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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행복한 돼지

얼마 전 동물을 사랑하는 지인이 기르는 개랑 고양이가 살이 쪄서 잘 걷지도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주는 음식은 물론이고 눈앞에 보이는 음식까지 다 먹어치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꼭 ‘돼지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 의외로 잡식성인 돼지는 사료를 맘껏 먹을 수 있도록 줘도 스스로 적정량만 먹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간만 확보해주면 돼지는 잠자리와 배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나름 깔끔한 동물이다. 더욱이 돼지의 지능은 개(IQ 60)보다 높은 IQ 75~85 정도로, 3∼4세 아이의 지능과 비슷하다고 한다. 반려견보다 훌륭한 반려자가 될 수 있는 돼지는 개보다도 먼저 인간의 오랜 친구가 되었다. 늑대나 멧돼지와는 다르게 개와 돼지는 인간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반려자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쓰는 집이라는 한자인 가는 지붕[宀] 밑에 돼지[豕]가 함께 사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이다. 오늘날에도 전북 남원 지역과 제주도, 일본의 오키나와, 중국의 산둥성에도 친환경적 돼지 변소인 ‘돗통시’가 있다. 가옥 아래 일층 화장실에서 돼지를 기르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돼지가 독사 등을 잡아 먹어주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돼지는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친구이다.

 

이발소 그림

 

땀샘이 없어 더우면 체온을 낮추기 위해서 진흙탕에 뛰어드는 돼지를 보고 사람들은 비올 것을 예측하기도 했다. 실제로 띠 동물인 돼지는 12지의 마지막으로 오행상으로도 수에 해당하는 신장神將이다. 꼴등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실제로는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듯이 마라톤을 완주한 돼지가 있어야 경기를 마칠 수 있으며, 새로운 경기도 기약할 수 있다.

 

냄새도 잘 맡는 돼지는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가 1,301개로 개(1,094개)보다 많다. 프랑스에서는 이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값비싼 송로버섯을 찾는 똑똑한 돼지로 대접받는다. 우리 역사상으로도 고구려 유리왕과 고려 태조 왕건 등이 도읍을 정할 때 돼지가 나타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돼지고기에 있는 갈고리촌충유구조충의 유충은 77℃ 이상이면 죽고, 1990년 이후로는 돼지고기에서 기생충이 발견된 적이 없다. 보이차로 유명한 중국 운남성 사람들은 물론 우리 옛 선조들도 육회로도 돼지고기를 먹기도 하였다. 큰 탈이 난 사람이 많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 같다.

 

돼지고기에는 영양학적으로 9가지의 필수아미노산이 균형 있게 함유돼 있으며,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레산이 함유돼 콜레스테롤 억제에 도움이 된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장기 어린이, 노인의 허약을 예방하며, 수은중독과 중금속의 독을 치료하는 효능도 있다고 전한다. 그런 보약이 되는 이유로 선조들은 제사에 사용된 돼지고기 삶은 고기를 좋아했나보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새해 첫 돼지날에 담근 삼해주 등을 즐겨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십이지신도(해신비갈대장), 1977년

국립민속박물관은 기해년己亥年 돼지띠의 해를 맞이하여, 올해 3월 1일까지 성과 속을 넘나들며 건강한 행운의 돼지를 재조명한 「행복한 돼지」 특별전을 개최한다. 돼지는 십이지신十二支神 중 열두 번째로, 방향으로는 북서북, 시간으로는 21~23시를 상징하는 잡귀雜鬼를 몰아내는 신장神將이다. 다섯 행성인 수성·화성·목성·금성
·토성에 대한 점성占星,별을 통해 점을 치는 근거로 오행五行 사상이 나타나 12시간 12월을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 사상으로 발전한다.

원시사회 때부터 두려운 존재였던 멧돼지는 샤먼shaman을 통해 ‘악의 화신’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거듭난다. 『서유기』에 나오는 인격화된 악신惡神 저팔계는 삼장법사를 만나 불교에 귀의하여 궁궐의 잡상雜像에 등장하는 선한 수호신이 된다. 약사여래신앙과 관련하여 해신亥神 비갈라대장毘乫羅大將은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옷을 전하는 선신善神이다.

 

속세로 내려온 돼지는 소중한 반려자가 되어 집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한다. 신성한 제물이 되어 준 돼지는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제의祭儀에 사용되고, 제기祭器인 시정豕鼎에 반영되었다. 돼지는 『삼국지』「부여」 조에 등장하는 저가猪加를 비롯해서 돗통시 변소의 제주도 방언 등 우리의 삶 곳곳에 등장한다.

 

베이비붐 세대인 1959년 기해년 생들이 이제 환갑잔치를 벌인다. 그들에게 오늘은 60년 전,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시절에 꿈꿨던 미래였다. ‘돼지저금통’을 보며 ‘절약’과 ‘저축’을 통한 부자의 꿈을 키웠고, ‘증자曾子의 돼지’처럼 약속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다. 삼국통일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존재였던 돼지의 의미를 새기며 통일 내일을 꿈꿔본다.

 

복돼지가 언제부터인가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뚱뚱한 사람에 대한 비속어로 변질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외모를 폄하할 정도로 세상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우리의 일그러진 어두운 그림자를 뒤돌아봤으면 한다.

 

 

이번 「행복한 돼지」 특별전을 통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돼지띠 분들이 보다 더 큰 자존감과 행복감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향후 2019 기해년을 계기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과 통일 미래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요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_하도겸│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 이 내용은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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