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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를 꼽자면 단연 야구일 것이다. 야구는 1982년에 한국에서 가장 먼저 프로스포츠로 출범했고, 출범 초기부터 빠르게 큰 인기를 얻으며 국민스포츠로 거듭났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에 창단한 프로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 감사용이범수에 관한 영화다. 감사용은 인천 공업단지에 자리한 삼미철강 공장에서 일하는 회사원이다. 그는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틈이 날 때마다 투구 연습에 매진한다. 진심으로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가 하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프로야구단을 창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공개오디션을 치른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이래저래 마음이 동한다. 결국 근무 중에 담을 넘고 달음박질을 쳐서 가까스로 공개 오디션 장소에 도착한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가운데 한 구 한 구 볼을 던진다. 심드렁하던 감독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엿한 프로야구 선수로 입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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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를 기념하기 위한 싸인 야구공으로
투명한 원형 케이스 안에 들어 있다.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슈퍼스타 감사용>은 꿈에 관한 영화다. 감사용에게 야구는 꿈이었다. 야구선수가 된 감사용은 결국 꿈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마운드에 오른 감사용은 대부분의 이들에게 패배한 인생으로 비춰진다. 애초에 승리할 수 없는 투수, 패전처리투수였기 때문이다. 팀의 패배가 확실해질 때면 감사용이 마운드에 오른다. 중계방송마저 끝나고 관중들마저 객석에서 하나둘씩 일어나 야구장을 떠나가지만 감사용은 마운드에 올라 패색이 짙은 경기의 끝을 돌아본다. 그런 그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던 선발 기회가 생긴다. 선발 20연승에 도전하는 최고의 에이스 박철순공유이 등판하는 OB베어스 전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선발투수로 나서지 않으려는 경기에 감사용은 선발투수로서 마운드에 서겠다고 자원한다.

프로야구는 1982년에 창단한 이래로 꾸준한 인기를 얻어왔다.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다. 1982년에는 6개 구단으로 출범했던 프로야구는 현재에는 10구단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1982년 당시엔 14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했지만 이제는 800만 명 이상의 관중들이 야구장을 찾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35년 동안 지속되어온 만큼 야구장의 응원문화도 많이 변했다. 여성 팬들도 적지 않은 오늘날의 야구장 풍경과 달리 90년대까지만 해도 야구장은 남성 일색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선수들에 대한 다양한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단장의 지휘 아래 관객들도 다양한 몸짓으로 응원에 참여하지만, 2000년도 초반까지는 파도타기가 유일무이한 응원 방식이었다. 하지만 파도타기가 한번 시작하면 경기장을 몇 바퀴 돌고도 계속 이어졌는데 대단한 장관이었다. 또한 선수 응원가를 부르는 요즘과 달리 광주 무등경기장의 관중석에서는 <목포의 눈물>을, 부산 사직구장의 관중석에선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제창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팀을 응원한다는 애향심이 대단했고, 그만큼 팀에 대한 애정도 뜨거웠다. 응원하는 팀에 대한 애정만큼 관중석의 분위기도 거칠었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면 선수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 앞으로 몰려가 집단으로 항의하며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심지어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은 1986년 한국시리즈 중엔 대구구장에서 원정 경기를 치렀던 해태의 버스가 불에 타는 사건도 발생했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매일 연패를 당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들이 보다 못해 선수들이 타는 버스 앞으로 몰려가 항의를 한다. 락커룸에서 나오던 선수들은 버스로 돌아가지 않고 눈치를 보다 결국 일반인 복장으로 도망가듯 야구장을 빠져나가는 장면 이다. 그만큼 프로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응원팀의 승리를 간절히 바랬다. 이는 상대적으로 야구만한 즐길 거리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여가 활동의 선택지가 많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조금은 극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야구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은 그런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스타선수들과 달리 되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그림자처럼 자리해야 했던 인물을 조명함으로써 꿈과 성공과 실패의 척도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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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기념 탁상시계.
현대 유니콘스는 1982년 2월 5일 창단한 삼미 수퍼스타즈의 후신(後身)으로
현재 ‘우리 히어로즈’로 바뀌었다.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한편, 프로야구를 향한 팬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대단한 기량을 가진 선수를 향한 응원 또한 뜨거웠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에이스 투수 하나가 팀의 운명을 가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야구의 역사 역시 불세출의 투수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프로야구 개막 원년의 최고 스타였던 OB 베어스의 박철순은 여전히 깨지지 않는 기록인 선발 22연승을 올리며 프로야구의 시작과 함께 역사를 쌓았다. 무엇보다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전은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과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렬의 맞대결이었다. 특히 최동원과 선동렬이 모두 15이닝 연장전까지 완투한 1987년 5월 16일의 경기는 세기의 명승부로 꼽힌다. 당일 선발로 출전한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던졌고, 선동렬은 232개의 공을 던졌지만 끝내 2:2 무승부로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이 날의 기록은 여전히 한 경기 최다 투구 수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지금도 전설적인 승부로 회자된다. 이 경기는 훗날 <퍼펙트 게임>이라는 영화로까지 제작됐다. 스포츠를 두고 괜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 게 아닌 것이다.

감사용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으로 선발 경기에 등판한 감사용은 온 힘을 다해 투구한다. 꿈에 그리던 선발투수가 된 만큼 상대투수가 누구든 간에 자기 자신을 위한 싸움을 벌여나간다. 비록 그 끝에서 진짜 패배를 맞이할지라도 타인의 패배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패배를 끌어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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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스틸컷

 

사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감사용을 모델로 둔 실화 영화이지만 완전히 실화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본래 삼미의 초대 감독의 눈에 들어 프로선수로 선발된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감사용이 자발적으로 공개 오디션이 참여해 선수가 되길 원한다. 또한 감사용은 첫해에는 선발투수로 등판했고, 이듬해인 1983년부터 선수생활을 은퇴한 1986년까지 선발투수가 아니라 경기의 중후반에 등장하는 계투진으로 활약했다. 또한 감사용이 선발로 등장했던 경기는 박철순의 20연승 경기가 아니라 16연승에 도전하는 경기였다. 그밖에도 많은 부분이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될 결과처럼 보이는데 이는 영화가 실제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태도를 대변하는 것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프로야구 선수가 된 감사용의 성공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야구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가 야구를 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만을 두고 성공이라 부추기는 영화도 아니다. 반대로 실패했다고 훈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름의 성공을 꿈꾸는 한 남자의 삶이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록 우승팀도, 뛰어난 에이스도 아니었지만 9명이 있어야 경기를 할 수 있는 야구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인생에서 패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감사용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만큼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단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었던 투수의 절실함이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경기는 끝나도 인생은 끝나지 않으므로, 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슈퍼스타 감사용>은 그렇게 말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글_ 민용준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올레TV <무비스타소셜클럽>의 배우 인터뷰 코너에 출연 중이며 KBS와 EBS 라디오에서 영화 소개 코너에 출연 중이다.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와 세상만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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