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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주말 농장,
하여튼 작명치곤 걸작이야

주말 농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들었던 적이 있다. 아마도 농사 -혹은 농사 비슷한 것- 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워하려면, 대상과의 거리가 필요한 법. ‘내 옆에 잠들어 있는 연인이 그립다’라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립다’의 일반적인 용례는 아니다. 그러니까 농사와 ‘내’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자각이 먼저 있어야 했다. 그리고 농사를 낭만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라든가 여가를 기획할 수 있을 정도의 주체성도.

 

박완서는 1973년 10월 《문학사상》에 <주말 농장>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박완서를 좀 읽어본 독자라면 이 이야기가 어떤 성격일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주말 농장’이라는 사건 혹은 소재를 둘러싸고 까발려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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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있잖아 우리 미자네 반 반장 애 알지? 그 비쩍 마르고 못생긴 주제에 줄창 일등만 하는 계집애 말이니? 그래그래, 즈이 아버지가 시인이라는 애. 아마 즈이 엄마 주제꼴도 늘 초라하지. 그래 맞았어. 즈이 아버지가 시인인 주제에 딸을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도 아니꼬운데 글쎄 요새 시골에 농장을 샀다지 뭐니. 잘 생각했지. 시보다는 농사가 덜 배고플 게 아냐. 얘는 혼자 좋아하고 있네. 그게 아니고 글쎄 뭐 애들 정서교육을 위해 일요일마다 애들 데리고 가서 농사 흉내를 내는 데라는군. 이를테면 농사 소꿉질을 위해 땅을 샀다지 뭐니.

 

친구끼리 하는 전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고, 이 애들은 사립학교에 다닌다는 것도. 그리고 이들이 누군가의 흉을 보고 있다는 것도. “비쩍 마르고 못생긴 주제에 일등만 하는 계집애”인 미자네 반 반장과 가난한 시인의 가족 주제에 시골에 농장을 산 미자네 반 반장의 가족을. 그러니까 시샘하고 있는 것이다.

 

왜? 무엇을? 줄창 일등만 하기 때문에 ‘가난한’ 여자애를 질투하고, 가난하지만 시골에 농장을 샀기 때문에 여자애의 가족을 질투한다. 여자애의 가족보다는 돈이 꽤 있지만 그들에게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농사 소꿉질”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 가족을 비하한다.

 

나는 “농사 소꿉질”이라는 단어가 작가 박완서 식의 명명인 줄 알았다. 자료를 찾다가 당시에는 이렇게 부르는 게 일반적임을 알게 되었다. 1969년 7월 3일 동아일보에는 “금년엔 보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일군의 사람들이 주말 농장이니 관광농장이니 해서 그룹을 지어 시골로 나가 흙을 만지고 가꾸는 놀이를 시작했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흙을 만지고 가꾸는 놀이”라니. ‘소꿉장난’의 정의로 삼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니까 1970년 전후의 한국에서 주말 농장이란 단어는 ‘어른들의 농사 소꿉질’이라는 뜻을 함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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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 속으로 간다. <주말 농장>에는 여섯 여자가 나온다. 각기 이름이 있지만 그들을 구분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이 여자들이 모두 같은 아파트에 살고, 애들을 같은 사립학교에 보내고, 그 이전에 같은 여대를 나온 동창들이라는 것을 아는 건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이들은 아침이면 “혀와 턱뼈를 맹렬히 움직여 온갖 것을 저작咀嚼하고픈 욕망”에 시달리며 전화로 남을 ‘씹는다’. 자기들의 일상을 보고하거나 자랑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대해서도. 주말 농장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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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전번에 그 소리, 왜 있잖아 주말 농장인지 뭔지. 난 뭐 대단한 건 줄 알았더니 웃기더라 웃겨. 글쎄 오십 평짜리라지 뭐니? 설마. 정말이야. 시인이니 소설가니 하는 가난뱅이들이 싸구려 땅을 사서 백 평 오십 평씩 나눠가지고 기분을 내는 모양이야. 애걔걔, 고걸 가지고 거창하게 뭐 농장, 웃기게 웃겨. 아마 그런 족속은 그런 족속대로의 허영이 있는 모양이지. 그야 말재주로 밥 벌어먹는 양반님네들이 말이 모자라 이름 못 붙이겠어. 주말 농장, 하여튼 작명치곤 걸작이야.

 

여자들의 논지는 이렇다. 백 평 내지 오십 평 가지고는 감히 ‘농장’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 농장의 원뜻에는 이런 게 있다. “고려 말기•조선 초기에 세력가들이 차지하고 있던 넓은 농지.” 그렇다면 ‘주말 농장’의 정의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행한 <농업용어사전>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최근 들어서 대도시 및 중소도시의 변두리 휴경지를 이용하여 텃밭을 가꾸는 형태인 주말 농장이 성행하고 있다. 이는 도시인들이 직접 원예작물을 재배함으로써 땀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에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 다분히 주관적인 정의를 보고 웃음이 났다. 도시인이 주말 농장에서 땀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 않나? 도시인이 가족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주말 농장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1970년 이전에 한번 일었던 ‘주말 농장’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1974년 7월 23일 매일경제에 있는 이런 기사가 유행의 후퇴를 보고하고 있다. “이밖에 각종 주말 농장이 1970년을 기점으로 한차례 붐을 이루었으나 요즘은 경기 후퇴로 조용해졌다.”

 

과연 경기 후퇴 때문이었을까? 땀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주는 데도? 농사가 소꿉질로 하기 적당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농사가 주말에만 하기에는 적당치 않음을 깨달았던 건 아닐까? 아니면 주말에는 농사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버린 건 아닐까? 그리고 주말 농장의 빈자리는 또 다른 무언가가 채웠을 것이다. 경기가 후퇴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놀아야 하고 쉬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돈을 써야 하니까.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그래야 평일이 되어 출근할 수 있으니까. 산다는 건 참 단순하고도 복잡한 일이다.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 1976년 첫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출간한 이래 백여 편의 중단편과 장편소설, 산문집들을 펴냈다. 2011년 작고했다.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등이, 단편집으로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이, 산문집으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어른 노릇 사람 노릇》 등이 있다.
| 「맑은 공기 한적한 시골 찾아 주말농장 운동 번져」 동아일보 1969년 7월 3일자 – 신문 기사 보기 – 바로가기| 「1일 낙원 건강한 가족을 모토… 서울 근교전원 개발 별장 기분」경향신문 1971년 6월 24일 자 – 신문 기사 보기 바로가기

 

글_ 한은형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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