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유선(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사람에게 먹고, 자고, 입는 일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담는 도구’가 필요하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용기를 제작해 왔으며,
그중 주변의 식물을 활용해 만드는 바구니는 칼과 같은 간단한 도구와 손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어 일찍부터 널리 사용됐다. 또한, 다른 용기에 비해 가볍고 깨질 염려가 없어 전 세계 모든 민족이 사용하는 생활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바구니는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각 민족의 바구니는 각자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필요와 생활 양식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제작된다. 따라서 바구니는 단순히 물건을 담는 도구를 넘어 사회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낸 사회적 창조물로서 그 사회의 자연환경과 생활문화,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다.

말레이시아 바구니 현지조사
동남아시아는 라탄, 대나무, 야자나무, 판다누스 등 식물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를 활용한 바구니 제작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특히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는 바구니가 쌀의 수확부터 운반, 도정, 조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쓰였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쌀 생산지인 동남아시아에서는 바구니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생활의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이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2년에 걸쳐 ‘동남아시아 바구니’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다.1) 이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바구니가 각 지역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생활양식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4개국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 대상 국가는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선정됐다. 먼저, 내전이나 치안 문제로 접근이 어렵거나 산업화로 인해 바구니 사용이 거의 사라진 국가는 제외했다. 이어서,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반영할 수 있도록 대륙부에서는 베트남(동부 해안)과 태국(내륙), 도서부에서는 말레이시아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다문화 도서 지역)를 선정했다. 이는 시간과 인력의 한계를 고려해 동남아시아 전역을 조사하는 대신, 권역별로 조사 가능한 대표 국가를 선정하여 각 지역 바구니 문화의 주요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현지 조사는 바구니의 제작, 사용, 유통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제작 부문에서는 제작자 면담을 통해 재료, 도구, 제작 방식, 기술 전수와 변화 양상을 조사하였고, 사용 부문에서는 마을과 시장에서 활용 사례를 관찰하고 사용자 경험을 수집했다. 유통 부문에서는 시장과 거리에서 거래 과정을 살피고, 제작자 및 상인과의 면담을 통해 가격과 유통 경로를 파악했다. 아울러 이상의 모든 조사 과정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아카이브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해외 조사의 특성상 짧은 일정과 현지 제보자와의 소통 한계로 현장에서 조사 내용을 충분히 검증하기 어려웠다. 이에 문헌 조사와 현지 전문가 자문을 병행하여 조사 내용의 정확성과 전문성을 보완하고자 했다.
1) 본 조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되었던 ‘한국의 바구니’ 조사사업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바구니’라는 도구를 통해 문화를 해석하는 물질민속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태국 바구니 현지조사
조사 내용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베트남의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하여 실생활에서의 바구니 제작과 사용이 활발하고 수출용 바구니가 많이 제작되는 특징이 있다. 이에 현지 조사에서는 북부 하노이를 중심으로 생업용 전통 바구니와 수출용 바구니의 제작과 유통 과정을 비교·분석했다. 더불어 중부 지역 꺼뚜족 소수민족 바구니와 남부 어촌의 바구니배 제작 과정을 조사했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바구니 사용이 활발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발리와 욕야카르타를 중심으로 전통 바구니의 제작과 활용 방식을 살펴봤다. 특히 힌두교가 우세한 발리에서는 종교의례와 밀접하게 연관된 의례용 바구니를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국가 주도의 공예 센터를 중심으로 바구니 생산을 이어가고 있는 태국의 경우, 지역별로 바구니 제작과 활용 양상을 비교하고, 바구니 산업의 발전 과정 및 이에 따른 소재와 형태 변화를 조사했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ㆍ다종족 국가로, 다양한 원주민들의 바구니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반도와 보르네오섬의 원주민 바구니를 조사하여 환경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종족의 바구니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했다.
바구니는 단순한 생활 도구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과 자연, 문화가 어우러진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바구니를 만들고 사용하는 모습을 통해 동남아시아인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기초작업으로써, 동남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점과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사 성과를 담고 있는 보고서 『엮고 담다, 바구니에 담긴 동남아시아의 생활문화』는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
바구니인가? 배인가?
베트남 푸옌성 투이안현 푸미 마을에서는 대형 광주리를 연상케 하는 바구니 배를 타고 조업하는 어민들을 볼 수 있다. 이 바구니 배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어민들이 배에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는 대나무를 엮어 바구니 형태로 제작한 후, 방수를 위해 소똥과 기름을 발랐다. 최근에는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합성수지를 덧씌우거나, 아예 합성수지로 제작된 바구니 배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 이 바구니 배는 베트남 호이안 등 관광지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바구니 배 제작
인도네시아
신에게 바치는 바구니, 소카시(Sokasi)
힌두교를 믿는 인도네시아 발리 사람들은 신에게 예물을 바칠 때 ‘소카시’라는 사각형 바구니를 사용한다. 의례용으로 사용되는 소카시는 보통 뚜껑과 몸체에 정교한 무늬를 새겨 넣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를 완성하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발리의 사라스와티의 날(Hari Raya Saraswati)과 같은 축제 때는 각 가정에서 준비한 화려한 소카시를 볼 수 있다.

제물로 바쳐진 소카시
태국
행운을 담는 고기바구니, 따컹(Takhong)
태국의 ‘따컹’은 작은 강이나 호수에서 민물고기나 게를 잡을 때 사용하는 고기 바구니다. 기본적인 원통형 외에도 옷 모양의 ‘따컹스아’, 오리 모양의 ‘따컹펫’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따컹은 부를 상징하는 물고기를 잡는 데 쓰인다는 점에서, 돈이 들어오는 행운의 물건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태국 사람들은 따컹 모양의 장식품을 차에 걸거나, 실제 따컹을 문이나 처마 밑에 걸어두기도 한다.

따컹스아와 따컹펫
말레이시아
결혼의 상징, 신통쁭안띤(Sintong Pengantin)
말레이시아 사라왁의 이반족(Iban)에게는 ‘신통쁭안띤’이라 불리는 특별한 바구니가 있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무늬가 새겨진 이 바구니는, 변치 않는 부부의 인연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는 시어머니가 직접 만들며,
여의치 않으면 시댁 여성들이 함께 제작했다.
결혼식 날, 신랑은 바구니에 피낭야자 열매를 담아 신부 측에 선물하고, 신부는 이를 받아 예물을 담아 시댁으로 가져간다.

신통쁭안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