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종이를 사용했다. 고대 중국, 후한 시대부터 만들어져 21세기까지 두루 쓰이며 우리의 삶 속에 남아있는 종이. 비록 많은 책이나 인쇄물이 디지털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종이 책을 선호하고, 태블릿 PC보다는 종이에 글을 적어 남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이는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의 삶과 함께할 수 있을까?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종이, 봄날을 만나다》에서는 종이와 함께했던 우리의 과거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 종이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까지 제시한다.
다양한 공예로 승화되다, ‘창의성의 향연’
그림을 그리고 기록하는 것 이외에 종이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전시실에 입장하기 전, 봄날의 꽃을 닮은 지화 작품인 <백화>가 천장을 가득 채운 모습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종이의 하얀 특징을 최대한으로 살려낸 <백화>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까만 먹으로 그려진 박대성 화백의 <효취>는 종이의 다양한 모습을 실감케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옆으로 배치된 여러 소반과 안경집, 표주박이었다. 종이로 만든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견고해 보였다.
종이 공예의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지승, 지호, 지장이다. 지승은 종이로 끈을 꼬아 만드는 것이고, 지호는 종이를 풀에 섞어 종이 죽을 만들어 공예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지장은 종이로 장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1부인 ‘창의성의 향연’에서는 종이를 활용한 이 세 가지 기법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음식을 받치고, 물을 떠 마시고, 안경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종이는 2부에서 더욱더 다양하게 만나 볼 수 있었다.
멋과 맛과 결을 품고, 나무에서 우리의 옆까지
닥나무 껍질을 벗겨 삶고, 두드리고, 바람에 건조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종이. 2부에서는 이 종이가 우리의 의식주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종이에 기름을 먹여 젖지 않도록 해 비가 오는 날 썼던 갈모, 종이를 엮어 만든 신발인 미투리는 신체를 보호하는 ‘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또 종이는 도포를 만들기 위한 본으로 사용되거나, 군복 안에 솜 대신 채워져 방한을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2부에서 만날 수 있는 것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갓집이었다. 머리에 쓰는 갓을 보관할 수 있는 상자는 갓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인지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종이는 이처럼 기물을 장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보관하고, 보호하는 데 쓰였다. 물에 젖고, 찢어진다는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기름을 먹여 방수 재질로 만들었다. 조상들의 지혜에는 그저 감탄이 나온다.
갓을 보관하기 위해 갓집으로 만들어지던 종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양식 의복과 모자를 담는 상자로 변모해갔다. 이처럼 종이는 시대와 흐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며 우리의 곁에 함께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지평의 확장’
종이는 이제 더욱 나아가고자 한다. 단순히 기록하고, 꾸미고, 포장재로 사용되는 것에서 벗어나 미술작품으로서 승화된다. 3부에서는 현대 미술과 종이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3부 ‘지평의 확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은 단순히 종이가 재료라는 것에서 벗어나 앞서 이야기한 종이 공예의 기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끈을 꼬아 만드는 지승을 활용해 달항아리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 <품달>과 옷으로 만든 <하얀여름>. 종이가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물건에서 벗어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물건으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나무에서 나무로>. 이 모든 작품은 종이 공예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려준다. 특히 <餘>, <소나무숲>의 작가인 이진윤 패션디자이너는 실크와 한지를 혼합한 소재로 옷을 만들어냈다. 옷을 만들기 위해 본을 뜨거나, 옷 안을 채우는 것보다 더욱 나아가 어떻게 종이를 옷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이다.
종이야 너는 어디에서 왔니?
종이야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종이야 너는 어디로 가니?
전통을 갖춤과 동시에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는 종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고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종이는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하고 있다. 종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믿기지 않을 만큼 여러 형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앞으로 종이는 어떤 형태로 우리와 함께하게 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전시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종이, 봄날을 만나다》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개방형 수장고 16에서 9월 22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글 | 현다은_제12기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