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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꽃으로 말하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은 연꽃으로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왔다. 출세를 꿈꾸는 선비의 책거리에는 모란이 수 놓였고, 여성의 비녀에는 사랑을 담은 매화가 내려 앉았다. 우리에게 꽃은 한 송이 한 송이가 모두 이야기다. 하지만 어쩐지 일상에서 꽃을 손에 드는 일은 흔치 않다. 결혼, 고백, 생일, 기념일, 기일 등 삶에 기점이 되는 아주 중요한 날들 정도. 꽃을 통해 축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에게 꽃은 그래서 조금 무거운지도 모른다. 최근 ‘플로리스트’라는 전문직이 등장하면서 꽃이 가진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플로리스트 오드리를 만나 우리와 꽃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꽃과 일상, 다가가기

꽃집 문을 열며 들어오는 손님이 튤립 한 송이를 부탁한다.
선물 하시려고요? 아니요, 비가 와서요.
물론, 다른 나라 이야기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좀처럼 꽃집 문을 열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꽃과 함께 하는 것이 일상에 녹아있어요. 정원에는 늘 꽃이 피어 있고, 그 꽃이 시드는 것이 아까워서 그 꽃을 집 안 화병에 꽂아두죠. 책상이 허전하면 꽃을 올려놓고요. 비가 와서, 날이 좋아서, 가을이라서 꽃을 사고, 그래서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도 꽃을 팔아요. 그 정도로 그들에게 꽃은 일상이에요. 스스로를 위해 꽃을 사는 문화, 우리에게는 아직 어색하죠.”

플로리스트 오드리가 유럽의 플라워 아트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던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플로리스트라는 말이 흔치 않았다. 동네 꽃집에서 마 포장지에 안개꽃 한 단을 깔아 놓고 빨간 장미 몇 송이를 싸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손님에게는 빨간 장미로 할 것인지, 노란 장미로 할 것인지, 그리고 몇 송이를 할 것인지 정도의 작은 선택권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영국에서 실무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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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온 민족이지만, 일상에서 꽃을 대하는 마음은 조금 서툰 것 같아요. 외국에서 플라워 아트 수업을 진행하면,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향기를 맡느라 수업 진행이 안돼요. 반대로 한국에서는 묵묵히 꽃만 만져서 제가 오히려 ‘오늘 꽃 예쁘지 않아요? 어쩜 이렇게 오묘한 빛을 낼까요?’하면 겨우 호응이 있는 정도예요. 우리가 소중한 사람에게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어색해 하는 것과 어느 정도 맞물려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우리뿐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축하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 응원하는 마음, 위로하는 마음을 꽃에 담아 전한다. 왜 꽃일까?

“꽃을 주는 행위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에요. 과거에는 지금처럼 표현의 수단이 많지 않았잖아요. 그때 주고 받았던 꽃이 오늘날 더 큰 상징을 갖게 된 거죠. 꽃을 준다는 것은 상대를 향한 호감을 전제로, ‘우리 행복하게 잘 지내자’, ‘슬퍼하지 마’, ‘응원할게’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전하는 매개체가 되어주는 겁니다.”

 

꽃과 말, 문화 이해하기

꽃말에 집중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거다. 꽃이 가진 의미를 상황과 매치하여 가장 적절한 꽃으로 마음을 대신 전하기 위해서. 장미는 사랑을, 백합은 순결을, 프리지아는 응원을 담고 있으니 그 꽃을 받은 이들은 충분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참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플로리스트 오드리는 이것이 꽃을 꽃말에 가두는 일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가 꽃말에 집중해 꽃을 고르는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꽃의 색깔이나 상황에 따라 메시지를 담아요. 그래서 두 상황이 상충되기도 하죠. 우리에게는 이별, 아픔, 헤어짐 등의 꽃말을 갖고 있어서 선뜻 선물하지 못하는 노란 장미를, 서양권에서는 응원이 필요한 사람이나 병문안 등에게 건네요. 노란색은 해피 컬러거든요. ‘힘내!’라는 메시지죠. 반면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선물하는 빨간 장미와 하얀 안개꽃의 조합이 어떤 나라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해서 기피해요. 그것처럼 자신이 속한 환경과 문화에서 알맞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꽃을 선물하는 것이 좋겠죠.”

주로 조화로 쓰이는 국화는 우리에게 그 의미가 짙어 평소에는 좀처럼 다루지 못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국화는 자유롭다. 오히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꽃으로 장례식을 꾸미기도 한다. 플로리스트 오드리가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장례식 관련 이벤트 꽃을 할 때, 식장을 온통 빨간 장미꽃으로 꾸민 것도 그 이유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꽃이었기 때문에.

