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아현동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당시 학교 주변에는 각종 교회나 성당들이 참 많았는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개관 소식으로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서소문은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는 곳으로 조선 중기 이후 400년의 긴 세월 동안 국사범의 처형장으로 이용되었다. 특히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00년대에는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됐다. 후대에 이르러 순교자 중 44명이 성인으로 선포되었고 이를 기리기 위해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순교 성지로 지정했다. 이후 1973년에 근린공원이 됐지만,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로 인해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근래에는 중구의 재활용 쓰레기처리장과 공용주차장으로 활용돼 오다가 드디어 2019년, 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천주교서울대교구와 서울시 그리고 중구청에서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역사박물관 건축이 결정된 이후 공모전을 거쳐 현재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기존에 조성돼 있던 공원과 지하 주차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박물관 건물 전체가 지하에 구성된 아주 독특한 구조로 돼 있다. 땅의 표면을 중심으로 지상과 지하의 공간을 구분하고 시선을 자연스럽게 하늘로 이끄는 건축이 매우 인상적이다. 지상에서는 그저 푸른 공원만 보이는데, 산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하의 박물관으로 유도되는 동선을 가지고 있다. 내리막길 혹은 계단, 터널 등 박물관 진입로가 다양한 편으로 입구에 도착할 때쯤이면 촘촘히 쌓인 붉은 벽돌벽이 직선과 곡선으로 유려하게 시선을 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넓게 펼쳐지는 하늘을 볼 수 있다. 특히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주한 하늘은 이곳이 지닌 슬픈 역사를 다시 상기시킨다.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화려한 외형을 뽐낼 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오히려 지하로 숨어들었다. 또한 촘촘함이 돋보이는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해 소박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서소문 성지’라는 역사적 특성을 건축 공간에도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박물관의 외형이 한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내부 구조가 조금 복잡할지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단순한 동선을 가지고 있어 관람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계단 혹은 경사로의 단순한 동선에 따라 경당, 전시실, 미디어실 등을 자연스럽게 둘러볼 수 있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가장 큰 특이점은 이동 공간과 전시장 사이가 문으로 분리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획전시실은 위층에서도 훤히 보여 굉장한 개방감을 준다. 그러나 실질적인 평수가 넓지 않아 어떤 전시가 기획되더라도 양적인 부분에서 다소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좁고 긴 통로와 같은 공간이라서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시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 글과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상설전시장에서 상쇄된다. 마치 성당의 아치를 떠올리게 만드는 내부 장식이 모든 천장을 꾸미고 있고 그 아래에 정갈하게 진열된 전시물들을 보면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든다.
상설전시장은 전시(특히 유물 중심의 상설전시)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전시된 유물을 교체하기 때문에 전시장을 구성하는 건축 내부에 과한 인테리어는 지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과감하게 건축과 전시 공간을 일체화하였다. 공간 전체를 메우는 섬세함이 박물관이 외형에서부터 강조하던 분위기를 똑같이 형성한다. 이러한 느낌은 전시장과 전시장 사이의 이동 공간으로 이어진다. 유리문으로 밖을 보면 억압받았던 과거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서소문에 담긴 천주교의 비극적인 역사를 기리기 위한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 있었다.
문화역서울284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나와 ‘서울로 7017’을 지나 10여 분 걸으면 문화역서울284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장소의 역사적 특수성을 앞서 소개한 박물관과는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천주교 역사의 비극을 잊지 않으면서 아픈 과거를 보듬고 치유하고자 하는 박물관과는 다르게 문화역서울284는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현재의 대한민국을 상기시킨다. 비록 일본 군대의 편의를 위해 세워진 건물이지만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함께하면서 자본주의적 산업화 중심의 축으로 인정돼 대부분의 건축물이 과거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근대 전시 공간으로서 익숙한 ‘화이트 큐브(White Cube, 밝은 흰색의 벽면에 작품을 간격을 두어 배치하는 전시 방식 )’와는 정반대로 역사적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작품이 우선적으로 돋보여야 할 전시 공간으로서 큰 단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문화 복합 공간으로 재개관된 이후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각, 회화,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성공적으로 전시되었다. 최근에는 서울시에 있는 전시장 중 가장 트렌디한 곳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성공은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찾는 관람자들에게 전시 주제와 특수 공간에서 파생되는 신선함을 전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전시장 혹은 현대 건축물과는 확연히 다른 공간 구성 매번 변화하는 전시 콘텐츠의 조합은 늘 새로운 ‘스펙터클(Spectacle,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는 화려하고 현란한 볼거리)’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지친 일상 속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비일상적인 경험이다.
그 어떤 전시 콘텐츠도 문화역서울284만의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손쉽게 스펙터클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시 주제 자체가 스펙터클일 때에는 어떨까? 6월 21일 개막한 《reSOUND: 울림, 그 너머》는 디지털 미디어 테크놀로지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디스트릭트(d’strict)’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이다. 공간 전체를 울리는 고품질 음향과 고화질의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신비로운 시각 이미지들은 관람자가 원하는 ‘스펙터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미 스펙터클을 주제로 하는 이 전시는 ‘디스트릭트’가 추구하는 압도적인 공간 전환의 경험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최대의 화두였을 것이다.
몰입을 위해 시야를 꽉 채워야 하는 미디어 패널은 주어진 공간과 다른 이질적인 직사각형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또, 어둠 속에서 오직 음향만을 이용해 관람자의 공감각을 끌어내는 작품은 주어진 공간과 잘 어우러졌는지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2층 전체를 할애하여 상영되었던 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해상도 엘이디 스크린 (LED Screen)을 보유한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런던 아우터넷(Outernet)에서 상영되었던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아무래도 미디어에 철저히 최적화된 이전 공간에서의 상영보다는 몰입감이 다소 떨어졌다. 문화역서울284는 모든 전시 주제에 적합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는 전시 자체의 흥미와는 별개로 공간 자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비일상(非日常), ‘스펙터클’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역사의 중심지에서 이제는 시민들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완벽히 재탄생한 문화역서울284는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다.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목적을 잊지 않는 공간이 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상 콘텐츠가 엄청난 호황을 누리면서 쇼츠(shorts) 열풍이 일고 있다. 이에 질세라 전시 콘텐츠도 점차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펙터클 전시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스펙터클은 라틴어 스펙타쿨룸(spectaculum)에서 파생된 단어로 14세기 이후에는 ‘특별히 준비되고 마련된 전시’를 의미했다고 한다. 스펙터클이 그저 순간의 즐거움, 자극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었다면 전시는 점차 시각 자극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펙터클은 관람자에게 비일상을 선사하는 일,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비일상은 휴식이 될 수도, 새로운 영감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직접 몸을 움직여 관찰하는 경험은 일상에 지쳐 ‘나’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순간을 보상받는 소중한 시간이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는 종교 박해의 역사를 추모하고 종교를 통한 마음의 안식에 대해 고찰할 수 있었고, 문화역서울284에서는 역사를 담은 건축과 함께 다양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복합 문화 공간들이 늘어나고 오랫동안 소중히 유지되기를 바란다.
글 | 임서윤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