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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민의를 담는 공정한 그릇

민의의 수호자 투표함
우리나라 선거 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투표함은 목재 투표함이었다. 1948년 5·10총선거부터 1960년대까지 각종 선거와 국민투표에 목재 투표함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부터 철제 투표함을 함께 쓰기 시작했고 1971년 대통령 및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모두 철제 투표함으로 교체되었다. 10년 넘게 사용된 목재 투표함이 낡아서 훼손되기도 했지만, 운반 도중 망가지지 않고 비바람과 거센 풍랑으로부터 더 안전하게 투표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도 있었다. 또한 투표소 주변에 난동과 방화 등 난장판이 벌어지기도 했던 혼탁한 선거환경도 튼튼한 철제 투표함을 요구했다. 철제에 이중 뚜껑, 그리고 뚜껑마다 특제 자물쇠가 달린 투표함은 보기만 해도 든든해 보였다. 이처럼 5·10총선거에서 사용된 목재 투표함부터 1990년대까지 사용된 철제 투표함까지 강조된 기능은 튼튼함이었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투표지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여기에 보안까지 더해져 단단히 봉인된 투표함은 어느 누구도 쉽게 파괴하거나 훼손시킬 수 없는 민의의 수호자와 같았다.

대한민국 투표함의 변화

철제 투표함의 퇴역
그러나 철제 투표함은 무게가 무려 20kg에 육박해 운반이 쉽지 않았으며 오래 두면 녹이 슬어 도색 등 관리비용도 부담이었다. 이에 1991년 지방선거에서는 철제 투표함보다 무게는 절반 이하, 부피는 1/5 이하인 알루미늄 투표함을 제작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립식이어서 보관과 운반이 쉬운데다 작고 가벼워서 편하긴 하지만, 제작단가가 약 8만 원으로 비싸다는 점이 흠이었다. 지금도 알루미늄 투표함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우리 생활 주변 선거를 지원할 때 종종 사용되고 있다.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투표함 문제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4개의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게 되면서, 규모나 물량 면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투표함도 약 5만 6천 개를 추가 제작해야 했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철제 투표함이나 알루미늄 투표함으로 제작할 경우 당장 각 선거관리위원회에 이렇게나 많은 투표함을 보관할 창고가 없거나 공간이 부족했다. 또 철제 투표함도 그렇지만 특히 알루미늄 투표함의 경우 제작비용과 유지보수비가 많이 들었다. 알루미늄 투표함으로 추가 제작하면 약 45억 원이 들고 유지관리에는 선거 때마다 투표함 도색과 수리비용으로 약 7천만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외에도 4개의 동시선거로 투표용지 색깔이 다양했기 때문에 유권자의 혼란을 예방하고 개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투표용지의 색상에 맞추어 투표함에도 색을 입힐 필요가 있었다.

종이 투표함 개발
선거관리위원회는 특수골판지로 만든 종이 투표함을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에서는 ‘철제 투표함으로도 부정을 저지르는데 종이 투표함은 그보다 쉽게 불에 타거나 파괴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설득으로 여야 간 합의가 이루어졌고 종이 투표함이 도입되었다.
종이 투표함은 종이 재질이었기에 1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다 조립식이어서 보관과 예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크기도 알루미늄 투표함과 비슷했지만 제작단가가 6천 원 정도였기에 알루미늄 투표함 대비 28억 2천만 원 정도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다만 종이 재질이다 보니 보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기본적으로 철제나 알루미늄에 비해 강도가 약하고 외부충격에 취약했으며, 특히 틈새 부분의 결합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조립식이다 보니 바닥의 면과 면 사이의 봉함이 제대로 안 되고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부정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강남구 을선거구에서 개표장으로 이송된 투표함 중 일부가 이 문제로 나중에 선거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특수테이프를 제작하여 이음새 부분을 꽉 틀어막는 방법으로 대책을 세우고, 눈이나 비로 인한 침수를 예방하고자 투표함 내부에 비닐팩을 부착하고 눈이나 비가 올 대는 투표함 외부를 비닐로 포장했다.

강화플라스틱 투표함의 등장
종이 투표함의 여러 문제점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투표함이 제작되었는데, 바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강화플라스틱 투표함이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사용된 강화플라스틱 투표함은 보안 기능을 한층 높인 것이 특징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정규 투표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고유 식별번호가 담긴 NFC칩을 부착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부터는 특정 운영체제OS로만 인식돼 절차상 불편했던 NFC칩 대신에 고유번호가 적힌 홀로그램 스티커를 부착했다.

가장 튼튼한 투표함은 관심과 참여
우리나라 투표함의 변천과정은 국가역량, 기술발전, 시민의식과 함께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의 부활과 함께 가장 약한 재질인 종이로 된 투표함이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종이 투표함을 사용할 수 있는 선거환경은 그만큼 국내정세가 안정되었고 시민의식이 성숙해졌다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무거운 철제 투표함을 사용해야만 선거가 공정해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투표함은 유권자의 의사가 담긴 투표지를 보관하는 중요한 선거도구이지만,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의 관심만큼 튼튼한 투표함은 없을 것이다.

2020년 4월 15일은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이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로 제헌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이래 73년을 맞이했고, 순탄치 않았던 현대사 속에서도 선거는 계속되었다. 73년의 선거 역사와 함께 해온 투표함은 목재 투표함에서 출발하여 철제 투표함, 알루미늄 투표함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대변하는 역사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강화플라스틱 투표함도 시간이 흐른 뒤 오늘 날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하나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 출처 :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이야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글 | 홍명화_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자료국 선거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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