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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체험기

나를 담는 그릇,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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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溫陽’은 이름처럼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그 역사가 삼국 시대 이래 1,300여 년에 이르는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 들어 세종대왕을 비롯한 여러 임금이 행궁을 짓고 휴양과 병 치료를 하며 머물던 곳으로, 그에 대한 기록과 유적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이 같은 명성은 꾸준히 이어져 70년대까지만 해도 각광받던 관광지이자 신혼 여행지였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과거의 영화는 적잖이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어르신들이 전철을 타고 나들이 삼아 많이 찾는 지역입니다.

온양 유일의 사립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은 무려 40여 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 ‘유서 깊은 온양’이라는 도시에 걸맞은 곳입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3동에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은 아동서적 전문출판사인 계몽사의 창업자인 구정 김원대 선생에 의해 설립되어 1978년 개관했습니다. 한국인의 의식주부터 문화, 종교,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의 단면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잘 조성된 정원과 우거진 숲은 유물 관람은 물론 조용히 산책하며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온양민속박물관과 함께 5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옷, 삶의 품격을 담다’ 공동기획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복식 관련 유물 30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우리의 전통 옷차림을 통해 선조들의 문화와 품격을 재조명할 기회이자 우리 고유의 색과 형태, 그리고 재료에 담긴 아름다움을 엿볼 좋은 기회가 되고 있죠.

전시는 오방색을 기본으로 전통복식에 나타나는 색채의 조합을 살펴보는 1부 ‘색의 조화’와 전통 옷, 모자, 신발, 장신구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선의 미를 감상할 수 있는 2부 ‘형태의 미학’, 그리고 색채의 조합과 전통적인 선의 미가 결합된 선조들의 지혜와 실용성이 반영된 옷과 재료들을 확인할 수 있는 3부 ‘재료와 기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적색과 청색으로 음과 양을 나타내는 여성의 혼례복과 붉은색 옷감과 청색의 띠로 착용자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갑옷, 선비의 기개와 기품이 느껴지는 흑색과 백색의 심의深衣와 복건은 물론, 도포와 흑립, 그리고 비옷인 도롱이 등 신분과 용도에 따라 입어왔던 우리 전통복식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규중칠우閨中七友‘라 불렸던 옷을 짓는 데 사용했던 바느질 도구들도 볼 수 있죠.

전시된 유물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고려 시대 유물인 아미타불 불상 안에서 나온 ‘오색 아미타불복장 직물五色阿彌陀佛腹藏織物‘입니다.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에서 유래한 오방색五方色이죠. 오방색은 파랑, 빨강, 노랑, 흰색, 검정의 오색으로, 각 색은 방위를 규정합니다. 동양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사상인데, 이는 우주를 형성하는 원리이자 질서의 원리로 무속과 풍수 등의 논리적 근거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색동은 오방색을 배열한 것으로, 이를 이용하여 색동옷, 까치두루마기, 오방주머니 등을 만들었으며 색동 옷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어 섣달 그믐날 아이에게 입혔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의 맛과 색상에도 음양오행의 원리를 따랐는데, 맛에서는 맵고, 달고, 시고, 짜고, 쓴 오미五味를, 또 음식의 색깔에서는 오색五色을 조화시키는 등 음양의 오행은 우리네 모든 풍슴과 무속의 기본 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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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 옛 어른들에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우주의 원리에 편승하여 진리와 하나가 되려는 성스런 의식과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우리 옛 어른들은 옷에도 ‘짓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삶의 기본적인 것에는 모두 ‘짓다’는 동사를 씁니다. 밥을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고, 사람이 세상에 나면 이름부터 짓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며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그만큼 옛 어른들에게 옷을 입는 행위는 인간의 실존을 위한 원초적인 요소 중 하나였으며, 인간이라는 작은 우주를 규정하는 원리이자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상의 이치에 다가가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입고 지내는 옷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죠.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는 것도 맵시를 위한 장치나 도구쯤으로 생각할 뿐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일도 드물고요. 그러나 우리 옛 어른들이 생각한 옷의 의미와 기능은 아름다움이나 실용적 의미 이전에 있습니다.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그리고 자연과 문화를 분리하지 않고 일체화된 것으로 보는 세계관과 통하는 것이며, 그래서 옷의 색깔이나 품새, 형태 하나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옷 자체로 그 옷을 입은 이의 신분과 직업은 물론 인격과 품성까지 담아내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자연히 눈을 내려 내 옷차림을 다시 한 번 매만지게 됩니다. 옷이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에 앞서 옷으로 인해 내가 규정되며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나의 실존을 증거하는 근거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오늘, 내가 입고 있는 옷으로 인해 나는 무엇으로 보이고 있을까요?

바야흐로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여름입니다. 온양민속박물관의 ‘옷, 삶의 품격을 담다’ 전에서 나의 품격과 내 옷차림의 비례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보는 것도 꽤 보람있는 일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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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용석 |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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