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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추천

오창현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떼배>

‘떼배’는 동해안뿐 아니라 남해안과 제주도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어구이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떼배는 동해안에서 미역을 채취하기 위해 사용했던, 통나무나 두꺼운 판 5~10개를 조합하여 엮은 어선을 말한다.
 
 

미역 채취에 최적화된 스마트한 배 ‘떼배’

 
나무를 엮어 물에 띄운다는 점에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뗏목’을 떠올리기 쉬운데, 뗏목은 강으로 목재를 장거리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로 제작 목적이 떼배와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역을 의례품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미역을 항상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일반적인 어선으로 미역을 채취하기에는 좀 불편해요. 그래서 어민들이 떼배를 직접 만들어 연안에서 미역 채취 작업을 했습니다. 특히 동해안의 경우, 채취 시기인 봄에는 오히려 수온이 낮아져 해녀가 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떼배가 꼭 필요했죠.”
 
떼배는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 제주도 지역에서 사용했는데 동해안의 경우 미역 채취, 남해안은 비료 등에 사용할 각종 해초 채취, 제주도는 특산품인 자리돔이나 멸치 잡이에 사용했다. 각 지역별 쓰임에 따라 떼배는 크기가 달라지는데, 동해안에서의 떼배는 1~2명이 탑승했던 반면 제주도는 5~8명이 탑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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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연안에서 미역을 채취할 때 사용한 ‘떼배’왼쪽. 미역 채취 외에도 복합 어업활동이 가능한 전미선오른쪽이 들어오면서 떼배는 제 역할을 내주었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연안에서 잡히는 어종은 값어치가 없거나 내륙에서는 잘 먹지 않았어요. 대신 명태 등의 어종을 선호했는데 명태를 잡으려면 먼바다까지 나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큰 배가 필요했죠. 그러다 연안에서 잡히는 볼락, 우럭 등의 어종 가격이 오르면서 연안어업이 주목 받게 되었고, 복합어선인 ‘전마선’이 도입됩니다. 이 배로 물고기도 잡고, 미역도 채취하게 되면서 떼배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죠.”
 
오창현 학예연구사가 떼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업 관련 조사 차 일본의 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그곳에 우리의 떼배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부터다. 게다가 일본 학자들은 우리의 떼배에 관심을 갖고 오래 전부터 연구하고 있었다.
 
“일본의 서쪽 연안에서 우리 동해안의 떼배와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일본의 인류학, 민속학의 이론 중 하나가 진화론인데 그 논리에 의하면 이 떼배가 선박의 발전 구조에서 특정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여긴 거죠. 한국에서 선박의 고형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일종의 선박 기술의 진화 과정을 서술하기 위해 우리 떼배를 중요하게 여겨졌던 겁니다. 그리고 이는 종종 한국어업의 낙후성에 대한 담론으로도 연결됩니다.”

 
 

세월 속으로 사라진 떼배, 다시 돌아오다

 
전마선 도입으로 어부들의 일상에서 멀어진 떼배가 요즘 다시 바다에 등장하고 있다. 왜일까?
 
“전마선은 겸용으로는 사용할 수 있겠지만, 미역 채취만 하기에는 불편한 배예요. 전마선으로 미역을 채취할 경우에는 2인 1조를 이루어서 작업해야 하지만, 떼배로는 혼자 작업이 가능해요. 두 사람이 하나의 작업을 하는 것과 각자의 떼배에서 작업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생산성이 높을까요?”
 
그는 큰 항구가 없는 작은 어촌의 인구 노령화와 자연산 미역이 다시 각광을 받아 가격이 상승한 현상도 떼배를 다시 바다로 불러낸 이유로 꼽았다. 게다가 제작을 위해 큰돈이나 노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간단히 만들고, 또 분리해서 보관할 수 있는 이점도 크게 작용했다.
 
