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는 산책가다. 이름대로 사는 사람이다. 이름 옆에 한자가 병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驅步’일 것이다. ‘뛰어감’, ‘달음박질’, ‘빠른 걸음걸이’라는 뜻의. 그의 걸음걸이가 그리 빠른 것 같지는 않지만 다닐 곳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 구보씨는 아침에 집을 나와 거리 – 전차 – 다방 – 거리 – 다방 – 광화문 – 다방 – 거리 – 종각의 술집 – 종로 네거리를 차례로 순례하고 밤비를 맞으며 귀가한다. 빼먹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구보씨가 분주한 사람임을 설명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하루 동안 다방을 세 번, 술집을 한 번 가고 틈틈이 전차를 타고 천변과 광교 길, 장곡천정소공동 등을 산책한다. 이쯤에서 물어야 할 것이다. 구보씨는 왜 이렇게 열심히도 산책을 하느냐고. 혹자는 말할 것이다. 목적이 있다면 산책이 아니라고. 진정한 산책자답게 구보 역시 산책을 하는 이유는 특별히 없는 것 같다.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랄까? 어쩌면 소설을 위해서이기도 한 것 같다. 구보씨는 백수에 가까워 보이지만 자신을 소설가라고는 하고 있으며, “내일부터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라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 이 남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위해 ‘산책자 구보씨의 일일’을 보내고 있는 걸까?
아들은 지금 세상에서 월급 자리를 얻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말한다.
하지만, 보통학교만 졸업하고도,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회사에서 관청에서 일들만 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불 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해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구보씨는 고등실업자인 것이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소설을 쓰고 있는지 소설을 쓰기 위해 일자리를 갖지 않은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구보씨의 어머니의 눈에는 그렇다. 이 ‘생활’을 가지지 못한 남자는 구두와 단장을 들고서 ‘우아하게’ 산책을 나선다. 우아하다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구보씨는 시계가 없다. 시간은 궁금하지만 소녀 취향 따위의 ‘팔뚝시계손목시계’를 차고 싶지는 않으니까.그는 ‘우아한 회중시계’를 원한다. 칼피스의 “외설한 색채”가 미각에 맞지 않는다며 투덜대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스탕달의 《연애론》,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에 대해 논한다. 이 모든 건 다방에서 행해진다.
21세기 서울에 ‘스타벅스’가 있다면, 1930년대에 경성에는 다방이 있었다. 한국인이 최초로 세운 다방의 이름은 카카듀였다. 다방은, 끽다점이라고도 했다. 끽다점은 일본어 ‘기사텐’을 한국식으로 읽은 것. 그러니까 다방이라는 뜻이다. 한국 최초의 다방의 이름은 ‘기사텐’. 다방의 이름이 ‘다방’이었다. 이 최초의 다방인 ‘다방’은 1909년 일본인이 남대문 근처에 개업한다. 카카듀에는 해외문학파가 드나들었고, 카카듀의 주인 이경손이 턱시도를 입고 직접 차를 날라서 화제가 되었다. 소설가이자 시인 이상도 ‘제비’, ‘쓰루鶴’, ‘69식스나인’등의 다방을 경영했다. 1930년대 식민지 경성에서 다방은 문화예술인이자 백수의 쉼터이자 토론장이자 집합소였다.
오후 두 시,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등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를 하고, 또 레코드를 들었다.
그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고,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그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기네들은 인생에 피로한 것같이 느꼈다.
그들의 눈은 광선이 부족하고 또 불균등한 속에서
쉴 새 없이 제각각의 우울과 고달픔을 하소연한다.
때로, 탄력 있는 발소리가 이 안을 찾아들고,
그리고 호화로운 웃음소리가 이 안에 들리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방에 깃들인 무리들은 그런 것은 업신여겼다.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백수白手. 손이 하얗다고 백수다. 산책자이면서 소설가이면서 백수인 구보는 다방에서 수치를 느낀다. “캄 히어.”라고 강아지를 부르다가. 안 되니까 “이리 온.”이라고 해보지만 여전히 강아지는 무시한다. 구보는 분노를 느끼지만 억제한다. 이 소설에서 최초로 나오는 열렬한 감정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게다가 강아지는 구보를 보고 짖는다!이 소설을 다시 읽다가 블랙 유머라고 느꼈다. 그러니 다시 산책하러 거리로 나갈 수밖에.
돈 십 전으로 하루 종일 카페에서 지내는 카페생활자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시대의 백수혹은 창작자들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보고서를 쓰고, 작업을 한다.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카페를 공동의 방으로 가진다. 누구도 영원히 머물 수 없고,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 그 방을.
박태원
1909년 서울 사대문 안의 중산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1950년 월북할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교류한다. 1938년 장편소설 『천변풍경』과 소설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출간한다. 1965년 실명했고, 그 후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해 『갑오농민전쟁』이 출간되었고, 1986년 북한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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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좋고, 어쩜 이런 소재를 삼으셨을까.
어쩜 이런 쉬운 디자인과 편집을! 깊이를 간단하고 상큼하게 만들어내는 실력 돋보입니다 ~ 접근을 쉽고 이해를 쉽게 하는 게 오늘날 최고의 능력인 듯 싶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