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_row 0=””][vc_column][vc_column_text 0=””]부산에 위치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근무하는 김석원 학예연구사는 ‘앤티크 인형으로 체계적인 역사 공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처음 인형 수집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인 덕분이었다. 앤티크 인형을 수집하던 지인의 컬렉션을 보고 독일 비스크 인형bisque doll, 도자기 재질의 인형의 매력에 매료된 것이다. 또한 세계 인형 수집을 통해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연구할 수도 있겠다는 학예사로서의 관심도 컸다. 일반적으로 학예사가 유물에 관심을 두거나 미술 작품을 수집하며 욕심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지만 김석원은 학예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앤티크 인형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유럽 비스크 인형에 매료되다
그리하여 1940년대 미국에서 발간된 『인형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그의 컬렉션이 시작되었다. 수집 초기에는 만든 지 100년 정도 된 유럽 앤티크 인형에 초점을 맞췄고, 1914년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진 모던 빈티지 인형에도 흥미를 가졌다.
“세계적으로 인형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조사한 박물관은 아직 없습니다. 프랑스와 일본에는 여러 인형박물관이 있지만 수집과 연구가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 인형박물관에도 많은 인형이 전시되어 있지만 조사와 분류가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학예사로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계획적인 인형 수집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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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보 컬렉터가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를 매료시킨 진짜 독일 비스크 인형을 구하려했지만 초반에는 많은 실패를 했다. 온라인에서 처음 구입한 인형은 중국산이었고, 우리나라 컬렉터들이 가진 인형들도 대부분 가품이었다. 진품 프랑스 비스크 인형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프랑스와 독일의 비스크 인형은 얼굴이 도자기로 만들어졌는데, 머리 모양과 의상이 대단히 화려하고 섬세해 인기가 높다. 프랑스에서는 장인의 아틀리에에서 만들어졌고, 독일에서는 주로 공장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프랑스 비스크 인형이 좀 더 화려하다. 그 대신 독일 비스크 인형은 생산량이 많고 정교하다. 앤티크 인형은 국제적 투자 가치가 있으며 가격도 안정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품이 많고 공정한 거래가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인형을 알면 역사와 사회가 보인다
김석원 학예연구사는 최초의 인형은 종교적인 성격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고대와 중세의 인형들 중에는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행운을 기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인형이 컬렉션의 대상이 된 것은 15세기부터다. 동양과 서양이 교류하며 부를 과시하기 위해 상류층에서 특별한 인형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가 꽃피우며 종교 인형이 쇠퇴하고, 사람을 위한 아름다운 인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실크와 귀금속마저 사용되며 궁중 예술품으로 성장하던 인형은 18세기 이후 공산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민 문화가 발달하면서 귀부인 중심의 인형 디자인이 종교인, 어린이, 남자 형태 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에 등장한 인형 공방에서는 상품으로서의 인형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1890년대 제작된 독일 비스크 인형들_김석원 소장
“19세기 들어서 장난감으로서의 인형이 등장합니다. 중국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입되면서 다양한 인형 제작 기술이 도입되었고, 부유한 독일 연방 국가에서 장난감 공장이 건설되기 시작했거든요. 프랑스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서민의 놀이 문화가 발달하면서 단지 감상하던 인형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 인형으로 진화된 것이지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유럽의 인형 공장이 군수 제작 공장으로 강제 전환되거나 파괴되면서 인형 장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더불어 앤티크 인형 수집가도 늘어나면서 현재 주요 앤티크 인형의 대부분이 유럽이 아닌 미국과 일본에 있게 된 것이다.
“앤티크 인형 중에 제가 가장 아끼는 것은 프랑스의 주모우Jumeau입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주모우 장인의 공방에서 제작된 인형이지요. 40cm 정도의 작은 크기에 얼굴이 도자기로 만들어져 깨지기 쉽지요. 당시에도 고가였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저렴한 독일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고 해요.”
이렇게 과거의 인형을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세계사와 사회상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학예사가 왜 앤티크 인형을 수집하는지 이해가 간다. 근무하고 있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도 해야 될 연구가 많다 보니 인형 연구와 수집에 몰두할 수는 없지만 김석원 학예사는 기회가 된다면 인형 전시와 논문 발표 등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제가 학예사이니 단순히 인형만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자료도 함께 수집했지요. 인형이 만들어진 당시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사진, 영상, 인형 경매 포스터, 인형 잡지, 소품들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인형을 모으기 이전에도 개항 시대의 사진, 엽서, 물건들을 수집해왔다.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도 고종 시대에 인형 공방이 있었다고 한다. 목각에 채색해 가죽으로 장식했던 이 인형들은 개항 이후 조선 문화를 알리기 위해 외국인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앤티크 인형은 아이들의 장난감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인형 수집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인류의 산물을 연구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일본에서 발달된 아트 토이와 피규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새로운 산업 발전을 견인할 수도 있지요.”
인형은 인간의 모습을 작게 재현한 예술품이자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수집을 하면서 ‘남자가 인형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 부딪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갖지 못한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갖고 있다는 행복감, 세계사 연구와 연계된 앤티크 인형의 역사가 김석원 학예사를 놓아주지 않았다. 세계사 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형을 수집하는 그의 열정이 바쁜 연구 활동 중에도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