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거닐다 보면 수많은 사람 뒤로 우두커니 서 있는 공중전화를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마주할 때면 핸드폰이 없던 시절, 문전성시를 이루던 공중전화의 ‘왕년’이 생각나 씁쓸할 때가 있다. 공중전화는 휴대전화가 개발되기 전 1990년대에 주로 사용됐으며 2010년대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사용률이 떨어졌다.
공중전화는 가장 오래된 벽괘형에서 예전에 흔히 사용했던 은색 버튼식 공중전화기를 거쳐 최근에는 영상통화가 가능한 기기로까지 개발됐다고 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의 사용 모습과 빈도,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공중전화기의 형태와 기능은 많이 변화했지만 남녀노소,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60대 남성이든, 20대 여성이든 그 추억 속에는 공중전화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이 닿는 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타인의 따뜻한 마음이 닿던 곳
필자의 아버지는 공중전화와 삐삐, 휴대전화를 모두 사용한 세대이다. 아버지가 공중전화를 주로 사용하던 시기는 1990년대로 이때의 공중전화는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1990년대 공중전화가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참 이상한 곳이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공중전화를 생각하면 ‘뒷사람’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공중전화 앞에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선 탓에 통화를 원하는 만큼 길게 하지 못했고, 어쩌다 통화가 길어질 때면 삐삐를 들고 조급해하는 뒷사람의 눈총을 받는 일이 예사였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넌지시 공중전화 부스를 발로 차기도 했고 통화를 빨리 끝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자신에게는 야박했던 뒷사람이 자신의 뒷사람을 위해서는 사용하고 남은 잔돈을 공중전화 부스 위에 올려놓고 가거나 통화 시간이 남았을 때면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놓고 가는 배려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자연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따뜻한 문화였다며 그 시절의 낭만이 그립다고 말씀하신다.
간절함이 닿는 곳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군인이나 어린이들이 공중전화를 많이 사용하였다. 따라서 발신자가 돈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도록 수신자 부담 전화가 생겼다. 수신자 부담 전화는 흔히 ‘콜렉트콜’로 불리었다. 이 콜렉트콜은 수신자가 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도록 5초간 무료로 통화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때 자신이 누군지 명확히 밝혀야 수신자가 전화를 끊지 않았다. 필자도 어린 시절 준비물을 놓고 오면 학교 정문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5초간 엄마가 전화를 끊지 않도록 빠르고 큰 소리로 “엄마! 나 00이야! 전화 끊지 마!”라고 다급하게 외치곤 했다. 그래서 방학식처럼 부모님들이 학교에 많이 오는 날에는 공중전화 앞에서 간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친구들로 가득했고 덕분에 친구들 이름을 한 번씩 들어볼 수 있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공중전화에 간절한 마음을 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외부와 단절된 군인들은 훈련을 열심히 받으면 포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할 기회를 얻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것이 흔하지 않은 기회인 데다가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그 시간이 소중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필자에게는 다섯 살 많은 오빠가 있다. 오빠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 보호자가 본인을 데리러 와야 외출을 나갈 수 있다고 하여 공중전화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수신음이 가는 그 잠깐 동안 ‘부모님이 전화를 안 받아서 자신을 데리러 오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공중전화 앞에는 오빠처럼 가족이 전화를 받아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군인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필자와 그 주변의 추억들을 돌아보면 1990년대 공중전화에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마음이 오고 갔다면 2000년대 초반의 공중전화에서는 간절한 마음들이 오간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공중전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누구든 급할 때 공중전화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중전화는 지금까지 항상 사람들 곁에서 마음을 전해왔듯 앞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공중전화는 여전히 어떤 이의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며 누군가의 추억이 되어줄 것이다.
글 | 장윤정_민속연구과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