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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큐레이션

민속학도의 『농촌』 읽기

미국의 저명한 민속학자 댄 밴-아모스Dan Ben-Amons는 19세기 민속학folklore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할 무렵, 당시 지식인들은 그것의 중요한 속성으로 전통성traditionalism, 비합리성irrationality, 그리고 농촌성rurality을 제시했다고 언급한다.1)

실제로 민속학은 그 출발부터 현재까지 농촌을 배경으로 다양한 연구 성과를 축적해 왔으며, 그 학문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민속학 연구에서 농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이클 우즈Michael Woods의 『농촌 -지리학의 눈으로 보는 농촌의 삶, 장소 그리고 지속가능성』따비, 2016은 현대 농촌을 배경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민속학도에게 매우 중요하고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이 책은 농촌에 대한 고전적인 이론이나 개념에 대한 재검토로부터 시작해 최근 지리학을 비롯한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을 아우르는 최신 이론과 제 개념들을 수용해 논의를 전개한다. 또한 약 400쪽에 이르는 분량 중 40여 쪽이 참고문헌으로 이뤄질 정도로, 농촌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시각을 해박하고, 종합적으로 정리·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2011년 처음 발간된 이래 현대 농촌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대 농촌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우즈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농촌의 모든 것을 홀로 묘사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국가, 미디어, 기업, 농민, 농촌 주민, 연구자, 관광객 및 당일치기 방문객, 압력집단 및 NGO, 개발기구, 투자자 및 투기자,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 등이 매일매일 농촌의 생산과 재생산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농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하나의 조망점은 없다”는 관찰2장을 재확인할 수있다Murdoch, 2003: 274. 농촌은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고, 여러 주체에 의해 공동으로 구성되며, 다면적이고, 관계적이며, 애매모호한 대상이다320쪽.

위의 인용문처럼 현대 농촌의 이해는 매우 복잡한 일이며, 그 실체를 해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이클 우즈의 『농촌』은 그것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세기 이래 진행된 근대화, 자본주의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 그리고 미디어의 광범위한 영향 등을 동력으로 한 농촌사회의 변화와 실체, 마이클 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구조화’된 농촌의 역동성을 이 책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1장 농촌에 접근하기’, ‘2장 농촌을 상상하기’, ‘3장 농촌을 이용하기’, ‘4장 농촌을 소비하기’, ‘5장 농촌을 개발하기’, ‘6장 농촌에서 살기’, ‘7장 농촌을 수행하기’, ‘8장 농촌을 규제하기’, ‘9장 농촌을 다시 만들기’ 등으로 이뤄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농촌의 재구조화rural reconstruction’이지만, 9개의 장은 각각 독립적인 주제와 영역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농촌의 개념과 정의 그리고 연구전략1장과 2장, 생산양식의 변화3장, 상품화와 소비공간으로서의 농촌4장, 국가의 농촌 정책과 개발5장과 8장, 농민을 포함한 농촌 주민들의 사회·문화적 실천7장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 농촌에 대한 전망9장에 이르기까지, 현대 농촌의 이해에 필요한 핵심적인 주제와 개념,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충실히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최근 현대 농촌을 대상으로 한 필자의 민속연구는 이 책에서 제시한 다양한 통찰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농촌 관념이 갖는 핵심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촌 관념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상상된 것이 실체를 갖게 된다. 둘째, 농촌은 사회적 구성물로서 다른 실체와의 관계 속에서 상상된다가령, 농촌은 도시보다 자연에 더 가깝고 덜 발전되었으며 과거와 더 연결되어 있다. 셋째, 농촌의 사회적 구성은 진공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 뿌리내려 있다. 넷째, 농촌에 대한 표상은 농촌 공간과 분리되었고, 글로벌한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고 이동했다. 다섯째, 농촌에 대한 관념은 인간과 비인간, 지역 토착적인 것과 지역 외부의 것을 모두 아우르는 다양한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관계를 통해 농촌지역 속에서 물질화되었다55쪽.

위의 인용문에서 제시한 것처럼 농촌은 결코 고정적인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주민, 국가, 관련 기구, 관광객, 나아가 비인간 행위자를 아우르는 주체들의 ‘실천, 궤적, 상호관계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의 수용은 현대 농촌을 배경으로 전승, 생성, 변화되는 민속이나 전통과 같은 문화현상뿐만 아니라, 농촌의 역동성과 실체를 포착·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한국 민속학계에서는 ‘민속과 관광’, ‘마을 만들기’, ‘다문화’ 등과 같은 새로운 연구 영역이 부각된 바 있다. 이처럼 새롭게 제기된 현상과 문제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에 이 책은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초기 공동체 관련 이론이 제안한 것 같은 ‘안정적이고 고정되고 동질적인 농촌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농촌 지역에 많은 숫자의 농촌 공동체가 서로 중첩되어 함께 존재하며, 때로는 상호작용과 실천의 공간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소를 둘러싸고 경쟁하기도 한다. 따라서 농촌 공동체는 역동적이고 조건적이며, 사회적·경제적 재구조화의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이런 과정이 종합된 결과, 농촌 공동체는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220∼221쪽.

농촌공동체는 외부에서 부가된 변화의 수동적인 수용자나 희생자가 아니며, 스스로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점점 더 도시화되어가는 세계에서 농촌의 이익이 주변화되고 있다는 인식으로 인해 새로운 농촌 사회운동들이 등장했으며, 이 운동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서 현대 정치의 특징이 되었다. 또한 이 집단들이 초국적인 연합체로 결집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저항하는 중심점이 형성되었으며 농촌의 의미와 규제에 대한 투쟁이 글로벌 무대에서 펼쳐지게 되었다352-353쪽.

어쩌면 민속학은 그 학문적 특성상 농촌의 변화와 실체를 포착할 기회가 다른 어느 학문보다 일찍부터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 민속학의 학문적 문제의식 설정과 지향은 농촌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성찰에 근거했다기보다는, 낭만적으로 ‘상상된 공동체’로서 농촌을 상정하고 그에 따라 민속이나 전통문화의 기능이나 의미해석에 초점을 맞춰 온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민속학은 농촌의 실체와 농민, 그리고 민속의 역동성을 포착·설명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 농촌 현실에 기반한 민속학을 구상하는 데에 있어, 마이클 우즈의 『농촌』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 눈앞에 펼쳐진 농촌의 현실 문제를 편견 없이 대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자매 편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우즈의 『현대 촌락 지리학-촌락 재구조화의 과정, 반응, 경험』 시그마프레스, 2014 역시 일독을 권하고 싶다. 두 책은 문제의식이나 연구 영역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이다.

1) Dan Ben-Amons, “The Idea of Folklore : An essay”, ed. Alan Dudnes, FOLKLORE – Critial Concepts in Literary and Cultural Studies, Vol.Ⅰ, Routledge, 2005, pp. 10-11.


글 | 이진교_국립안동대 문화유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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