼까요. 김혜자와 주현의 젊은 시절이 담긴 그 광고는, 지금으로서는 분명 촌스러운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먼저 ‘아, 저 때의 삶은 그랬는데,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왜 일까요? 그 해답은 ‘본질’에 있습니다.”

광고는 유행의 최전선에서 대단히 감각적이고 가장 뜨거운 ‘현재’를 담아 사람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요즘 말로 가장 ‘핫Hot’한 것들로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핫한 것은 시간 앞에서 무력해진다. 가장 핫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가장 핫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때 우리는 ‘그것 참 촌스럽네’라고 웃어버리는 것이다.

“광고에도 본질에서 출발하는 것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다고 여기고, 지향하는, 누구에게나 있는 원형 같은 것. 그 본질을 끄집어내 출발한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통용될 겁니다.”

그러나 광고는 상품을 더욱 잘 파는 것에 최우선의 목표를 둔다. 구구절절 이 상품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해도 모자란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15초, 혹은 단 한 면의 지면뿐이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려면 그만큼 자극적이고 강렬한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와중에 ‘본질’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가능한 일인가.

“결정적인 경험을 한 광고가 있어요. 당시 라면 시장에서 넘버3의 위치였던 S라면 광고였죠. 15초의 시간을 두 개로 쪼개 2개의 광고를 실었고, 모두 6개의 상황을 담았습니다. 내용은 그저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것이 전부였어요.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고 나서 ‘이게 무슨 라면이야?’ 라고 물으면 ‘S라면.’이라는 대답을 듣고, 광고는 끝나요. 사람들은 이 광고가 ‘새롭다’고 했어요. 음식광고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왜 새로울까요? 보통의 광고가 본질에서 벗어난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라면 봉지를 뜯었을 때 그렇게 많은 것이 들어있지 않은데 아주 대단한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급급한 거죠. 대중들은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는 거고요. 하지만 그 껍질을 벗기고 가장 안쪽에 들어있는 본질을 끄집어내 보여주니까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고, 사람들은 그것에 반응한 겁니다.”

15초라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꼼수’를 쓰는 동안 본질은 잊혀지고 가려진다. 그건 우리의 삶과도 맞닿아있다. 바쁜 세상, 조금의 시간이라도 아끼기 위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동안 우리는 의도치 않게 본질과 자꾸만 멀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은 요령, 지름길, 시늉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광고, 시대가 닮고 싶은 삶을 담다

광고라는 장르의 기록은 주로 마케팅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광고는 주로 기법과 성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충분히 인문학적인, 그리고 민속적인 측면에서도 광고는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광고에는 당시의 기술력도 엿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 안에서 시대를 살펴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주로 먹고, 쓰고, 사용하던 것들과 공유하고, 어필하고, 지지했던 것들을 걸러볼 수 있겠지요. 광고를 보면 7~80년대, 90년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주력 업종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패션에 집중했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그 주도권이 통신사로 넘어가기도 했다가 최근에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광고의 지분이 많아졌죠. 게임광고에 유명 스타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고요. 이 흐름만으로도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또 무엇에 집중하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광고에서 볼 수 없던 상품의 광고가 등장하기도 하고, TV만 켰다 하면 흘러나오던 광고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것 역시 사람들의 삶과 결을 같이 한다. 굳이 광고가 필요하지 않았던 상품도 이제는 경쟁력을 갖춰야 할 시기가 되었다거나 방식이나 타깃을 달리해 다른 특성의 광고로 방향을 틀었다거나. 혹은 상품이 사라졌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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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흥행하지 않은 광고라 해도 저 광고는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는 것일까, 왜 저런 방식으로 말하는 걸까를 거꾸로 비평하듯 바라보면, 그 광고가 사람들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려는지 알 수 있다고, 최인아 디렉터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듣고 보고 말하는, 그리고 원하는 삶이 광고에 들어있는 것이다.

사람도 못한 걸 광고가 한다

가끔 광고인지 캠페인인지 헷갈리는 광고가 있다. 상품 홍보에 앞서 삶의 교훈이나 메시지를 던지는 광고들 말이다. 딱히 상품의 본질과도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왜 그러는 걸까. 15초의 시간 동안 상품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줘야 이득일 텐데.

“브랜드를 기억시키는 건 오래 걸리는데, 잊히는 건 쉽죠. 물건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보면, 확실히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제품이 좋아서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 브랜드가 내세우는 철학이나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거죠.”

이는 그만큼 모든 제조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최인아 디렉터는 말을 보탰다. 30년 전에는 ‘이 제품이 좋다’라는 말로 효과를 얻었다면 이제는 그 제품을 둘러싼 생각들도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요즘 가장 훌륭한 마케팅은 상품을 잘 만드는 일이라고.

모 광고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은 지하철 노약자석을 늘 비워두게 되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을 조정하는 데에 광고가 크게 한 몫 하기도 했다. 어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지금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광고는 대중을 대신해 대중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 시대에 통용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각 시대의 정신을 일상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광고입니다.”

어느새 광고도 스마트해진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적절한 상품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광고의 변화 또한 사람들의 스마트해진 삶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한 시대의 경제 수준을 알고 싶다면 당시의 짜장면 값을 찾아보라는 말이 있다. 한 시대의 삶의 형태, 혹은 문화 코드가 궁금하다면 광고를 볼 것을 추천한다. 한 시대의 삶의 형태, 혹은 문화 코드가 궁금하다면 광고를 볼 것을 추천한다. 무려 15초라는 거짓말 같은 시간 안에 한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광고를.

최인아
오랜 시간 광고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다. 前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고, 칸국제광고제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대표적인 카피라이팅으로는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신원 베스띠벨리,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삼성카드, ‘20대여 영원하라’엔프라니, ‘사랑의 향기는 영원하다’동서식품 맥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클럽메드 등이 있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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