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아카이브에서는 박물관 각 과에서 생산한 자료를 이관받거나 기증자들의 자료를 수증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 민속아카이브에서는 자료를 구입하지 않으므로, 기증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이다. 이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기증 전시를 개최하여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기증 전시는 정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미공개 기증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자리이다. 그리고 희귀하거나 고가의 물건이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작은 것일지라도 아카이브 자료로서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음을 관람객들에게 알려 기증을 이끌어내는 시도이기도 하다.
열람실, 《기증자의 서가》로 거듭나다
2021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가 문을 열면서 민속아카이브 정보센터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곳에서는 민속아카이브 자료를 검색하고 도서를 열람할 수 있으며, 전시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정보센터 안쪽에 마련된 아카이브 열람실에서는 실물 자료와 각종 민속 전문 자료를 살펴보거나 작은 세미나를 열 수 있다. 2022년에는 열람실 한편을 전시 공간으로 꾸미고 《기증자의 서가》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를 시작했다. 개편 시기를 제외하고 언제든 관람할 수 있도록 상시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도 유물과학과의 기증자료전에서 소장품과 함께 민속아카이브 자료와 기증자를 소개한 적이 있지만, 독립된 공간과 《기증자의 서가》라는 이름을 마련하여 민속아카이브 기증자들과 자료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첫 《기증자의 서가》에서는 민속학자와 사진가들을 조명했다. 최래옥, 최운식, 윤서석, 김승찬, 이종철, 이창호, 한정엽 등이 남긴 조사 노트, 민속 조사 카드, 필름, 사진, 카메라, 인화 도구 등 실물 자료를 전시하고, 한쪽 벽면에는 2007년 이래로 이어진 기증의 역사와 기증자들의 이름을 소개했다.
2023년에는 테라카도 유키오와 박찬필의 농촌 조사 자료, 박찬일, 노중훈, 하정민, 윤서석 등이 수집한 음식점 조사 자료를 공개해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류익진과 오세화가 기증한 사진 및 문서와 같은 개인 생활사 자료도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이처럼 《기증자의 서가》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생동감 넘치는 민속 조사 현장과 열정이 담긴 기록물, 기증자들의 일상을 직접 마주하며 민속아카이브 자료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주”의 기록을 풀다
2024년 12월 새롭게 선보인 《기증자의 서가》는 2022년부터 이어진 전시 형태를 살리면서 “이주”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에 따라 주제와 연관된 기증자로 아일린 커리어, 채예진, 이 발레리야, 유 보리스, 한 블라디미르, 고려일보를 선정했다.
민속소식과 자료집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아일린 커리어 자료는 2023년 8월 영국에서 받은 것으로, 100년 전 영국에서 서울로 이사 온 아일린 가족과 당시 한국에 살았던 외국인들의 생생한 일상을 보여준다.
채예진, 이 발레리야, 유 보리스, 한 블라디미르와 고려일보가 2024년 3월 카자흐스탄에서 기증한 자료에는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에 정착하였던 고려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잘 담겨 있다. 채예진은 가족사진과 고려인들의 정착 초기 생활상이 담긴 그림일기, 이 발레리야는 가족사진과 외할머니의 학위 논문, 증조할아버지의 회고록 등을 기증했다. 유 보리스는 자신의 부모님 사진, 한 블라디미르는 그의 아버지이자 카자흐스탄의 뛰어난 음악가인 한 야곱이 수집한 사진, 영상, 도서, 음원 등을 기증했다. 고려일보는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취재 사진과 고려일보 90주년 기념 도서 등을 기증했다.
작은 공간에 담은 네 가지 이야기
《기증자의 서가》 전시 공간의 크기는 9제곱미터를 조금 넘는다. 상설·특별전시관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이 공간에 기증자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기증 자료를 소개하며,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민속아카이브 팀은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기증자의 서가》 전시는 총 4부로 구성했다.
1부는 도서, 문서류 실물 자료를 선보인다. 아일린 커리어 기증 방명록, 채예진 기증 그림일기, 이 발레리야 기증 이력서, 한 블라디미르 기증한 야곱 회고록, 고려일보 발간 잡지를 만날 수 있다.

