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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큐레이션

주석의 오류와 해석의
모호함을 뛰어넘은 세시풍속 연구
『세시풍속도감』·『조선의 세시를 기록하다』·『서울의 풍속과 세시를 담다』

민속 전통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시풍속과 관련한 어떤 글이라도 한 편씩은 갖고 있다.
‘세시풍속 연구자가 너무 많아서 정작 세시풍속 전문가는 없거나 필요가 없다’라는 해괴한 논법도 성립한다.
그러나 의외로 세시풍속 전문가가 드물다. 가장 큰 문제는 문헌으로 기록된 세시풍속과 그 문헌의 시대적 편차, 17~19세기 세시풍속과 오늘날까지 장기 지속되는 풍속에 관한 탈시대적 이해 및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시풍속도감』 저자 진경환의 작업은 민속의 시대성을 갈파하는 민속사(民俗史)의 제 문제에 천착하는 일이기도 하다. 민속사는 정확한 고증과 주석을 요구하므로 ‘저효율’의 고된 일이기도 하다.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세시기를 합본으로 편찬할 때 『동국세시기』외 『열양세시기』, 『경도잡지』라고 했다. 『동국세시기』를 앞세우는 편찬 태도는 틀린 것으로 『경도잡지』를 앞에 내세웠어야 온당하다. 조선시대 최초의 세시풍속지가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경도잡지』(京都雜志)이기 때문이다.

「평생도(平生圖)」(8폭 중 제1폭), 국립중앙박물관

『경도잡지』의 선행 작업에 힘입어 『동국세시기』도 가능했다. 『경도잡지』의 그릇된 부분까지 그대로 『동국세시기』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세시기의 전범은 역시 『경도잡지』이다. 대표적 실학자 중 한 명인 유득공은 그 자신이 서울 출신인 데다 양반층 일상생활을 가까이서 접하거나 경험했던 만큼 『경도잡지』에서 당시 풍속과 세시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잡지(雜志)를 붙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특정한 기준에 맞춰 항목을 구분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짧게 핵심만 서술되어 있다. 김매순(金邁淳)이나 홍석모(洪錫謨)도 당대의 문사로서 세시기를 집필했으나 유득공은 좀 결이 다른 사람이다. 실사구시 입장에서 문물을 수입해 산업 진흥에 힘쓸 것을 주창해 실학파로 분류된다. 또한 발해사를 과감하게 한국사 체제 안으로 끌어넣는 역사적 혜안을 보여주었다. 규장각 검서로 있었기에 궁중에 비치된 국내외 많은 자료를 섭렵한 것은 물론이다.

진경환은 유득공의 박람강기와 역사적 혜안을 21세기의 시선으로 재구성해 주석을 붙이고 오류를 찾아 새로운 해석의 진미를 보여주고 있다. 『경도잡지』 연구로 18~19세기 서울 지역의 풍속과 양반의 생활상을 저술한 『서울의 풍속과 세시를 담다』(완역 경도잡지)가 선보인 것이 2021년 후반이다. 불과 2년 뒤인 2023년 후반에는 『조선의 세시를 기록하다』(완역 동국세시기)를 펴냈으며, 『열양세시기』 완역주해도 준비 중이다. 이로써 세 권의 대표적 세시기가 그의 손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중이다.

정선, 「정양사(正陽寺)」,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아르케북스241)

진경환이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 출간 사이인 2022년 3월 시점에서 펴낸 『세시기번역과 주석의 제 문제』를 주목한다. 세시기 번역의 문제점과 견고한 주석이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을 역설한 책이다. 아마도 이 책으로 자신이 하는 번역 및 주석, 재해석 작업의 당위성과 학인으로서의 과제를 스스로 언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 작업에 선행해 2018년 여름에 펴낸 『조선의 잡지: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이 있었다. 출판 불황에도 불구하고 낙양의 지가를 끌어올린 이 책에서 조선 후기 서울의 풍속을 소설 읽듯이, 그림 보듯이 그려내어 다중의 주목을 받았다. 2021~2023년 세시기 완역작업의 프롤로그 같은 저술이었다. 이로써 그의 저술은 적어도 2018~2023년까지 장기 지속으로 이루어지는 학인의 ‘외로운 작업’인 것이다.

「풍속도」, 국립민속박물관(민속099724)

2024년 또 하나의 공들인 작업이 출현했다. 『세시풍속도감』이 2024년 봄에 출간된 것이다. 어떤 문화현상을 이해하고 ‘소비’할 때, 도감은 어쩌면 최후를 장식하는 저술이다. 복식도감, 음식도감, 생물도감, 인체도감 등등, 무수한 도감이 출현하고 있다. 『세시풍속도감』은 몇 가지 점에서 그 시도가 간단치 않다.

첫째, 어떤 문화현상 전반에 걸친 문헌 이해가 필수이다. 그가 문헌에 능함은 여러 주석 작업에서 확인되었다.
둘째, 한문으로 정착된 문헌만으로는 안 된다. 민속 현장이라는 구전·구술되는 ‘쓰이지 아니한 역사’에 관한, 문헌과 민간전승 사이의 간극을 알아야 한다.

그 점에서 그는 온전히 민속학자이기도 하다. 도감 작업은 이상의 두 가지 관점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 사진과 그림이라는 비주얼 아카이브의 문제인데, 이는 저작권 등의 문제와 맞물려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세시풍속에 관한 번역과 주석의 심각한 오류와 모호한 해석이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되는 오늘의 풍토에서 어떤 ‘정본’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독자들로서는 적어도 세시풍속 분야에서만큼은 정품을 사서 읽는 기쁨을 나누게 되었다. 그의 추후 작업을 기다려본다.


글 | 주강현_역사민속학자, 전 국립제주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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