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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입소문에서 SNS로

근대 여행산업의 시작은 영국 산업혁명 이후 중산층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전통적으로 귀족과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여행이 경제적 여유를 확보한 중산층의 휴가 수단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18세기 중반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의 명소, 예를 들어 프랑스 니스나 스위스 알프스 같은 지역이 영국인의 휴양지로 떠올랐다. 영국에 이어 유럽 강국의 중산층도 이에 동참해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지역으로 휴가를 떠나기 시작했다.

작가의 글과 그림으로 휴가를 꿈꾸다

1841년에는 영국의 토머스 쿡Thomas Cook이 최초의 근대적 패키지 투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기차를 타고 런던 근교로 당일 휴가를 떠나는 상품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힐링 휴가’인 셈이다. 이 획기적인 상품이 대성공을 거두었는지 토머스 쿡은 패키지 휴양 여행을 속속 출시했다. 유럽 대륙으로 단체 여행객을 보냈고 좀 더 과감하게 이집트나 미국으로도 여행지를 넓혔다. 온천에서 쉬고 문화 유적을 보며 때로는 만국박람회도 갔다.

당시 여행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었다. 중산층은 신문이나 잡지, 혹은 포스터를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 멀리 장거리 휴가를 떠날 계획을 짜기 위해서는 근세 ‘그랜드 투어’ 시기부터 등장해온 가이드북을 구매하기도 했다. 문필가의 여행기도 화제를 모았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서유럽에서 새로운 휴가의 영감을 심어준 대표적 작품이었다.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자의 회화는 부르주아의 휴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여행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이기도 했다. 특히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노르망디 같은 지역은 인상파의 단골 배경이자 중산층의 인기 휴가지로 자리 잡았다. 이는 아시아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지 정보를 얻는 주요 채널은 입소문 그리고 작가의 글과 그림이었다.

SNS와 유튜브, 휴가 정보의 핵심이 되다

세기가 지나 이제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이 최고의 영향력을 구가하고 있다. 여행 프로그램에 등장한 장소는 휴가 여행지 1순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점점 비슷한 지역을 여행하며 유명인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정보의 깊이를 획득하기는 어려워졌다. 그 부족함을 SNS와 유튜브가 파고들었다. 요즘 대중은 휴가지를 선택할 때 여행 크리에이터가 전달하는 정보를 많이 참고한다. 여행 크리에이터는 SNS 채널, 특히 유튜브를 위주로 활동하며 여행 관련 영상을 생산하는 개인 방송 창작가다. 이들이 시청자에 전달하는 생생한 여행 정보는 각색된 방송 프로그램보다 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검색 기능을 탑재한 서비스 플랫폼은 소비자 입장에서 일방향식 방송보다 훨씬 효율적인 정보원이다.

여행 크리에이터의 부상과는 반대로 최근 트렌드 조사 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여행 정보를 전달하는 8종의 채널 중에서 텔레비전 방송은 올해 유일하게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특히 20대의 이탈이 눈에 띈다. 20대의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 이용 의향은 해외여행의 경우 9%, 국내여행의 경우 5%나 하락했다. 대신 그들은 여행을 위해 SNS 이용을 늘리고 있다. 해외여행의 경우 2%, 국내 여행의 경우 이용 의향이 3% 증가했다. 한때 리모컨만 누르면 여행 예능프로그램이 나올 만큼 인기를 구가했지만 SNS의 무서운 성장을 따라가진 못했다.

휴가 상품 구매 방식도 진화를 거듭한다.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 같은 OTAOnline Travel Agency는 실시간 여행 상품 구매 촉진을 위해 기술과 마케팅을 동원한다. 인스타그램에 여행 인플루언서가 올리는 사진을 휴가 패키지 등과 연결해 활발하게 판매하고 있다. 유명한 여행 인플루언서는 인스타그램에 하루에 하나씩 상업적인 목적의 여행 사진을 올리며 세계 여행을 이어간다. 이런 시장 환경은 대중이 휴가지를 선택하는 패턴도 바꿔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우선 휴가 기간을 결정하고 나서 휴가지를 선택한다. 일정만 되면 예산에 맞춰 자신을 사로잡는 곳으로 즉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진정한 휴가를 위하여

여행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휴가지 선택의 방법도 편리해지면서 폐해도 따른다. 휴가철마다 지나친 휴가객이 몰리는 ‘오버투어리즘’으로 여행 명소들이 몸살을 앓는 것이다. ‘애써 휴가를 내 이 먼 곳까지 왔는데 한국말만 들린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SNS 플랫폼의 ‘자동 추천 기능’은 되려 특정 여행지 집중화를 낳고, 이로 인해 특정 여행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에 노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오버투어리즘은 어쩌면 숙명이다.

과도한 관심과 뻔함, 오버투어리즘을 피해 휴가지를 선택할 때 필자는 몇 가지 노하우를 활용한다. 우선 SNS와 방송을 장식하는 여행지는 휴가 리스트에서 제외한다. 시류와 상관없이 되도록 나의 취향과 연결된 이야기가 스며 있는 지역을 찾는다. 즉, 대중성보다는 개별성이다. 그렇기에 휴가 일정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가이드북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접한 소설이나 영화, 미술품 혹은 역사적 사건이 된다.

그리고 머무는 여행보다는 발자취를 좇아가는 이동의 여행을 선호하고, 대도시 주변의 소도시를 종종 찾는다. 때로는 구글에 리뷰가 많이 등재된 장소를 일부러 피하기도 한다. 여행 크리에이터의 게시물도 참고하나, 되도록 먹을거리에 국한한다. 그리고 많이 걷는다. 같은 동네도 최대한 많이, 여러 번 걸으며 구석구석 숨은 장면을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는 마치 휴가의 원전이 된 콘텐츠 속 등장인물에 나를 대입해 여행을 새롭게 생산하려는 행위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휴가를 보내는 사람을 진정한 트래블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휴가는 타인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니까.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허태우 | 여행지『론리플래닛코리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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