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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 듣는 | 박물관 소장등록팀

물건에서 유물로, 가장 빛나는 가치를 부여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에 소속된 소장품등록팀은 태생적으로 박물관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 해온 팀이다. 물건이 박물관에 들어와 유물로 활용되기 전까지 기본 데이터를 만들고 국가재산으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손끝에 막중한 무게와 사명감이 싣고 있는 소장품등록팀. 과거를 담고 현재를 이야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자.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소장품등록팀

물건에서 유물로 거듭나는 시간
박물관 내 어느 부서가 바쁘지 않겠냐만은 소장품등록팀의 하루는 특히 분주하다. 밖에서는 ‘물건’이라고 일컬어지던 것들이 박물관으로 들어와 ‘유물’로 불리는 순간부터 소장품등록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소중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박혜령 학예사를 필두로 총 13명이 일하는 소장품등록팀은 한마디로 유물에 기초적인 정보를 입력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등록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는 부서이다.

“유물이 박물관에서 전시, 연구, 교육 자료로 쓰이려면 기초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런 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 유물이 어떤 용도로 어느 시대에 쓰였는지 기본적인 사항을 알아야 교육도 전시도 연구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의 일은 유물을 개인재산이 아닌, 국가재산으로 등록한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혜령 학예사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유물이 등록되기까지에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일반인들은 물론, 관계자가 아니면 박물관 직원들조차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은밀한 장소인 수장고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하다.

일단 유물들은 구입, 기증, 양도, 압수 등 여러 경로로 들어온다. 들어온 유물은 보존과학실에서 훈증을 거쳐 소장품등록팀에서 인수를 한다. 유물이 들어오면 최소수량 단위로 쪼개고1) 사진팀을 뺀 10명의 연구원들이 동일하게 나눈다. 번호와 명칭을 부여하고 유물에 담긴 역사를 파악하는 등 총체적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나면 사진팀에서 이를 다양한 각도로 정교하게 촬영을 한다.
촬영을 마치면 이를 데이터베이스에 올리고, 공개작업까지 마쳐야 등록 업무를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등록이 끝나면 포장을 해야 한다. 같은 모양이나 재질끼리 묶어 수장고의 지정된 장소에 격납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하면 유물은 자체 번호도 생기고 명칭도 붙고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DB화됨으로써 누구나 쉽게 찾아 박물관 내의 다양한 전시 및 연구 활동에 쓸 수 있다.

수장고 유물 격납 작업

더 치열하고 더 세심하게 연구하다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사실 이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민속’ 박물관이라는 특성상 다루는 유물의 범위가 굉장히 넓고 크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을 하다가 온 정재영 연구원은 “중앙박물관의 경우는 발굴 유물이 많기 때문에 그 종류가 한정적인 반면 민속박물관에는 그 종류와 가짓수가 매우 많아 놀라기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개수를 세는 방법, 명칭을 매기는 순서… 이 모든 것이 정해진 규칙하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수칙들은 개인이 한 번에 만든 게 아니에요. 민속박물관은 명칭만 달라졌을 뿐 아주 오래 전부터 존속해 왔기 때문에 수많은 연구자들이 규칙을 더하고 의견들을 보태면서 지금의 지침을 만들어온 거죠. 유물 가짓수와 역사가 길어지니 당연히 거기에 따른 세부 규칙들도 늘어났고 저희들은 그에 준해서 업무를 진행합니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누구도 수장고에 들어갈 수 없고, 수장고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2인 이상이 한 조가 되어서 들어가야 하는 원칙들도 수장고 관리와 소장품등록팀 업무의 보수성을 입증한다. 이 모든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의 일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공적인 중요성이 개인의 자부심과 긍지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사를 전공하고 한자 해독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이승재 연구원은 “등록한 유물은 최종적으로 시민들에게 보여집니다. 때문에 작업을 할 때 단어 하나도 명확하게 고르려고 노력하고 연구원들끼리 교차 검토를 해서 정확도를 높이려고 노력해요. 직감적으로 파악이 안 되는 유물은 연구할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일이에요”라고 자신의 일을 설명한다. 고고학을 전공한 정재영 연구원은 자신이 다루는 유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등록했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을 때, 이걸 내가 등록했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수장고 안에만 있으면 그냥 일인 거 같은데 나와서 전시되어 있는 걸 보면 제 자식을 밖에 내놓고 자랑하는 기분이에요.” 정 연구원의 말에 서정현 연구원도 미소로 동의를 한다. “유물은 일단 들어오면 몇 백 년 동안 박물관에 남아있는 애들이잖아요. 이들에게 유물로서 많이 정보와 의미를 부여해주는 게 뿌듯해요. 오래 있을 애들이니까 글씨도 정성스럽게 쓰고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늘 노력합니다.” 이들이 최근에 만들어진 장난감 레고부터 티벳 주술의식에 쓰인 인피북사람피부로 만든 북까지 숱한 유물들을 만지고 연구하면서 얻은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덤이다.

개방형 수장고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다
현재 소장품 수 10만 건, 16만 점을 넘어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가 올 여름 파주로 이전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유물을 보관해오면서 수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 가장 큰 이유 그리고 또 하나, 폐쇄형 수장고가 개방형 수장고로 그 경향이 바뀌어 가면서 민속박물관 수장고 역시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박물관 안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수장고입니다. 박물관 내부직원들조차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요. 개방형 수장고란 수장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에요. 대중들과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고 전시되지 않은 수많은 유물들이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반대로 수장고란 유물을 수백 년, 수만 년을 보존해야 하는 곳인데, ‘보존’과 ‘활용’이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생깁니다. 그 접점을 찾는다면 가장 좋은 박물관이 되겠지요. 어쨌든 그에 대한 고민은 저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물들을 둘러싼 모험은 언제나 흥미롭기 짝이 없다.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던 유물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순간 그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르고 그를 둘러싼 다양한 목적을 가진 인간 군상들이 벌이는 치열한 다툼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그 유물이 가진 가치와 의미를 파악해 세상에 내놓는 인재들의 숨은 노력이 없다면 전부 무의미한 일이다.
유물이 지나온 여정을 밝히고 유물의 현재 가치를 알리며 우리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생활과 지혜를 알려줄 역할을 하는 민속유물. 그들의 시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영원히 ‘소장품등록팀’에 의해 유의미하게 흘러갈 것이다.

1) 예로 핸드폰이 들어온다면 핸드폰 커버, 핸드폰 악세사리 등으로 분리해 나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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