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왕모西王母는 만물을 소생하게 한다는 전설상의 인물로 여선들의 우두머리다. 서왕모는 중국 전설에서 가장 영험하다고 믿어지는 성산, 곤륜산崑崙山 꼭대기 궁궐에 거주하며, 그 궁궐에는 요지瑤池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주나라 목왕穆王, B.C.10세기은 여덟 필의 준마를 타고 서쪽 천하를 순방하던 중 서왕모를 만나게 된다. 서왕모는 목왕을 위해 요지에 성대한 연회를 베푸는데, 그 연회를 그린 그림이 바로 「요지연도」이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요지연도의 이야기
서왕모의 명칭은 중국 상대商代 갑골문 기록에서 찾을 수 있으며, 서왕모와 목왕이 요지에서 연회를 즐겼다는 이야기는 중국의 옛 문헌인 『죽서기년竹書紀年』, 『목천자전穆天子傳』에 등장하는 만큼 그 역사가 깊다.
필자 미상, 「요지연도」 8폭 병풍, 지본채색, 155.8×380.5cm
우리나라에서 서왕모에 대한 인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인식을 여러 문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요지연을 묘사한 그림 또는 ‘요지연도’라는 화명에 관한 기록은 숙종이 지은 두 편의 시가 가장 이른 기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17세기 무렵 그림으로 그려진 요지연도가 감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궁중과 민간의 「요지연도」
숙종이 지은 시를 통해 궁중에서 요지연도가 감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숙종이 감상한 「요지연도」가 어떠한 구성과 형식의 작품이었는지 현재까지 알 길이 없다. 다만, 1800년에 제작된 「왕세자책례계병」과 1812년경 제작된 「왕세자탄강계병」을 통해 궁정에서 감상된 요지연도를 살펴볼 수 있다.
필자미상, 정묘조 「왕세자책례계병」, 1800년, 견본채색, 154.2×278.2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한편 민간에서도 요지연도가 감상된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 서울을 중심으로 민속을 기록한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혼례병풍의 한 종류로 요지연도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려주며, 1844년 한산거사가 지은 『한양가漢陽歌』에는 그림가게가 늘어선 광통교의 판매그림 중 요지연도가 포함되어있다.
광통교 아래 가게 각색 그림 걸렸구나
보기 좋은 병풍차의 백자도 요지연과
곽분양 행락도며 강남 금릉 경직도며
한가한 소상팔경 산수도 기이하다
『한양가』중에서
민간에서 감상된 「요지연도」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요지연도」는 앞서 유득공이나 한산거사의 글에 등장하는 민간 시정에서 감상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궁중에서 감상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요지연도」와 비교해볼 때, 어색한 신체 비례와 경직된 인물 표정, 급하게 그린 흔적 등은 이 작품이 궁중이 아닌 민간에서 그려지고 감상된 그림이었음을 알려준다.
「요지연도」 8폭 병풍, 서왕모 부분(왼), 정묘조 「왕세자책례계병」, 서왕모 부분(오)
행복한 삶을 염원하는 「요지연도」
궁중에서 감상되었던 그림이 어떻게 민간에서도 감상되었을까? 그것은 요지연도가 지니고 있는 행복한 삶에 대한 염원일 것이다. 요지연도에 등장하는 도교와 불교의 인물들은 각각 장수·길상과 관련이 있으며, 그 배경은 상서로움으로 뜻하는 자연물, 식물, 동물 등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전형을 이룬다. 특히 서왕모의 거처에 3천년마다 열리는 복숭아蟠桃가 있다는 이야기처럼 「요지연도」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가 화면 곳곳에 그려지고 있다. 즉, 「요지연도」는 불로장생과 행복을 염원하는 소망을 그림으로 담아낸 것이다.
오래 사는 것과 행복에 대한 욕구는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 없이 누구나 희망하고 바라는 것이다. 「요지연도」는 왕족이나 고관대작 등 지체 높은 신분이 감상한 세련되고 화려한, 정교한 필치의 작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보이는 서투르고 투박한 필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박은순, 「정묘조 「왕세자책례계병」-신선도계병의 한 가지 예」, 『미술사연구』 4, 미술사연구회, 1990.
우현수, 「조선후기 「요지연도」에 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글_박진수|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