“문화에 따라 꽃의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에요. 그 나라의 문화에 꽃이 녹아 있는 거죠.”

같은 맥락에서 그는, 다른 나라에서 플라워 아트를 배우고 돌아온 플로리스트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꽃이란 그 나라의 환경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그곳의 플라워 아트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환경과 문화를 고려한 형태로 줄기를 뻗고,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플로리스트라는 전문직이 대중화 되면서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돌아와서 꽃 디자인만 전파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요. 꽃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거나 수입 꽃에만 의존한다거나. 꽃에도 제철마다 즐기는 방법이 있고, 종류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데 그런 것은 무시한 채 무작정 예쁜 것, 수입 꽃, 그럴듯한 포장만을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건강한 꽃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우리나라 꽃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꽃과 곁, 아무렇지 않기

플로리스트 오드리가 가장 좋아하는 플라워 아트는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현재 있는 곳의 제철 꽃을 사용하는 것이 저에게 가장 우선입니다. 음식에도 제철요리가 있듯, 꽃에도 제철이 있어요. 이제는 수박을 겨울에, 딸기를 여름에도 먹을 수 있지만, 제 계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선명한 색이나 그 맛은 느낄 수가 없잖아요. 꽃도 마찬가지에요. 봄에는 수선화, 히아신스, 튤립, 여름에는 키가 크고 색이 진한 꽃들, 가을에는 낙엽, 단풍, 주황색, 노란 꽃 등 계절에 맞는 꽃을 써요. 그리고 그 꽃들로 스토리를 떠올립니다. 시간 차를 두고 피고 지는 꽃들을 골라요. 대부분 꽃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시든다고 생각하는데, 열흘도 가고 보름도 가는 꽃들도 많아요. 그런 꽃들을 잘 조합하면 꽃들이 피고 지면서 그들만의 스토리를 보여줘요. 그걸 즐기는 거죠.”

우리가 일상에서 꽃을 곁에 두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들어가는 꽃을 보는 석연치 않은 마음과 그 시든 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스러움이다. 꽃을 사는 일은 분명 행복하고 기분전환이 되지만, 시든 꽃을 버릴 때의 착잡함은 차라리 괴롭다.

“하지만 꽃의 시듦 또한, 시간이 만드는 예술이에요. 봉오리가 활짝 꽃을 피우고, 그것이 절정으로 아름답게 피었다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거죠. 늘 한창인 모습만 보고 싶다면 조화를 곁에 두면 되지만, 그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쉽죠.”

그는 꽃이 평범한 일상에 아무렇지 않게 녹아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색이 밝은 꽃 한 송이, 친구와 식사 하러 가는 길에 가볍게 꽃 한 송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군것질 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사서 즐겁게 건네는 마음, 그것이 쌓이면 꽃을 대하는 우리 마음이 어색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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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스트 오드리가 제작한 플라워 아트 작품들 _사진제공 오드리
“’무슨 날도 아닌데 왠 꽃이야?’ 가 아니라 ‘아, 소국이네. 가을인가 보다.’, ‘히아신스가 피었네, 겨울이구나.’ 하는 일상이 되면 좋겠어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꽃으로 만드는 전시를 상상했을 때 그의 마음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지금의 느낌을 반영한 컬러톤의 꽃으로 전시장을 가득 꾸며서 현재를 표현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오브제들과 그 시대에 피었던 대표적인 꽃들을 곁들여 함께 표현하는 거예요. 마치 살아있는 민속화처럼요.”
꽃은 곱다. 예쁘고 아름답다.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지는 꽃은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리면 꽃은 상처 입듯, 너무 많은 굴곡에 우리도 상처 입는다. 꽃이 우리 삶을 대변하는 기록이 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찬 겨울에도 피는 꽃이 있다. 세상이 차가워질 수록 붉은 꽃을 피운다. 우리와 참 닮았다.

플로리스트 오드리
아버지와 여행했던 영국의 거리에서 꽃에 매료되어 플로리스트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플라워 디자인, 가든 디자인, 식물학을 공부하고 공간 콘셉트 디자이너, 마돈나 등 아티스트와의 협업, 엘리자베스 여왕 꽃 초상화 등 다양한 활약을 펼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오드리 플라워즈’를 통해 우리에게 맞는 꽃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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