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재질의 유물이 손상되면 그 갈무리에 보통 공력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종이는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에 약하고, 찢어지면 재생할 방법이 없다. 즉 한번 손상된 그림이나 서적은 근본적으로 복원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물을 감상하거나 보존하기에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원래 상태에 근접하게 되돌리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보존과학자들의 일이다. 최근 만난 유물 가운데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는 보존과학자로서 사명감을 갖게 하고, 유물의 출처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안겨준 그림이다.
‘삼국지연의도’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유사한 도상이 이미 공개된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유물을 자세히 살피다 보면 퍼즐조각을 맞추듯 유물의 내력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삼국지연의도’의 경우가 그랬다. 이번에 보존처리 한 ‘삼국지연의도’는 앞서 발견되어 서울시유형문화재 139호로 지정된 그림 가운데 빠져있던 그림들로, 그 중 2점은 독일의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와 안드레 에카르트의 저서에 도판으로 소개되었던 그림이었다. 이미 지정된 그림에 이번에 기증되어 발견된 7점의 그림들이 합쳐지면 보다 완전한 짝을 찾을 수 있기에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연구사로서는 더 없이 큰 기쁨을 맛보았다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도’는 19세기 중,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중국 고전 소설 ‘삼국지’의 명장면을 골라 그린 지본 채색화이다. 독일의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와 안드레 에카르트의 저서 및 동관왕묘東關王廟현장 조사 자료, 유물 ‘삼국지연의도’의 면밀한 조사 결과, ‘삼국지연의도’는 창호형식의 벽체 형태로 2점이 한 세트가 되어 총 10점이 동관왕묘에 안치되어 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유물은 남강南剛 김태곤1936-1996이 1970년대에 수집한 유물로, 유족에게서 기증받은 자료이다. 기증된 유물은 높이 230cm 이상, 폭 133cm 이상 되는 대형 유물 7점이다. 여기에는 도원결의, 장판교 전투, 장비가 엄안을 풀어주는 내용, 조운이 황충을 구하는 내용, 여몽이 피를 흘리며 신벌神罰을 받는 내용 등 여러 주요 장면을 담고 있다.
2013년 우리 박물관에 입수되었을 당시의 ‘삼국지연의도’는 벽체에서 떼어진 상태로 접혀서 오랜 기간 보관되어 온 터라 손으로 만지면 부서질 만큼 종이의 산화가 심했다. 더불어 손상, 박락, 오염 등의 훼손도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이후 안료 분석 및 X선 투과 조사, 적외선 조사 등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삼국지연의도’에 사용된 녹색 안료가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Schelle’s Green’임을 밝혀냈고, 이는 유물의 제작 시기를 1850년~1970년대 사이로 추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1)
이어 건식 클리닝, 종이 파편 고정, 안료의 접착력 강화, 창호형식의 벽체 속틀 종이 제거, 습식 클리닝, 손상부 처리, 배접, 색맞춤의 단계를 거쳐 창호 형식의 벽체로 복원, 장황粧䌙 2)하는 과정을 진행하였다. 그림 뒷면에 관찰된 벽체 속틀 흔적과 그림 주변을 꾸며주는 청색 만자문卍字紋능화판 회장回裝 연구를 통해 유물을 본래의 형태로 복원, 장황할 수 있었다. 아래의 영상은 ‘삼국지연의도’의 보존처리 과정으로 훼손 상태에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의 처리 단계와 절차, 제작 방법 등을 보여준다.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밝혀낸 19세기 중, 후반 ‘삼국지연의도’의 채색 안료 및 장황 연구는 추후 유사 유물의 보존처리와 다양한 연구 활동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획Ⅰ에서는 2015년 4월 23일부터 6월 22일까지 <민속학자 김태곤이 본 한국 무속>이란 주제로 기증전을 개최하는데, 여기에서 보존처리 완료한 4점의 유물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기증된 7점 중 나머지 3점은 올해 보존처리를 거쳐 내년 2016년에 공개할 계획이다
2) ‘장황’이란 그림이나 글씨를 감상하거나 보관할 수 있도록 꾸미는 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장황이란 용어를 사용해 왔으며, ‘표구’는 일제강점기에 처음 도입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