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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박물관

마음까지 물들이는 빨간 봉숭아 꽃물

마당 한쪽에 있던 봉숭아를 따서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던 스무 살의 이모도 이젠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사는 일로 바빠 오지 못하던 엄마를 대신해 빨간 봉숭아 꽃물로 마음을 보듬어 주던 이모의 손길은 아직도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붉게 물들어 있다.

여름을 물들이는 붉은색, 봉숭아
여름 한낮 할머니 집 마당은 더위로 가득했다. 세상 모든 것이 더위 속에 갇혀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을 때 마당 한쪽에는 샐비어나 봉숭아 같은 붉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 유유히 더위를 즐기고 있었다. 가족들 누구도 씨를 뿌린 적이 없었지만 해마다 같은 자리에 꽃을 피우며 함께 여름을 보내는 꽃들이었다. 더위와 심심함에 지친 나는 집안일과 밭일에 바쁜 이모 뒤를 따라다니며 봉숭아 물을 들여달라고 졸라댔다. 다소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이모는 엄마와 떨어져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말없이 봉숭아 꽃대의 허리를 꺾어 얕은 함지박에 담았다. 내가 샐비어 꽃을 뽑아 달큼한 꿀물을 빨 때마다 이모는 벌에 쏘인다며 목청을 높였다.

마루로 올라온 이모가 콩콩거리며 곱게 봉숭아를 찧자 이모네 방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모의 친구들인 향란이 이모, 옥형이 이모가 백반이나 굵은소금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제 더운 여름을 지나 첫눈이 내릴 겨울까지 손톱 끝에 남아 있을 봉숭아 물들이기를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다. 아니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붉디붉은 봉숭아를 더 빨갛게 물들여줄 이모들의 수다와 나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림_심영애(어반스케치 회원)

사랑을 이어주고 악령을 쫓다
이모들은 그때 스물을 넘어 곧 시집갈 나이를 바라보는 처녀들이었다. 열 살 무렵의 나는 너무 어려 이모들의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당시 이모들은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줄 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오는 날까지 손톱 위에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이모들에게도 가슴 설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 붉은색 봉숭아 꽃물은 아마도 많은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젊은 생명과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표식과도 같았을 것이다. 실제로 『동국세시기』라는 책에는 여인들이 봉숭아 물을 들여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실제로 봉숭아 꽃물의 붉은색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사람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가시광선은 620~750nm(나노미터) 길이의 빨간색이다. 봉숭아 꽃물의 붉은색 또한 그러하다.

붉은색의 기운을 지닌 봉숭아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전해 온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풍습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풍습을 조홍(爪紅, つまくれない)이라 불렀는데 마지문(マジムン, 악령)을 쫓아낼 수 있는 기운을 준다고 믿었다.

그림_정을순(어반스케치 회원)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던 그날
이모는 내 손톱 위에 찬찬히 잘 찧은 봉숭아 꽃잎을 올려놓은 뒤, 광목으로 칭칭 감고 실로 꽁꽁 묶어 주었다. 이모 친구들 중에 나를 가장 예뻐했던 옥형이 이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든 게 손톱에 남아 있으면 엄마가 널 보러 올 거야”라고 말했다. 그때 이모가 옥형이 이모를 툭 치며 말했다. “하지 마. 걔 엄마 보고 싶어서 밤에 울고 그래.” 내 부모님은 한 줌도 안 되는 기성복들을 들고 오일장을 돌며 겨우 생활을 꾸려가는 처지였다. 그래서 나를 일찍부터 할머니 집에 맡겨 놓고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 손자가 아니라 아들처럼 살아서 그런 줄 몰랐는데 그때는 잠결에도 엄마를 찾았던 모양이다. 손톱 위에 물든 봉숭아 자국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혹시 엄마가 오지 않을까 멀리 차가 다니는 곳까지 나갔다 온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엄마는 사는 일에 바빠 쉽게 나를 보러 오지 못했고 나는 나중에야 엄마 집으로 가서 엄마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오랜만에 본 엄마와 아버지는 어색하기만 했고, 나는 할머니 집으로 다시 가겠다며 울어대서 엄마를 속상하게 한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가끔 딸아이가 봉숭아 물을 들여주곤 한다. 예전처럼 마당에 핀 봉숭아를 꺾어 오는 것이 아니라 유통업체에서 파는, 손톱 위에 얹기만 하면 되는 봉숭아 물들이기 키트를 사용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붉은 봉숭아를 딸아이와 함께 손톱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물들이면 되니까 말이다. 그날 나와 함께 들였던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오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은 덕분일까? 이모는 착하고 다정한 남편을 만났다. 나는 평생 한 번도 이모부가 이모에게 화내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이모에게 내게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던 여름날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척 애쓰는 어린 조카가 안쓰러워 봉숭아 꽃물을 더 정성스럽게 들여주었노라 그리 말씀하셨다.


글 | 이원복_작가, 필명 이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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