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 들어서면, 방문객은 넓은 홀 전면에 배치된 타워 형태의 수장고를 처음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수장고 내부에 들어가서 보다 가깝게 다양한 소장품을 살펴볼 수 있는 ‘열린 수장고’의 영역이다. 그 내부는 1, 2층으로 나뉘어 총 6개의 독립 영역1)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외부는 1, 2층을 아우르는 3개의 타워 형태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총 6천 6백여 점에 이르는 도토기, 자기 및 석제 소장품들이 격납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보배롭게 여겼던 문방구文房具는 1층 오른쪽로비 정문에서 바라볼 때에 위치한 6수장고에서 만날 수 있다. 실제로 격자형 선반 형태의 수장대인 6-2~6-42)로 지정된 장소에 놓여있다. 소장품들의 자세한 정보는 각 수장고마다 설치된 검색대키오스크를 활용하여 검색할 수 있다.
필수품이자 애장품인 문방구
문방구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필수 도구로, 사랑방이나 서재에 갖추어 놓는 것이다. 누구나 그 옛날 문방구 하면 ‘문방사우文房四友’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학문에 힘썼던 선비들이나 유교적 이상을 현실정치에 구현하고자 했던 사대부 관리들이 귀한 친구처럼 항상 곁에 두었다는 뜻이다. 그것들을 의인화한 만큼 문방구 가운데 필수품인 종이, 붓, 먹, 벼루[紙筆墨硯]의 네 가지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부여했던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은 문방구를 단순히 쓰다가 버리는 하나의 소모품이나 소비재로만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종류와 특산품, 제조법, 보관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들이 가졌던 도덕적 관념과 삶의 관심사가 문방구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그래서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될 물건으로 소중히 간직했던 것들이 많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일수록 귀히 여겼기에 애장품 역시 상당수 전해져 내려온다.
6수장고 속으로
열린 수장고는 로비 중앙에 위치하여 자외선이나 온습도 등 외부 환경에 대한 노출이 빈번하여, 재질상 그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덜 받는 소장품 위주로 보관, 관리되고 있다. 6수장고 내부로 들어서면, 문방사우 중 붓과 종이를 제외한 벼루와 먹이 격자형 선반식 수장대에 놓여있고, 그 외에 도자 및 석제 문방구 위주로 격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방사우 외에도 연적硯滴, 묵상墨牀, 갈고 난 먹을 얹어두는 작은 받침, 수우水盂,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두는 용기, 필통, 문진文鎭, 書鎭, 필세筆洗, 붓 씻는 그릇, 필가筆架, 붓꽂이, 붓걸이 등 다양한 문방구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단순함과 실용성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문방구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인들의 정성어린 손길이 더해진 도구의 다양함과 그 예술적 품격은 현재의 문방구들이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문양과 형태가 말하는 것
6수장고에 있는 다양한 문방구들은 그 생긴 형태와 겉면의 문양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구석구석 오밀조밀하게 살펴보면, 그것을 정성껏 만들었던 장인들의 정신과 소중히 간직하면서 사용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먼저 6수장고 내부에서 왼쪽에 위치한 수장대6-4-2, 6수장고 4번째 장 2번째 단, 1칸 3단 구성를 보면,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두는 소형 용기인 연적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마치 동물이나 식물이 즐비한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각 소장품들의 형태나 겉면에서 각양각색의 동물과 식물들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수山水와 어우러진 가옥과 그 풍경, 그리고 온갖 동식물들을 보면, 마치 잘 꾸며진 전통정원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자연을 벗 삼아 지냈던 우리 조상들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오래 살고 잘 살고픈 인간의 원초적인 소망이 문방구에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문방구 곳곳에서 수복壽福으로 상징되는 문자 문양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자손들의 복된 삶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문자에 담긴 것이다. 특히 벼루나 연적에는 장수長壽를 염원하는 수복 문양이 많이 보인다. 6-4-2의 첫 번째 칸에 놓인 칠각연적은 옆면을 둘러가며 한 면에 한 글자씩 ‘부귀다남자손수富貴多男子孫壽’가 쓰여 있다. 바로 오른쪽에는 몸체의 5면에 수壽자가 그려진 청화백자연적이 있다. 청화백자연적들에서는 박쥐 문양이 많이 눈에 띈다. 박쥐는 편복蝙蝠, 박쥐의 복蝠이 복福자와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십장생十長生은 동물과 식물, 자연물에서 장생과 관련된다는 10가지를 골라 표상으로 삼았는데, 먹이나 벼루, 연적, 필통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는 학문적 자세나 유교적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방에 문방구나 고동기古銅器를 그린 책가도冊架圖를 펼쳐놓고, 벼루나 연적 같은 문방구에도 과거 급제의 희망을 새겼다고 한다. 6-2-2에 격납된 윗부분에 게가 양각되어 있는 연잎 모양의 벼루예용해 수집, 예병민 기증는 군자君子의 청빈함과 고고함을 연잎의 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선비의 굳은 절개와 지조를 나타내는 사군자四君子 즉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도 빠지지 않고 연적이나 필통, 벼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6-4-2의 세 번째 칸에 놓여있는 청화백자 부채형 연적에는 옆면을 돌아가며 한자씩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가 적혀있다. 이는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와 이웃 간의 우애, 충성, 신의,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 등 유교의 윤리관을 압축한 내용이다.
문방구는 영원하다!
그런데 6-3-1의 두 번째 칸 서랍을 보면, 전통적인 문방구들 속에서 근현대의 문방구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잉크병이다. 이것 역시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전통시대의 문방구와 비교하여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잉크를 담는 용기인 잉크병은 벼루와 먹의 기능이 합쳐졌다고 볼 수 있다. 6-2-2의 세 번째 칸과 6-3-1의 세 번째 칸에 진열된 휴대용 벼루와 대비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오늘날의 문방구는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아 실용 위주로 바뀌었다. 따라서 종래의 종이·붓·먹·벼루 등 문방사우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화선지는 공책·모조지로, 붓은 연필·만년필·볼펜 등으로 대체되었다. 이에 더해 전자책과 스마트폰의 존재는 종이책과 펜, 메모장 등을 대체할 기세다. 그러나 글을 적을 일이 항상 있기 마련이니 전자우편이 대세인 오늘날에도 만년필의 판매량이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컴퓨터와 프린터가 역설적으로 종이 사용량을 늘린 것과 유사하다. 손수 쓸 기회가 적은 만큼 그 도구를 애지중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소비의 개념에 소장의 가치가 더해진 것 같다.
열린 수장고가 소장품의 격납 공간이다 보니, 상설전시에 반출되었거나 외부기관에 대여되어 수장대의 빈자리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작년 연말에 새로 단장하여 개관한 상설전시관3의 교육코너를 둘러보면서 문방구의 빈자리들을 채웠으면 한다.
1) 4~6수장고, 9~11수장고
2) 6수장고 2번째 장~4번째 장
글 | 구문회_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