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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물이 뭍을 만나는 곳, 어시장

선사시대에서 고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3대 식량 획득 방법은 수렵, 채취, 어업이었다. 어업은 강과 바다, 호수에서 손쉽게 이뤄졌다. 바다에는 육지보다 훨씬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기에 인간은 해산물을 잡으면 풍부한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고고학 현장에서 발굴되는 생선 뼈와 해양 포유동물 뼈는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 해산물을 섭취해왔다는 구체적인 증거다. 수렵이 대거 소멸하고 채취가 농경으로 바뀐 다음에도 고기잡이는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고기잡이가 계속되는 한 어시장도 이어졌다. 그런데 어민, 어촌, 어시장은 ‘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는’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역사다.

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는 역사, 어시장

최초의 어상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기를 잡는 어민 자신이었다. 자기가 잡은 생선을 자기가 내다 파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최초의 고기잡이꾼과 상인의 분화는 일찍이 이루어졌으며 중간 상인에게는 좀 더 복잡한 임무가 부여됐다. 어상인은 물고기를 어민에게서 수집하고 이를 염장품이나 건어물, 훈제품 등으로 가공하여 저장, 이동, 판매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상인이 모여들어 체계가 잡힌 시장을 만들어내고, 어시장은 얼음 창고와 염장 시설, 건조 시설 등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해산물의 이동과 저장, 가공 생산에서 점포 운영에 이르기까지 어시장을 운영하는 세부적인 분화가 이루어졌으며 어상인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전 세계 바닷가에는 난전亂廛 형태의 길거리 좌판이 존재한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장기지속적 산물이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난전이 사라졌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시골에서는 여전히 난전을 만날 수 있다.

시전, 도고, 객주가 이끈 우리의 어시장

우리나라의 경우, 국역 부담을 대가로 조정에서 상업상의 특권, 즉 특정 물품 독점권을 부여받은 특권 상인인 시전市廛, 공인이 있었다. 육주비전六注比廛의 하나인 대전大廛이 발생했으며 생선전 등이 생겨나 건어물과 마른 미역 등을 취급하는 상점으로 발전했다. 18세기 이후에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자본력과 상술을 밑천으로 삼아 시장을 장악해 나간 비특권적 상인인 도고都賈가 출현했다. 도고는 자유로운 영업 활동을 전개하면서 난전을 벌여 특권 상인의 독점에 대항했다. 그러나 이들은 시장 가격을 조작하기도 하고 매점매석을 일삼는 등 많은 문제점을 낳기도 했다. 어물 분야에서는 유난히 난전이 성행했다.
지방에 따라서는 객주가 출현했다. 객주는 출어 비용을 대고 그 대신 물고기를 독점하여 판매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가난한 어민은 궁핍한 보릿고개에 미리 식량을 가져다 먹는 조건으로 어업 노동을 팔았고, 이를 고기잡이 결과물로 대갚음했다. 배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상호 관계는 노동과 소유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조선시대에는 부보상負褓商이라는 독특한 직업군이 존재했다. 부보상은 등짐장수를 뜻하는 부상負商과 봇짐장수를 뜻하는 보상褓商을 통칭한다. 비교적 값비싼 물건을 팔러 다녔던 봇짐장수와 달리 등짐장수는 나무그릇, 옹기, 젓갈 등 부피가 큰 생활품을 팔러 다녔다. “새우젓 사려, 조개젓 사려!” 하고 외치며 등짐장수가 골목을 돌아다녔으며 장터에 지게를 세우고 젓갈 등을 팔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생선 판매의 주체는 슈퍼마켓과 인터넷 온라인 판매 등 현대적 유통 체계로 확산됐다. 그러나 전통적 상설 어시장도 굳건하게 존재하며 5일장에도 어시장 좌판이 마련되어 수요자를 유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시장은 이처럼 고대, 중세의 전통에서 현대적 전통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적으로 존재한다.

어느 어시장이나 가장 중요한 건 싱싱함

어시장은 늘 분주하다. 그 분주함은 때로는 혼잡스러움으로, 혹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번잡스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은 어시장 특유의 성격에서 나온다. 어시장은 고기잡이배가 들어오는 포구처럼 배를 대는 조건이 충족되는 곳에서 생겨났다. 고기를 잡아오는 배에서 직접 어민과 수요자가 만나 거래하는 방식이 원초적 출발이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바닷가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어민과 수요자가 직접 만나 해산물을 거래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17~18세기 네덜란드 해안에서도 청어잡이 어부가 해안에서 청어를 직접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해안 곳곳에서는 여전히 이런 거래 방식이 통용된다.

배는 아무 때나 들어오지 않는다. 어시장은 새벽부터 열려 늦은 아침에는 파장을 이룬다. 고기잡이의 습성 상 밤에 조업을 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산물은 선도가 제일 중요하다. 선도란 시간 다툼을 요구한다. ‘싱싱함’이라는 단어는 세계 어느 어시장에서나 가장 빈번하게 쓰이며, 가격이 매겨지는 기준이 된다. 그 어떤 해산물도 싱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밤새 고기를 잡은 어부는 고된 노동의 마감을 아침 해안에서 하게 된다. 인도의 어시장 주변에는 으레 차를 파는 상인이 좌판을 늘어놓고 있다. 밤샘 노동과 따뜻한 차 한 잔은 어시장을 훈훈하게 해주는 포근한 풍경이다.

거친 바다에서 노동한 끝에 배가 포구에 닿으면 해안은 돌연 부산을 떤다. 생선 비린내와 고기를 퍼내는 손길, 잽싸게 통을 들고 고기를 받으려는 사람들, 하릴없이 부두에 나온 구경꾼까지 포함해 해안은 갑자기 활기를 띠며 난전의 풍요로움이 바다를 들끓게 한다. 해산물 운반을 도와주는 인력거꾼에서 얼음 장수, 칼을 갈아주는 장돌림에 이르기까지 시장은 온기 속에 역동성을 확보한다. 떨어진 생선을 낚아채려는 갈매기의 염탐, 정리정돈이 불필요한 난전 특유의 갯내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매일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어시장에서도 슬로 푸드가 인기

도시 어시장의 경우 차츰 상설화되면서 하루 종일 열리는 추세로 변하는 중이다. 냉동냉장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판매 시간도 길어졌다. 아침 9시에 출근(개장)하여 6시에 퇴근(폐장)하는 식의 정례화가 일상화됐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침 바다에서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며 돌아오는 고기잡이배의 풍경을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냉장 시설보다는 어시장에서 만나는 신선한 생선에 더 신뢰감을 가진다. 선도 좋은 생선이 맛도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사람들이 어시장을 찾는 것은 원재료의 이동 거리가 짧은 ‘슬로 푸드’를 선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동 시설의 발달과 글로벌 해산 유통의 확산으로 우리 눈앞에는 해동한 생선이 국적을 뛰어넘어 ‘괴물’처럼 출현하기 시작했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주강현 | 국립해양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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