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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도감

조선 여인은 노리개를 어떻게 코디네이션 했을까?

20여 년 전 필자가 결혼할 때만 해도 시어머니께서는 노리개를 패물로 준비해주셨다. 당신의 새 며느리가 복식사를 공부한다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신 이유가 컸지만 시어머니의 정서 속에 노리개는 귀중한 결혼 예물이었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마음과 달리 패물용 노리개를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도 노리개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종로의 금은방에서 금두루주머니 장식 노리개를 주문해 제작했다.

 

전통적으로 혼례 때 신랑 집에서는 비녀, 가락지 등과 함께 노리개를 혼수로 준비해 결혼식 전날 신부 집에 보냈다. 혼인 허락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새롭게 가족의 일원이 되는 신부에게 주는 패물이었다. 궁중 가례는 물론 평민의 혼례에서도 노리개는 빠지지 않았다.

 

노리개는 금, 은 같은 귀한 재료로 만들었으며 옥, 비취, 자마노, 진주, 산호, 밀화 같은 보석으로도 제작되어 화려하고 비쌌다. 노리개에는 다산이나 장수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부귀영화를 의미하는 글자를 새겨 넣기도 했다. 보기에도 예뻤고 값이 비싸 재산 가치도 있었으며 패용했을 때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어서 딸이나 며느리에게 물려줘 집안의 가보로 보존하게 했다. 자자손손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무엇보다 노리개는 조선 여인의 몸치장 중에서 가장 사치스럽다.

 

우리 옷 한복은 흰색의 동정과 2~3가지의 배색으로 구성되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것을 화려한 노리개로 보완했다. 평상시에 입던 한복의 색상은 원래 옷감 그대로 소색이거나 옥색, 연분홍색이 많았다. 파스텔 색상 계열로 심심한 느낌마저 들 수 있는 한복에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을 사용한 노리개는 경쾌한 색감으로 생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노리개가 없으면 코디네이션이 완성되지 않은 느낌마저 든다. 넓은 치마폭에서 도드라진 듯 조화를 이루는 한복의 옷매무새에서 노리개는 착용한 사람을 빛내주는 화룡점정을 찍는다.

 

조선 여인이 즐겨 사용했던 노리개는 한복의 색상과 소재 등에 따라 코디네이션 되면서 전체적인 옷의 조화와 비례를 완성했다. 한복에서도 현대 패션에서 말하는 ‘토탈 코디네이션’의 모습으로 옷의 색깔, 무늬, 소재, 장신구가 서로 조화롭게 잘 표현됐다. 그러고 보면 노리개는 처음 생겨날 때부터 한복의 코디네이션을 위한 것이었다. 노리개의 기원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려시대부터 짧아진 저고리의 도련이 가슴 윗선까지 올라오자 상대적으로 길어진 치마에 장식이 필요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허리에 띠를 매고 필요한 것을 매달았던 오랜 관습도 영향을 미쳤다. 향낭노리개가 대표적이다.

 

감람橄欖빛 넓은 대를 매고, 채색 끈에 금방울을 달고, 비단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차는데, 이것이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宣和奉使高麗圖經20卷 婦人 貴婦

 

 

고려시대 귀부인은 금방울과 비단 향주머니를 찼다. 향주머니가 많을수록 부귀한 집안사람으로 여겼다. 조선에서도 노리개는 귀한 장식품이자 사치품이었다. 고려시대에 허리에 차던 향주머니가 조선에 이르러 장신구가 되었다. 향낭노리개처럼 점차 노리개 형태가 완성되었는데, 걸개 역할을 하는 ‘띠돈’에 향갑과 같은 장식물을 끈목으로 달았다. 향낭과 같이 노리개에 달린 장식을 ‘주체’라고 한다. 주체가 무엇인가에 의해 노리개의 성격과 용도가 달라진다. 주체의 재료, 형태, 개수에 따라 노리개에 이름을 붙였고, 코디네이션 방법이 달라졌으며 주체에 따라 신분을 표시하기도 했다.

 

노리개 주체에 사용된 재료는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시어머니에게 받았던 금색 노리개는 주로 겨울옷이나 금박을 한 한복에 코디네이션 되었다. 조선시대에 금은 아주 귀해서 궁중에서도 순금을 쓰는 경우는 드물었고 주로 은으로 만들어 도금해 사용하는 정도였다. 자마노, 밀화노리개 등도 겨울에 찬다. 반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은은 여름옷과 함께 착용했다. 시원한 모시소재의 한복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은에는 파란과 칠보를 입혀 장식했고, 백동도 있다.

 

주체主體_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 허리에 다는 장신구인 노리개의 주장식

 

옥 노리개는 봄이나 가을 옷에 매치되었다. 특히 5월 단옷날 이후부터는 옷이 흰색일 때 옥 노리개를 달았는데 은은한 컬러감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게 한다. 옥은 궁중가례에서 왕비나 세자빈에게 사용된 귀한 보석 노리개다. 산호, 비취, 호박 등도 노리개에 많이 쓰였다. 특히 산호는 붉은색 보석으로 벽사를 의미한다. 남색치마 등에 잘 어울린다. 호랑이 발톱, 말총 등도 노리개에 쓰였고, 옷감에 수를 놓기도 하였다. 보석 노리개를 살 수 없었던 서민들은 조각 천에 수를 놓아 만든 노리개를 애용했다.