1부 전시장 모습
2부는 벽면 전체를 이용하여 기증 자료의 대부분인 사진들을 기증자별로 소개한다. 100년 전 영국인 가족의 서울살이부터 00년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생활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둘러볼 수 있다. 책, 음반, 비디오테이프 등의 실물 자료를 함께 배치해 기증 자료들의 특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아일린 커리어 가족의 거실 사진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 가구와 서양식 가구가 어우러진 당시의 분위기를 축소모형으로 재현했다. 그리고 음악가 한 야곱이 러시아 꼬페스크 지역에서 수집한 고려인 노래를 직접 들어볼 수 있어, 그의 큰 업적 중 하나인 고려인 노래 채록 작업을 실감할 수 있다.

2부 전시장 모습
3부는 기증자 명단과 자료 기증 과정, 자료집을 소개한다. 2007년부터 2024년까지 소중한 자료를 기증한 기증자들의 성함과 자료 내용을 빠짐없이 실었다. 영국과 카자흐스탄에서 진행된 기증 과정을 설명하고, 유물과학과 직원들의 기증 업무 모습을 담은 영상도 디지털 액자로 보여준다. 최근까지 발간한 민속아카이브 기증 자료집도 함께 읽을 수 있다.

3부 전시장 모습
4부는 관람객 체험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아일린 여사가 부른 아리랑과 한 야곱이 작곡한 고려 아리랑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강제 이주 후 고려인들의 정착 생활을 그린 채예진 기증 그림 일기와 아일린 커리어의 언니 패트리샤가 한국 생활을 회고하며 쓴 수필 “가맙습니다(KAMAPSAMNEDA)”를 번역본과 함께 읽어볼 수 있다.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는 슬라이드 필름 체험도 빼놓지 않았다. 전시하지 못한 사진들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제작해 직접 감상할 수 있게 했다.

4부 전시장 모습
관람객과 함께 하는 《기증자의 서가》
《기증자의 서가》 전시는 약 1년간 이어진다. 민속아카이브 팀은 관람객들이 전시에서 관심 있게 본 내용과 유익했던 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고자 설문 조사를 마련했다. 온라인 설문으로도 가능하지만, 손으로 쓰는 즐거움을 나누고자 종이 설문지와 수집함을 두었다. 설문지에는 관람객의 기본 정보와 기증 전시 및 민속아카이브 정보센터 관람 소감, 건의 사항을 적을 수 있다.

관람객 엽서
많은 분들이 직접 설문지를 작성해 의견을 남겼다.
어린 관람객들은 고려인이라는 단어와 그들의 생활상 자체가 새로웠다고 전했다. 기증자 예우에 최선을 다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응도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경기 아리랑과는 다른 아일린 커리어의 아리랑, 한 야곱이 작곡한 고려 아리랑도 흥미롭게 들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수집함 앞에는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기념품 엽서 6종도 마련했다. 그 모습이 마치 우체통처럼 보였는지, 종종 관람객들은 수집함에 엽서를 넣곤 했다. 몇몇 엽서에는 어린 관람객들이 정성스러운 글씨로 응원의 글을 적어 줬다. 그 글들을 읽으며 전시를 준비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증 전시실 맞은편에 있는 무인 검색대에서는 디지털로 변환한 기증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기증 전시에 소개되지 않은 자료들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속아카이브 팀은 앞으로도 소중한 기증 자료를 소개하기 위해 정성을 다할 것이다. 다음 전시에서는 어떤 분들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 및 생활문화와 관련된
여러분의 소중한 자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증을 원하시는 분은 QR 코드로 절차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