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이 뛰어놀던 어린 시절 연탄불 위에 녹여 먹던 달고나의 달콤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또, 다 타버린 연탄재에 하얀 눈을 붙여 굴리던 눈사람의 추억도 새롭다. 귀하디 귀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 성분이면서도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하던 연탄은 긴 겨울 없어서는 안 될 엄마의 사랑과 같은 소중한 연료였다.
연탄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 물질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어서 이사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새벽잠을 깬 일이 있었다. 그날 아침은 우리 가족이 이사하기로 한 날이었다. 어머니와 아기는 트럭 앞자리에 앉았지만 나와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 쭈그리고 앉아 찬바람을 맞으며 새집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새까만 연탄이 무뚝뚝한 모습으로 함께 앉아 있었다. 겉모습은 시커멓고 무뚝뚝했지만 긴 겨울, 연탄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린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그 연탄 몇 장이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늘 다이아몬드가 갖고 싶으셨겠지만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아름답게 빛나도 자식들의 방을 데워주거나, 맛있는 찌개를 끓여주고, 고등어를 구워주지는 못한 까닭이다.
실제로 연탄과 다이아몬드는 주기율표 원자번호 6번인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둘 다 비금속원소이며 원소 기호 C로 표시된다. 같은 원소로 이루어졌지만, 석탄이나 다이아몬드처럼 결합 상태가 다른 물질을 동소체라고 하는데 석탄과 다이아몬드뿐 아니라 목탄과 흑연 등도 같은 탄소로 분류된다. 많은 사람이 볼품없이 시커먼 연탄과 아름답기 그지없는 다이아몬드가 같은 탄소 물질이라고 하면 많이 놀라곤 한다. 연탄의 원료가 되는 석탄은 먼 옛날 지구에서 살았던 나무나 동물들의 사체가 깊은 땅속에 묻히면서 만들어진다. 수천수만 년이 넘도록 땅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압력과 열을 견디다가 차츰 굳어지면서 석탄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깊은 압력을 이기고 열을 견뎌낸 탄소 덩어리가 바로 모든 사람이 흠모하는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보다 조금만 더 견뎌라. 조금만 더 견디면 석탄이 아니라 귀한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은 다이아몬드보다 귀한 연탄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구공탄으로 끓여 먹던 맛있는 음식들
여전히 남의 셋집이었지만 새로 이사한 집에는 그래도 우리 방이 생겼다. 그리고 안집에는 무려 여섯 명의 딸들이 살고 있었다. 당연히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늘 시끄럽고 번잡했다. 이삿짐을 내린 어머니는 가장 먼저 좁다란 부엌 안쪽에 연탄부터 쌓아 올리셨다. 다 쌓은 연탄에 습기가 앉으면 안 된다며 묵은 장판을 칭칭 감아 놓으셨다.
연탄에 습기가 차면 연탄가스가 방으로 스며들어 중독되기 쉽다는 말씀이었다. 실제로 연탄을 피우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일산화탄소는 공기보다 살짝 가벼워서 자꾸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연탄 구들이 벌어진 틈을 타고 올라와 곤히 잠자는 가족들을 덮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갈 준비를 할 때마다 가장 흔하게 듣는 뉴스가 바로 연탄가스 중독 사고였다. 미아리나 창신동 혹은 수색 어디쯤에서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발생해 몇 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뉴스를 거의 매일 아침마다 들어야 했다.
연탄가스 발생은 구공탄 덕분에 그나마 많이 줄었다고 한다. 구멍이 아홉 개나 뚫린 구공탄은 연소가 잘돼 가스도 덜 나오고 화력도 좋아진 덕분이었다. 구공탄은 제법 역사도 오래돼서 1932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그전에는 관제연탄이나 민제연탄이라고 해서 벽돌 모양의 탄에 2개나 3개의 구멍을 뚫어서 사용했는데 발화도 잘 안되고 화력도 약해서 가스가 많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구공탄을 사용하다가 19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차츰 스물두 개, 스물다섯 개로 연탄 구멍 수가 늘어났다. 자연히 연탄의 크기도 커졌을뿐더러 공기 사이로 더 많은 산소가 들어가 화력도 좋아졌다. 지금은 대개 가스 불을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연탄불로 방도 덥히고 음식도 해 먹었다. 연탄불에 솥밥을 안치고, 된장찌개 끓이고, 고등어도 구워서 맛있는 아침저녁을 먹었다.
둘리의 친구 마이콜도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맛있다고 노래할 정도였다. 왜 그럴까? 연탄은 착화가 어렵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높은 온도와 함께 화력이 오래 유지되는 복사 방식이라 열이 음식 구석구석까지 파고들며 골고루 익혀준다. 반면 가스 불은 대류 방식이라 음식에 숨어 있는 수분을 날려 버려 음식이 퍽퍽해져 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연탄처럼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
요즘 우리나라에서 연탄을 때는 가구 수는 17만~20만 정도이다. 연탄 한 장은 천 원 정도인데 이것도 사는 지역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 그나마 서울에서 유일한 연탄공장이던 이문동 삼천리 공장마저 분진과 소음 때문에 문을 닫기로 해 없는 사람들의 걱정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안집의 셋째, 넷째, 다섯째 딸들과 신나게 놀다 돌아오면 연탄불로 따뜻하게 데워진 안방 아랫목에는 어머니가 이불로 덮어 놓은 가족들의 밥이 있었다.
늘 공부는 안 하고 놀 궁리만 한다고 야단을 맞고는 했지만, 찬바람에 꽁꽁 언 차가운 손을 꼭 잡아 이불 밑에 넣어주실 때면 연탄같이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졌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언제나 종종걸음을 치셨지만, 어머니는 연탄불처럼 따뜻한 사랑을 피워놓고 가족들을 기다리신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다이아몬드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라 연탄처럼 따뜻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글 | 손완주_문화평론가
『민속소식』 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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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도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저물어가고 있다. 도심 가로수들도 마지막 잎새를 남긴 채 겨울채비에 들어가고 새벽을 여는 재래시장의 따스한 어묵국물은 상인들의 시린 볼을 녹인다. 옛날 이맘때면 연탄이 사랑받는 시기다. 달동네 골목은 연탄 배달 트럭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60∼80년대 우리나라 가정 대부분의 난방연료는 땔나무와 연탄이었다. 연탄은 그나마 가정형편이 나은 집의 연료다. 살림살이가 궁한 집은 초겨울이 되면 땔 나무 하기에 바빴다. 필자도 학교 다녀오면 지게지고 뒷동산 땔나무하던 추억이 새롭다. 학교에 가면 연탄난로에 도시락이 층을 이룬다. 데워진 도시락에 김치 넣어 비벼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포장마차, 선술집 연탄난로에는 주객들이 굽는 양미리 냄새가 진동하던 그 시절 필자도 연탄 두 장 사서 새끼줄에 끼워들고 오곤 했다. 지금은 후원을 받아 어려운 가정에 연탄을 주는 연탄은행이 있어 고맙지만 그 옛날에는 참 추운 겨울을 보냈다. 연탄이 빨리 탈까봐 공기구멍을 막고 방바닥 냉기만 가시게 하고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