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선망어선이 들어오는 날
양손 가득 고등어를 사 오셨던
어머니를 기억하시나요.
새벽부터 수작업으로 고등어를 분류하던 부산 사람들의 삶의 터전 부산공동어시장.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시끌벅적 생기가 넘쳐나던 자갈치시장.
고등어를 갈비삼아 허기를 달래던
고등어 굽는 연기가 자욱했던
광복동 고갈비골목.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부산을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은 2024년 6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K-museums 공동기획전 《노릇노릇 부산》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부산시어 고등어와 부산의 해양수산문화를 주제로 한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이다. 전시에는 참고등어 박제표본과 공동어시장 경매 물품 등 100여 점의 다양한 자료를 선보인다.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부며들다> –파닥파닥 고등어
2부 <고며들다> –노릇노릇 고갈비
1부 <부며들다> –파닥파닥 고등어
전 세계 바다를 여행하던 고등어가 제주도를 지나 부산에 정착하였다. 대형선망어선을 타고 부산 남항에 도착한 고등어는 부산공동어시장과 자갈치시장을 근거지로 삼고 전국의 유통시장으로 확산되어 우리 집 식탁으로 스며들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부산에 스며든 고등어가 어떤 전략으로 부산의 시어市魚로 지정되었을까? 그 답은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수산시장으로 전국 수산물의 30%를 공급하는 전국 최대의 산지위판장이다. 특히 고등어 단일 어종으로 한정하면 고등어 유통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고등어 유통의 중심지로 고등어가 부산의 시어로 브랜드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고등어의 유통 과정을 살펴보면 대형선망어선이 고등어를 가득 싣고 들어오면 늦은 밤부터 1,000명이 넘는 수작업자들의 분류 작업이 이루어진다. 분류작업이 끝난 새벽, 긴박한 분위기 속에 경매가 시작되어 중도매인을 통해 전국으로 유통된다. 덕분에 부산은 가장 신선한 고등어를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주변에 고등어를 취급하는 식당이 많다. 또한, 광복동 일대에 형성된 고갈비골목은 부산만의 독특한 고갈비문화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경매사의 수지법
수산물 경매는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있다. 낮은 가격부터 시작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낙찰을 받는 ‘오름경매방식(상향식경매)’, 높은 가격부터 시작해 가격을 점점 낮추면서 가장 먼저 응찰한 사람을 구매자로 결정하는 ‘내림경매방식(하향식경매)’, 중도매인들이 손가락으로 가격을 표시하면 경매사는 그들이 제시한 가격을 공표하면서 진행하는 방식을 ‘동시호가식’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동시호가식 경매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자갈치시장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시끌벅적한 부산을 느낄 수 있는 곳,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부산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자갈치시장이다. 신선하고 저렴한 고등어를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부산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며,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어머니께서 매일 들르시던 곳, 이제는 전 국민과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관광명소인 이곳이 바로 자갈치시장이다. 왁자지껄한 삶의 현장 자갈치시장에도 고등어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부산MBC 라디오 <생방송 자갈치 아지매>
매일 아침 8시 부산의 소식을 부산의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부산MBC 라디오 <생방송 자갈치 아지매>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이 ‘자갈치 아지매’일 정도로 자갈치시장은 부산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삶 그 자체였다.
2부 <고며들다> –노릇노릇 고갈비
부산의 시어市魚는 고등어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사랑받았고 오늘날에도 수산물 소비량 1~2위를 놓치지 않는 국민생선이다. 1970~80년대 부산 광복동을 중심으로 고갈비골목이 생겨나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현재에도 송도 고등어축제가 매년 10월 열리고, 충무동 골목시장에 고갈비거리가 생겨날 만큼 고등어에 진심인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고등어에 스며들어버린 부산사람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고며들어버렸다.
7080 고갈비골목
저녁만 되면 고등어 굽는 냄새에 이끌려 하나둘씩 고갈비가게로 모여들었다. 미닫이문을 열며 “아지매 고갈비하고 소주 한 병 주이소.” 하고 자리에 앉으면 “소주가 뭐꼬? 우리 집엔 그런 거 없다.”라고 대답하시고는 고갈비만 내어주시는 사장님. 그러면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한마디씩 거들기 일쑤다.
“저기 아저씨, 이 가게는 소주 한 병 달라고 하면 고갈비 다 잡술 때까지 안나와예, 이순신꼬냑 달라 그래야 소주 줍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해 있으면 또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또 한마디 한다.
“이순신꼬냑 달라 그래야 소주 준다니까예.”
이제야 제대로 주문을 하면 아주머니는 소주 한 병을 내주신다. 이런 모습은 1970~80년대의 광복동 고갈비 골목의 흔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한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2만 원이면 갈비 하나에 꼬냑 1병으로 낭만에 젖어들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잊혀가는 광복동 고갈비골목과 식당 내부의 모습을 구현하였다. 아날로그 티비에서는 고갈비 사장님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식당 내부의 메뉴판, 테이블 등을 재현하여 그 시절의 향수에 젖어들 수 있게 기획하였다. 식당 외부는 노상 테이블을 두고 고갈비 관련 칼럼과 예전에 사용하던 은어 설명까지, 고등어에 고며들 수밖에 없도록 구성하였다.
밥상 위의 고등어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김치와 국, 그리고 생선구이이다. 유물과 고문헌을 통해 우리는 옛날부터 고등어 없이는 못사는 민족임을 알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생선이 고등어임을 확인했다. 영양학적으로도 오메가3와 DHA가 풍부한 슈퍼푸드인 고등어는 구이도 조림도 맛있는데 튀김, 회, 초밥에 파스타, 햄버거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요리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더 맛있는 고등어 요리부터 나만의 레시피까지, 혼자 고며들어버리기 전에 모두와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구성하였다.
고등어가 전 세계 바다를 여행하다 부산에 부며들었고, 한국인은 자연스레 고등어에 고며들었다. 이번 k-museums 공동기획전을 통해 부산시어가 고등어임을 재인식하고 부산의 해양민속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 전시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고갈비에 이순신꼬냑 한 잔?
글 | 배효원_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