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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박물관

엄마의 자개장

“1970년대 초 어느 날 우리 집 안방에 자개문갑, 자개3층농, 자개 사방탁자가 들어왔다. 나중에 들으니 당시 부녀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자개장계로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 엄마의 자개장들을 살짝 열어보면 신기한 물건들이 그득했었다. 사방탁자는 위아래에 대문처럼 여는 양문형 저장 공간이 있었고 그사이에 한 단은 3개의 서랍과 가운데 개방형 선반은 중간박스 형태로 저장 공간이 달려있었다. 폐쇄형과 개방형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장식과 저장의 기능을 제공했다. 선반 위에는 작은 항아리, 호리병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엄마의 화장품들이 있었던 중간박스의 문을 열면 달큰한 분 냄새가 났었다. 속도 깊어서 마치 신비하고 컴컴한 동굴에서 풍기는 매력적인 어른의 향이었다.”

큰딸의 추억
사방탁자는 위아래에 대문처럼 여는 양문형 저장 공간이 있었고 그 사이에 한 단은 3개의 서랍, 가운데 개방형 선반은 중간박스 형태로 저장 공간이 달려있었다. 폐쇄형과 개방형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장식과 저장의 기능을 제공했다. 선반 위에는 작은 항아리, 호리병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엄마 화장품들이 있었던 중간박스의 문을 열면 달큰한 분 냄새가 났었다. 속도 깊어서 마치 신비하고 컴컴한 동굴에서 풍기는 매력적인 어른의 향이었다.

자개 삼층농은 3개로 분리되는 가구인데 가운데 칸에는 비밀 공간이 있어 신기했다. 손으로 위를 살짝 밀면 넓은 판이 열리기 때문에 중요 물건들을 넣을 수 있었다. 대학생 때 이 농을 내 방으로 가지고 와서 2-1로 분리하여 사용하면서 이 비밀 공간을 십분 활용하기도 하였다. 요즘 쓰는 납작한 서랍과 달리 위아래 공간이 넓어서 옷들을 차곡차곡 개켜서 넣으면 꽤 많이 들어간다. 이 삼층농에는 속옷, 평상시 옷들, 털실 뭉치, 옷감들도 보관했던 것 같다. 나중에 큰 장을 사셨지만, 내겐 삼층농은 언제나 신기하고 다양한 물품들을 쏟아내는 요술 상자 같았다.

자개문갑을 떠올리면 안방 벽 쪽으로 쪼르륵 붙어서 자개 그림을 반짝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작고 많은 서랍 안에 뭐가 그렇게 빼곡히 들어 있었는지… 아래 문을 열면 서류 같은 것들이 정리되어 있었고… 아마 정리왕이었던 아빠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기억하고 계셨을 것이다. 까만 문갑 위에는 성모상, 가족사진 액자, 장식품들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_박세라(어반스케치 회원)

작은딸의 추억
어린 시절 안방의 자개문갑과 자개장은 이야기가 가득 담긴 그림책이었다. 부모님은 바쁘시고, 언니 오빠와는 나이 차이가 나서 늘 혼자였고 외로웠다. 그럴 때면 아무도 없는 안방에 들어가 가구 앞에 누워있곤 했다. 자개 무늬에는 십장생 동물들과 식물들이 가득했고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도 있었던 것 같다. 우두커니 앉아서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고 있는 신선이었을까? 상상의 이야기는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뒹굴거리고 있을 때 햇빛이 들어와 자개 빛이 영롱하게 빛나면 더욱 풍부해지곤 했다. 목이 긴 거북이와 뿔 달린 사슴이 울퉁불퉁한 바위들 뒤로 고개를 내밀었다.

눈을 감고 숫자를 세는 술래는 언제나 내 차지였다. 꽃처럼 생긴 버섯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해가 떠 있는 데 달이 함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종종 큰 잉어가 펄쩍 뛰어올랐다. 소나무에서는 시원한 향이 배어 나왔다. 갑자기 푸드덕 소리를 내며 큰 날개를 가진 새가 훨훨 날아가기도 했다. 무지개 빛깔로 반짝이던 이야기들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묻히고 손잡이로 달려있던 박쥐들이 퍼덕거리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집은 가족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때마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자개장과 문갑은 그림책을 향유하는 지금의 나를 만드는 토대였던 것 같다. 그림 만을 보면서 그 속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매일 보는 같은 이미지에서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힘을 배웠다.

그림_김경아(어반스케치 회원)

엄마의 이사에 맞춰 짐을 간소하게 정리하면서 자개장도 정리 품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차마 그냥 버릴 수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기증을 생각하게 되었고, 기증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제서야 엄마도 우리도 마음이 편해졌다. 쉽게 가구를 바꾸는 성향도 아니고, 빠듯한 살림에 장만한 삶의 증인이었다. 방구석에 어둡게 서 있는 것 같아도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며 가족 한 명 한 명을 위로하던 친구였다.

고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드라망의 비유를 갖다 쓰자면, 자개장농과 문갑은 인드라망에 달려있는 구슬처럼 서로 엮여있던 것이 틀림없다. 인드라망의 구슬들은 그 빛이 겹치고 반사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빛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식으로 슬퍼하는 가족의 눈물방울에 자개의 무지개빛은 빛났을 것이고, 흘낏 본 아름다운 빛에 눈물을 훔치고 살았을 것이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자개의 영롱한 빛을 보며 웃음 짓는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속이 상하고 외로울 때면, 자개장농의 아름다운 자연속으로 들어가 편안한 꿈의 세상을 만끽하고 나와 또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지난번 파주 수장고에 갔을 때 단번에 우리 집 자개장을 알아보았는데, 돌아가신 엄마를 보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우리 식구들과 오래 지냈던 가구가 편안하게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편해졌다.


글 | 김미겸, 김유겸_기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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