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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목판, 생각보다 넓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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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경
단단한 북방지역 나무를 찾아
소금물에 수년간 담고 삶아 목질을 강하게 한다.
당대 최고의 화가와 문필가의 글과 그림을 받아
그제서야 각수가 한 획, 한 획 새겨나간 목판화. 

책 한 권 내는 일이 큰 사업이었던 시절,
지식은 이렇게 수고로운 절차를 거쳐
문인들에게 전파되었다.

 

뛰어난 미적 가치로도 주목받고 있는 목판.
우리 시대의 디자인으로 재해석될 여지가 충분하여
누구라도 반할 매력으로 넘쳐난다.

 

강원도 원주의 고판화박물관, 서울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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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강원도 원주 명주사고판화박물관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인쇄문화의 꽃, 고판화’ 특별전이 열렸다. 강원도 원주서부터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관람객들에게 유물 하나하나를 소개하고, 판화 체험까지 손수 지도하는 원주 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의 목소리가 화통하다.

 

한선학 관장은 20여 년 전 시작한 고판화의 수집을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군종장교 시절 방문했던 중국 항주의 골동품 시장에서 고판화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목판의 조형성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그 후로 인사동을 자주 방문하여 유물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좋은 목판이 있다면 찍어서 신도들에게 나누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몇백 점이나 모았더군요. 이거 제대로 한번 모아볼까 싶어 중국 골동품점을 찾아다니며 명함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살펴보고 구입했죠.”

 

그렇게 수집한 유물이 이제 4천여 점에 이른다. 한선학 관장은 군종장교를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에 작은 절 ‘명주사’를 지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한국, 중국, 티베트, 몽골 등을 돌며 수집한 목판들을 명주사 한 편에 전시했다. 이것이 바로 ‘명주사고판화박물관’의 시작이다.

 

“작지만 알차고 강한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콘텐츠가 좋아야 할 것이니 수집에 게으를 수 없고, 둘째, 멀리까지 찾아온 관람객이 더 많은 것을 안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직접 설명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예닐곱 번을 하기도 합니다. 내가 고판화를 잘 알고 있으니 이것을 나누어야겠구나 생각했지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선학 관장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객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막힘 없이 유물을 소개하고, 안내하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상상을 넘어서는 목판화의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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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학 관장

 

이것 또한 판화인가. 전시장 한 켠 떡살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물론 판각을 이용한 작품이니 판화에 속하지요. 떡살은 물론이고 보자기를 찍는 보판, 부적판, 시전지, 책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목판이 활용되었습니다. 목판을 일상에 활용한 선조들의 참신한 발상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유물이지요.”

 

보통 목판화는 필사본을 대신해서 서책을 만드는 방법만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 조상들은 편지지나 손수건 같은 생활 소품은 물론 일상생활용품 전반에 멋을 내기 위해 많이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판을 이용한 장식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활발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전시장에 전시된 유물 중에는 이것이 정녕 판으로 찍어 그린 그림인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화려한 것들이 많았다. 지금처럼 과학적인 도구도 없던 그 시절, 오로지 사람의 손과 눈으로만 만들어야 했던 그때 이런 목판은 누가 조각했을까.

 

“각수 중 최고의 실력을 갖춘 각수가 그림을 새깁니다. 그림에는 다양한 모양과 곡선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보통 실력으로는 그런 것들을 다루기가 쉽지 않지요. 또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바로 화가입니다. 밑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니까요. 판으로 짜기 용이하도록 결과 선, 각도 등을 모두 계산해서 그려야 했으니 그의 능력에 따라 목판화의 가치가 좌지우지되었습니다.”

 

비슷한 시대의 비슷한 문화를 가진 한국, 중국, 일본의 유물들은 설명서를 읽지 않고서는 어느 나라의 작품인지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선뜻 구분하기 힘들다. 분명 전시장 입구에서는 그러했는데, 가만히 걷다 보니 어느새 한국, 중국, 일본의 목판화를 얼핏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명확히 ‘이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기술적 구분이 아니라 ‘느낌’에 기인한 주관적인 기준이다.

