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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가족, 다시 밥상으로!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와 ‘가족이 뭐라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어떤 답을 할까? 대부분은 일단 한 번의 숨고르기 순간을 가질 듯하다.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내 옆에 있는 것들…그와 유사한 듯 하지만 쉽사리 뭐라 한마디 말로 내뱉기는 가슴 저 아래의 묵직함과 경건함이 ‘가족’이라는 짧은 단어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 3대 이상이 모여 살던 오래전의 모습, 사회가 바뀌고 엄청나게 빠른 발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롭게 등장했던 핵가족, 그리고 현재 전체 인구의 1/4을 차지하고 있는 1인 가구까지. 채 100년이 지나지 않은 세월 동안 우리는 진정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겪어 왔고 지금도 그들의 혼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또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또 어떤 새로운 이름의 가족이 탄생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KTV제공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의 중간에 서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렇게 이름 붙은 날이 아니더라도 이 계절은 한번쯤 ‘나의 가족’을 떠올려 보게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르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 가족들은 두레상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밥을 함께 먹었다. 티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도 흔치 않던 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이지만 밥상 위의 즐거운 대화는 화수분처럼 이어졌다. 서로의 고민을 함께 걱정하기도 하고, 잘한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은 부모님의 잔소리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지나고 생각하면 그것도 가족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잘 되라는 잔소리지만 맘이 편치 않았던 부모님들은 주말 외식을 제안했다. 지금처럼 식당이 많지도 않고 이동수단도 발달되어 있지 않고, 게다 일단 경제적인 부담감까지 생각해야하지만 그래도 ‘이번 주말엔 외식하자!’는 아버지의 한마디는 저절로 가족들의 환호로 이어졌다. 단연코 외식 1위는 중식당이었다. 서양의 음식보다 우리에게 먼저 접근을 해왔고 또한 집에서는 그 맛을 흉내 내기가 힘들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1)

 

그 다음 가족들은 좀 더 새로운 외식나들이를 경험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경양식당.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이런 상황의 정답이 나온다. 아버지는 차를 새로 뽑아 외식을 제안한다. 집 앞에서 가족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어머니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멋을 부리고 등장한다. 외식이기도 하지만 게다 서양식 메뉴를 접하러 가는 예의를 갖춘 것이다. 그만큼 가족들이 함께하는 이 시간은 소중했었다. 우리 가족들은 이렇게 한 마음이 되어 새 문화를 영접하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수저가 아닌 포크와 나이프가 놓이고, 왼팔에 냅킨을 얹은 웨이터가 메뉴를 물어본 후,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라는 가장 선택이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는 밥, 어머니는 빵으로 결정을 하고 아이들도 기말고사 사지선다 보다 더 어려운 이지선다에 한 표씩을 던진다. 칼과 포크를 잡으니 가족 간의 분위기가 좀 엄숙해지는 듯도 하지만 새로운 경험은 오히려 ‘우린 역시 멋진 가족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혈연의 끈끈함을 더 굳세게 다져준다.

 

드라마<응답하라 1988> 중 한 장면 ⓒtvN

 

세상이 변하고 모든 것들이 예전보다 풍성해지면서 밥상이 아니라도 가족을 모이게 할 자리는 많다. 그것은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짧은 시간의 영화 관람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가족이라 하더라도 같은 방향 다른 생각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들의 공감대를 만들어내기에 식탁 위에 놓인 먹거리만한 것은 없다. 수십 년 동안 머릿속에 각인되어 온 엄마의 손맛. 다른 이들이 먹으면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 짜거나 달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한가지의 음식으로도 가족은 대동단결이 가능하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한번쯤은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 볼 때가 된 듯하다.

 

세상사에는 근간이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수신제가치국평천 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처럼 지킬수록 몸에 약이 되는 선조들의 명언을 고르고 싶다. 역시 ‘가족’이다. 그리고 그들의 몸을 만들고 마음을 채워줄 음식이 있는 곳, 밥상으로 모여보자. 여러분은 더 단단해지는 가족을 만나게 될 것이다.

 


 

1)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한 중식에 대한 기억이 있다. 90년대 중반 서해 도서들에 대한 조사를 다닐 때였다. 식당이라고는 찾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작은 섬에서도 난 중국집을 만날 수 있었다. 한반도의 서쪽 제일 끝에 위치한 ‘외연도’라고 하는 섬에 배가 닿았을 때 그곳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던 중식당을 잊을 수가 없다. 건물도 아닌 컨테이너에 차려진 그 식당엔 꽤 손님이 붐볐다. 물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겠지만. 거기서 먹었던 짜장면 맛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인생 짜장면으로 남아 있고, 다시 한 번 역시 외식 일번지는 ‘중국집’임을 실감했었다.

 

 

글_박선주│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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