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쥐를 떠나보내며

강릉 현덕사의 현종 스님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불교계 언론 기자에게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약사인 지인이 쥐 천도재薦度齋를 지내고 싶어한다고 전해왔다. 천도재는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 의식이다. 스님은 반려동물의 천도재를 지내는 모습은 많이 봤어도 쥐는 처음이라 의아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유를 듣고 보니 쥐야말로 마땅히 천도재를 받아야 하는 동물이었다.

약사는 대학원 시절 실험으로 죽어갔던 쥐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일상에는 쥐의 희생이 필요했다. 전 세계 실험동물의 80%를 차지하는 쥐는 인간과 유전자가 99% 유사하다. 또 새끼를 많이 낳고 임신 주기가 짧아 독성을 검증할 때 후손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에 유리하다. 인간과 가장 닮았기에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존재인 셈이다. 실험실 쥐는 실험이 끝나고 살아있어도 죽임을 당한다. 자신의 손으로 수많은 생명을 꺼트려야 했던 약사의 마음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다.

불교의 계율 중 첫 번째로 치는 것이 불살생계不殺生戒다. 하지만 불가피한 희생은 어쩔 도리가 없다. 때문에 현종 스님은 쥐 천도재를 지내고 싶어 하던 약사의 부탁에 되려 고마움을 느꼈다.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죽어간 생명에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7일, 강릉 현덕사 대웅전에서 쥐 천도재가 진행됐다. 쥐가 좋아하는 곡식과 쥐들이 반야용선을 탄 장면이 그려진 위패가 올려졌다. 쥐들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절을 올리고, 위패를 소각하며 다시 한번 빌었다. 재주들의 얼굴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조금은 후련해 보였다. 죄책감을 모두 떨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덜어낸 것 같다고 했다. 현종 스님은 ‘이날 모든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마음에 새겼다’는 말을 남겼다.

글 | 편집부
일러스트레이션 | 이우식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