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걸어온 길·걸어갈 길

우리 민속학의 중심지,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을 기대한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가 문화유산학과로 이름을 바꾼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은 이제 제도권 안에 남은 유일한 민속전문기관이 됐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오랜 시간 재직하면서 민속학 연구와 전승에 궤적을 남긴 김명자 명예교수는 그래서 이 시대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최초의 민속학 스승, 나의 어머니
김명자 명예교수가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퇴직한 지 어느덧 12년째 되었다. 그러나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난 그에게서는 여전히 현역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퇴직 이후에도 문화재청과 경상북도, 인천광역시에서 문화재위원 활동을 계속했고 민속 관련 저술 및 박물관, 대학원 강의 등이 계속 이어진 덕분이다. 최근에는 민속학에 대한 애정에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해 왕릉을 산책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그는 여전히 우리나라 민속학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김명자 명예교수는 자신과 민속학의 만남을 우연이자 필연이라고 했다. 학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1970년대 초 석사 과정에서는 역사학을 공부했는데 이때 다시 학부에서 역사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 그 출발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대학원과 대학 전공이 다르면 대학원 전공에 맞춰 학부 수업을 다시 들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학부 과목 중에 민속학이 있었는데 제게는 그 수업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열심히 듣고 공부했지요.”
김명자 명예교수가 민속학에 재미를 느꼈던 근간에는 황해도가 고향인 그의 어머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민속 신앙과 명절을 꼭 지켰던 분이었고 김명자 교수는 어릴 때부터 팥죽을 먹고 부럼을 깨물고 설빔과 추석빔을 입으며 사계절을 지내왔던 것이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입혀준, 남들은 입지 않는 분홍저고리, 남색치마 추석빔을 입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내 민속학의 최초의 스승이었다”는 김명자 명예교수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었다.

민속학과 교수, 국립민속박물관과 만나다
언론인 생활을 13년 동안 한 그는 1982년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부임을 해 본격적으로 민속 연구와 강의를 시작했다. 김명자 명예교수는 이때를 두고 “가르치러 간다기보다는 공부를 하러 간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민속학이라는 방대한 학문 안에서 자신의 전공을 ‘민속신앙’과 ‘세시풍속’으로 잡았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민속학과 교수로서 강한 긍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꽤 다양한 시선들이 있었어요. 민속학과 교수라면서 왜 한복을 안 입으세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고 당시 민중운동이 한참 뜨겁게 일어났던 때라 민속학 연구하는 사람을 정치색을 입혀 바라보기도 했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민속학자로서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료조사에서, 문헌조사 외에 반드시 현지조사가 따라야 ‘진짜’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는 민속학의 특성상 그는 홀로 혹은 동학이나 학생들과 함께 차도 없고 길도 없는 외진 농촌, 어촌, 산촌을 돌아다녔고 제보자와의 라포 형성을 위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 지역별로 다양하게 전승되어온 풍습이나 신앙을 구술로 채집하고 물증 사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열악한 환경과 수시로 맞닥뜨린 건 물론이다. 그런 와중에 국립민속박물관은 김명자 명예교수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는 장소였다.
“경복궁 향원정 뒤편 건청궁 터에 있었던 구 국립현대미술관은 제가 중고교 시절부터 자주 왔던 곳이었어요. 국전國展 작품전을 감상하던 공간이었거든요. 국립현대미술관 자리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전했을 때 좋은 전시가 많아 학생들과 자주 왔던 기억이 납니다. 학술세미나도 열려서 부지런히 드나들었지요.”
김명자 명예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위상을 격상시킨 이종철 전 관장은 잊을 수 없는 분이라고 언급하면서 동시에 민속학과 졸업생이자 제자였던 천진기 전 관장, 민속박물관에 근무하다가 민속학과 교수를 역임했던 현재의 김종대 관장을 이야기하며 이는 민속학계가 거둔 수확이었다고 기꺼워했다.

한국세시풍속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편찬, 100번을 칭찬해도 부족하다
김명자 명예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성장과 발전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일로 2004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꼽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각 분야에 걸쳐 꾸준히 연구서를 내왔습니다. 저 역시 역사민속학회 회원으로 공동 조사하여 집필했던 <한국세시풍속사전>을 비롯하여 사전 작업에 참여했지요. 특히 초창기 세시풍속사전을 기획했을 때에는 일요일에도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와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전 편찬사업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국립민속박물관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민속 분야별로 나누어 편찬을 함으로써 국립민속박물관이 민속연구자들에게 연구할 기회를 많이 줬던 것 또한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그외에도 민속박물관의 다양한 전시와 관련 조사보고서를 비롯한 저서 그리고 민속행사도 대단한 작업이었지요.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민속조사도 꾸준히 하여 관련 보고서와 저서도 많이 출간했습니다. 아카이브 작업도 대단한 작업이고. 말하자면 끝이 없을 거예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바로 박물관 간의 인사교류 부분이다. 물론 그간 인사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보다 포괄적인 교류를 통해 더 큰 박물관으로 가려는 행보가 아쉽다는 것이다.
“지역박물관과의 교류는 직원들이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해외박물관과 인력을 교환하거나 파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물론 이건 박물관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고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고 어디에 중점을 두드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긴 하죠.”
또, 김명자 명예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이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세종시로 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종시에 별도로 민속박물관이 건립되는 것이 맞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궁박물관이 경복궁 내에 있지만 민속박물관 역시 고궁 혹은 그에 버금가는 곳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좀체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위상이 높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지난 3월 이전 개관 30주년 기념식 때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님께서 전 청와대 자리에 민속박물관이 세워지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하실 때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고 지인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전경

국립민속박물관을 위한 5가지 제언
민속은 우리 모두의 전유물이라며, 모든 국민이 찾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김명자 명예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미래를 위해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했다.
“올해로 국립민속박물관이 현재의 건물로 이전 개관한지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제부터가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한 과제를 수립하고 이행해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에 저는 첫째 전통적인 전시 방식을 넘어선 전시 콘텐츠의 혁신과 업그레이드, 둘째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전략 강화, 셋째 지역사회와의 협력 강화를 통한 지역사회 문화 발전 기여, 넷째 해외 민속박물관과의 협력을 통한 국제화 전략 추진, 다섯째 지속가능한 경영전략 마련 등 총 5가지 과제를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김명자 교수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가 최근 ‘문화유산학과’로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제도권 안에 유일하게 남은 국립민속박물관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더 중요함을 피력했다.
“민속은 구식의 옛것이 아니라는 것, 생활문화 전반이라는 걸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음을 절감합니다. 지금 융성하고 있는 K-컬처도 그 시작 지점은 1980년대에 우리 국악이나 무용이 해외에서 명성을 날렸던 게 그 출발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화는 하루아침에 꺼지지 않듯 하루아침에 생겨나지도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아오는 거죠.”
김명자 교수는 ‘민속’과 ‘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근대화, 산업화를 통해 우리는 급격한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안에서 민속은 없어진 게 아니라 변화한 것이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곧 지속과 변화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민속문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갖게 하고 미래의 바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 안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함께 들어 있었다.


인터뷰·정리 | 이경희(프리랜서 기자)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