 

주체의 형태는 매우 다양했다. 부귀, 다남, 다산, 장수, 기복, 벽사 등을 상징하는 박쥐, 나비, 매미, 물고기 같은 동물과 고추, 가지, 포도, 석류, 천도 등의 식물로 표현되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리개 주체도 많았다. 장도, 향갑, 바늘집 형태가 있다. 바늘집노리개는 주체 속에 바늘을 넣고 다니며 필요할 때 사용했고, 향갑노리개에 담은 사향麝香은 은은한 향기를 주위에 퍼트렸을 뿐만 아니라 구급약으로도 썼다.

일상생활용품인 호리병, 북, 버선, 방울, 투호 등도 주체로 쓰였다. 특히 호리병은 조선 여인이 일생동안 겪어야 하는 희로애락을 호리병에 담아 버리고 인생의 여정동안 쏟지 말고 잘 참으라는 부덕婦德을 의미한다. 소리가 악을 쫓고 경사를 부른다고 여겨 방울노리개를 찼고, 투호는 한해의 액을 막는다는 뜻이 있는 것처럼 조선 여인이 처한 상황과 감정은 노리개를 통해 드러났다.

 

향집노리개
바늘집노리개
투호노리개
주머니노리개

 

한편 주체의 개수가 하나일 때 단작單作노리개, 세 개를 한꺼번에 찼을 때는 삼작三作노리개라고 하였다. 짝수 노리개는 착용하지 않았고 오작노리개, 칠작노리개가 드물게 궁중에서 사용되었다. 단작노리개는 평상시에 간단하게 차고, 삼작노리개는 명절이나 행사가 있을 때 착용하였다. 삼작노리개는 같은 재료와 형태의 주체를 달지만 끈목과 매듭, 술의 색을 달리하였다. 주로 삼원색인 적, 황, 남색으로 만들어 궁중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입는 색상 옷과 코디네이션이 잘 되게 하였다. 주체의 재료, 형태를 각기 달리하여 크고 화려하게 만든 것은 대삼작노리개라고 한다.

 

노리개는 종류도 많았고 화려하였지만 조선 여인이 노리개를 코디네이션 하는 방식은 사회 통념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서민들은 금, 은을 비롯해 산호, 비취로 만들어진 노리개를 착용하지 못했다. 조선의 옷차림이 그러했듯 노리개도 전통적 계층 구분을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가장 화려했던 삼작노리개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착용하는 행사의 성격, 시기, 계절, 착용자 신분에 따라 착용방식이 정해져 있어 개인적 취향에 따른 코디네이션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정형화된 노리개의 배치와 조합은 매우 아름다웠다. 우리 조상의 세련된 미감을 엿볼 수 있는 코디네이션이다. 예를 들어 치마와 저고리 위에 겉옷을 입을 때는 허리띠에 노리개를 매달아 시각적 배치와 균형을 놓치지 않는다. 행사에 착용된 대삼작노리개는 의상과 보색 대비를 이뤄 강렬한 느낌을 주면서도 무겁고 정적인 느낌의 의례복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단작노리개

삼작노리개

 

일반 여성이 착용한 단작노리개는 주체의 종류와 형태, 끈목과 술의 색상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율성이 보장되었다. 개인적 선호에 따라 동물이나 식물 형태의 노리개를 자유롭게 골랐고, 취향과 경제력에 따라 보석을 선택할 수 있었다. 특히 노리개와 의상은 색채 코디네이션이 중요했다. 적, 황, 남색 이외에 분홍, 연두, 보라, 자주, 옥색이 노리개의 색으로 많이 쓰였다.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청과 적, 적과 황, 황과 백, 백과 흑, 흑과 청은 기운이 상생되는 조화로운 색으로 여겼고, 치마나 저고리 색에 맞춰 노리개를 착용했다. 예를 들어 삼원색 중 한 색상이 의상에 쓰였으면 노리개도 적, 황, 색 중 하나를 노리개 색상으로 선택해 착용했고, 파스텔톤 의상에는 주로 연분홍, 옥색 노리개를 패용했다. 별다른 노리개를 사용하기 힘든 서민은 조각천의 색상과 자수 문양 배치 등에서 뛰어난 감각을 살렸다. 바늘집노리개, 골무노리개, 괴불노리개가 그것인데, 천 조각마다 모란, 불로초, 매화 등을 수놓은 솜씨가 매우 세련되었다. 색상은 주로 적, 황, 남색과 녹색, 꽃자주색 등이 쓰였다.

 

노리개를 패용한 기생들의 모습

 

한국 장신구를 모티브로 한 주얼리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다는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필자가 결혼한 20여 년 전처럼 노리개를 전문으로 파는 보석 매장을 보지 못했다. 한복을 더 많은 사람이 입으면 노리개의 멋을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판매점도 생겨날 텐데 실생활에서 노리개를 접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우리 옷 한복에는 우리 장신구가 코디네이션 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한복의 비례와 색감에 맞춰 노리개를 멋지게 착용했던 조선 여인의 세련된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宣和奉使高麗圖經』
이경자, 홍나영, 장숙환, 『우리 옷과 장신구』, 열화당,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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