오창현 학예연구사는 떼배를 연구하기 위해 한 달 가량 동해안을 찾아 다니며 조사했다. 직접 마을의 사람들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생활재의 기초적인 기록을 남겼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이러한 현장 조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또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민속학만이 할 수 있는 물질 조사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의 것이 된 유물을 조사하는 것은 대부분 가설을 전제로 합니다. 토기를 통해 당시의 미적 감각이나 사회 문화상 등을 유추해보는 것이죠. 하지만 민속학은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현존하기에, 제보자들이 물건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물건의 사용방식을 정확히 알 수 있어요. 물론 이 물건을 쓰는 사람들에게 ‘왜 쓰느냐’고 물으면 논리적인 대답을 듣기는 힘들어요. 이유는 없거든요. 늘 써왔으니까, 그저 곁에 있으니까. 그래서 그 어떤 대답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대답들을 모아서 학술적인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이 민속학적 조사에요.”
 
물론 이 작업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처음 가보는 마을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뜸 물건에 대해 묻고, 물건을 살펴보고, 돌아와서 문헌과 규격을 정리하고, 다시 낯선 마을로 향하는 일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들에도 의미를 담기 위해 노력해요. 누군가는 기록해 놓아야 할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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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평범한 삶이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

 
오창현 학예연구사가 처음부터 어업 관련 연구를 한 것은 아니다. 원래는 농민사회의 사회조직, 생산조직, 신분관계 등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런 그가 어업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농업 관련 연구에 비해 어업 관련 연구가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죠. 헌데 그런 환경에 비해 연구자가 정말 없어요. 처음 바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2004년 화성을 조사할 때였는데, 어업과 관련된 문헌도, 흔적도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를 그냥 어업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하더라고요. ‘정말 이토록 어업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본과 중국을 찾아가서 각 나라의 어업에 대해 조사를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국립민속박물관의 어촌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어업을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죠. 어업이 발전했느냐 발전하지 못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에 따라 어업 기술의 형태가 달랐던 거구나. 그때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어구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죠.”
 
우리의 삶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삶과 그 형태가 보여 사회를 이루고 시대를 이루며 역사를 이룬다. 그 어느 것도 하찮은 것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우리 삶의 대종大宗을 이루는 서민 생활, 민중 생활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그는 안타깝다.
 
“우리는 보통 유물을 수집한다고 하면 고대 왕실이나 부유한 계층의 물건들을 떠올려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았던 평범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것을 꺼리죠. 현대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잖아요. 그런데도 노동자로서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고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 하죠. 이러한 태도는 어업연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요. 우리나라 어민들이 나름의 합리성 위에서 어구를 개발했는데 식민지기를 거치면서 마치 저급한 것처럼 치부되었거든요. 이후 학자들도 덩달아 그렇게 판단해버리게 된 거죠. 우리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각자의 삶에 대한 민주주의적 태도가 전제될 필요가 있어요. 그러한 태도 위에서야 서민생활의 원리와 그 구조를 파악하고, 한국 문화, 나아가 문화 일반에 대한 보편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떼배를 보여달라는 요청에 마을 사람들은 흔쾌히 창고를 활짝 열고 떼배를 구성하는 나무와 부속물들을 꺼내 조립해주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는 웃음 섞인 의문도 보탰다. 하지만 떼배는 결국 먼 세월을 지나 우리의 삶으로 다시 돌아왔고, 그만큼 우리의 삶과 맞닿아있는 평범한 물건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둘러보자. 우리의 이토록 평범한 삶에도 시대를 반영할 소중한 것들이 우리와 같은 속도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니.
 

| 20세기 전반 미역과 명태 어업을 통해 본 <동해의 전통어업기술과 어민> -PDF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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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영숙 댓글:

    귀중한 자료를 연구하고 문헌으로 기록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속에 숨겨진 삶의 도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들을 무심코 지나치고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알 권리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 이성복 댓글:

    잘 보았습니다.

  3. 오창현 댓글:

    답글이 늦었습니다. 두 분의 관심에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4. 오택만 댓글:

    우연히 인터넷 검색하다가 조카의 전통민속자료 수집, 기록물을 인터넷으로 읽고있다니 감개무량입니다!
    항상 자신이 하는일에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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