 

“백제와 고구려, 신라는 모두 우리나라였지만, 각 나라에서 그린 부처님의 얼굴은 조금씩 다릅니다. 모두 각 나라의 얼굴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얼굴은 또한 다를 수밖에 없지요. 한국, 중국, 일본의 목판화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색의 쓰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흑백의 목판화를 주로 찍었고 단순한 다색판화가 많은 편입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색이 화려한 다색판화가 많습니다.”

 

생활문화의 씨앗을 품고 돌아가는 전시가 되길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다녀간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것이 남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우리나라의 문화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한복, 김치, 불고기 등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것은 바로 ‘인쇄문화’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가장 많은 목판을 보유한 <팔만대장경>, 처음으로 금속활자로 만든 책 <직지심체요절>에 이르기까지 인쇄문화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일상에서도 흔하게 활용될 정도였으니 우리에게 목판이 얼마나 가까운 문화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식과 문화가 겸비된 생활, 그리고 멋을 아는 민족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현실에서도 돈과 건강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한선학 관장은 강조했다.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배운 것들을 토대로 늘 운동하듯, 학교에서 배운 미술, 음악을 바탕으로 생활 속 문화생활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지역과 함께 가는 ‘Go Together, K-Museum!!’

 

이번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의 'K-Museums’ 프로젝트 초대전의 첫 전시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K-Museums’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박물관과 함께하는 전시 프로젝트로, 지역 순회전과 서울 초대전, 양방향으로 전개하고 있는 박물관 협업 프로젝트이다.

 

'K-Museums’ 지역 순회전은 기존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 주제 가운데 지역박물관이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 재구성해 지역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것이고, 'K-Museums’ 초대전은 특색 있는 주제와 소장품을 가진 지역박물관을 초청해서 지역박물관의 유물과 주제를 민속적으로 해석해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전시다. 초대전은 서울 전시가 종료되면 다시 원 박물관에 돌아가 재전시를 하게 된다. 초대전 전반에 국립민속박물관의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어 지역박물관과 협업하게 되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다양한 전시를 통해 개성 있는 주제와 자료를 보여줄 수 있고, 지역의 박물관은 색다른 유물의 해석, 새로운 전시 기법, 홍보 효과를 공유할 수 있는 참신한 협업이다. 무엇보다 문화기관으로서 서로 의논하며, 손잡고, 의지하며 함께 가는 서로의 동반자가 된다는 것이 양 박물관이 얻는 가장 큰 수확이다.

 

한선학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제가 한 수 배웠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낮췄다.

 

“늘 국가별, 연대별, 장르별, 판화사적 정도로만 구분해서 전시할 생각만 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저도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판화를 ‘지식’, ‘염원’, ‘꾸밈’이라는 주제로 나누었는데,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고판화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던 문화였는지 한층 절감하게 됩니다. 옛날 사람들의 삶을 오늘에 연결하여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면, 나아가 생활예술 씨앗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번 전시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7월 20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 열린다. 그리고 9월부터는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에서 순회전시가 펼쳐질 예정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옛 판화가 지닌 놀라운 기술력, 콘텐츠로서의 힘, 일상에 스며든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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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학 ㅣ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한양대학교대학원 박물관교육학 박사.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1978년에 군종장교 시험에 합격한 뒤 1981년에 낙산사에서 출가, 육군에서 15년간 군승으로 근무하며 국방부법당주지 등을 역임했다. 1998년 치악산에 명주사를 지었으며, 2004년에는 국내 유일의 ‘고판화박물관’을 개관하여 박물관교육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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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양곤 댓글:

    사진으로만 보아도 벅참니다. 선조들의 지혜와 솜씨도 벅차지만 이렇게 모아서 후대에 남겨질 유산으로 자리매김 해 놓은 그 노력은 작품을 만든 장인만큼이나
    대단하십니다. 비오는 아침에 밝은 햇살이 스며드는 느낌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2. 이수영 댓글:

    판화를 참좋아하는데….
    언젠가 한선학과장님의 세심한 설명을 들으며 경청했었는데 여기서 뵈니 좋군요!
    주말에 아이들과 한버가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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