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 절 마당을 쓴다 /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 산에 걸린 달도 /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 이성선, 백담사.
산촌의 밤은 일찍 온다. 여름철은 그대도 좀 낫지만 겨울에는 오후 네 시만 돼도 어둑어둑 해진다. 깊은 산중은 산그림자가 깊어서 더욱더 빨리 밤이 찾아온다. 그래서 산촌은 양지보다는 음지, 낮보다는 밤이 친숙하다.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밝고, 시끄러운 것과는 정 반대로 어둡고, 조용한 것들과 더 친하다. 그래서 산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리네 삶과는 거리가 있는 빛바랜 사진 속의 풍경을 갖고 있다. 노란 감나무 아래 피어오르는 굴뚝연기가 정겨운 굴피집, 비탈진 산기슭을 뒤덮은 푸른 배추밭, 밤이 깊어 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계곡 물소리, 그리고 눈만 들면 이마 위로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들까지.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산촌은 다소 비현실적이다. 이성선의 시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비현실성 때문이리라. 절마당 앞에 펼쳐진 큰 산과 작은 산이 어우러진 풍경과, 밤하늘에 걸리는 푸른 별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동화 속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당대의 산촌은 우리에게 버려진 공간이다. 농촌과 어촌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산촌이라는 단어에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입증이 된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서 농촌과 어촌을 활성화하는 정책은 쏟아지지만 정작 산촌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림청은 산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숲을 보전하고 가꾸는 기관이다. 그만큼 산촌은 70년대와 8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주변에 산촌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도 별로 만나지 못한 걸 보면 산촌은 주거공간으로 여겨진 지 오래됐다.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깊은 산중의 절집에 들어가서 지낸 적이 있다. 읽고 싶었던 책 몇 권만 달랑 챙겨들고 떠난 휴가였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라서 허덕이면서 살던 도시에서의 삶에 지쳐서 4박5일 동안 묵언수행을 하면서 놀맨놀맨 지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번잡스런 삶에 익숙해진 도시인에게 4박5일은 고역이었다. 요사채 방에서는 기침소리조차 너무나 큰 소음이었고,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책만 읽는다는 것은 고문이었다. 신문도 TV도 스마트 폰도 없이 며칠을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인에게 산촌의 밤은 길고도 길었다. 절집에 걸린 풍경소리만이 유일한 벗이었던 그 며칠간 오랫동안 도시의 휘황한 불빛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을 탓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며칠 더 지내라면 사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산촌은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에서 방영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은 도시에 사는 중년 남성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 역시 TV채널을 돌리다가 이 프로그램이 나오면 채널을 고정한다. 대개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사는 곳은 깊은 산중에서 혼자 지내는 중년 남성들이다. 내 기억으로는 여성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초로의 남성들이 산속에서 생활하면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이야기에 왜 중년 남성들이 열광할까?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들처럼 깊은 산중으로 숨어든 것은 아니지만 내 주변에는 지리산과 설악산, 계룡산과 태백산 자락으로 이주한 이들이 많다. 누군가는 양봉을 시작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목공소를 차렸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도시에서 하던 일을 산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 원고를 쓰거나, 책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역설적으로 온라인이 보편화되고, 교통이 편리해 지면서 굳이 도시 한 가운데서 부대끼면서 살지 않아도 산자락으로 이주해서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또 펜션을 운영하면서 도시에 사는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지인들도 있다.
이제 산촌은 전통적인 주거공간으로서의 지위는 잃었다 하더라도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새로운 이주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여름 찾았던 경남 하동의 최참판댁 너른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펜션은 매일매일 눈 뜨고 싶었던 집이었다. 와이파이도 팡팡 터지고, 시원한 에어컨도 있으며, 저녁이면 별들이 쏟아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지리산 자락을 감싸는 운무를 보며 감탄할 수 있는 집이었다. 그 집 아이들은 넓은 운동장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봄이면 벚꽃이 십리 길을 수놓고 눈을 들면 푸른 녹차밭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당대의 산촌은 힐링의 공간이자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 산촌을 다시 우리들의 주거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아서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사라져야 한다. 물질만능의 교육보다는 인본주의 교육이 부활해야 하고, 건설과 토목이 앞서는 나라가 아닌 인문과 교양이 대접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 끝으로 오래 전에 써놓은 졸 시 한 편으로 산촌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리들 삶은 부질없이 부는 바람과 같아 / 어느 땅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 어느 하늘에서도 잠들지 못한다 / 가없이 넓은 하늘과 땅이 있지만 / 우리가 머물 곳은 아무 데도 없고 / 바람이 불을 일으켜 땅을 만들면 / 그 땅을 일구어 자식들을 길들이고 / 아침마다 산허리를 감싸는 안개와 / 흰 서리의 섬뜩한 촉감을 사랑하며 / 또 하나의 집을 허물 뿐이다
서러워 말아라 / 머리를 두고 눕는 곳이면 어디나 고향이고 / 너희가 불로 다스릴 수 있는 /
모든 땅들이 너희들 것이니 /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지 말고 / 무리지어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말아라 / 그들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 안개와 바람과 숲을 / 기억하지 못하고 / 지상의 모든 꿈들을 / 하나 둘 잊어버리며 / 잊은 것만큼 죽어가고 있으니
우리는 죽어서 바람 속으로 떠난다 / 우리들 신인 불에 몸을 사르고 / 희디 흰 뼈로 남아서 / 양지 바른 바위 위에 누워 있으면 / 바람은 밀려와 나를 껴안고 / 뜨거운 사랑으로 나는 녹아서 / 바람 속으로 바람 속으로 떠날 것이다 / 어느 하늘에도 머물지 않고 / 어느 땅에서도 잠들지 않으며 / 이 산과 저 산 사이를 맴돌다가 / 지상의 자욱한 안개로 남아 / 삶의 빛나는 아침마다 / 이 땅의 사랑을 준비하리라. – 시 ‘화전민의 꿈’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주로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해 왔다. 1986년 동인지 《대중시》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대중음악의 노랫말에 얽힌 사연을 담은 에세이집 《톡톡 튀는 가수 이야기》와 시해설집 《시는 아름답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