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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사진 속에 없는 아버지,
100인의 기억과 만나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24년 4월 30일(화)부터 7월 15일(월)까지 《아버지》 특별전을 개최한다. 가정의 달을 기념하여 ‘아버지의 가족 사랑’을 주제로 한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100여 명의 사람이 참여하여 저마다의 사연과 사진, 이야기, 물건 등을 공개하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나누었다. 또한 아버지 정약용의 마음을 담은 하피첩霞帔帖과 아이를 위해 천 명의 글자를 받아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등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소장품도 선보인다.

아빠는 육아 중
요즘 남편들은 가사와 육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부부가 가사를 똑같이 분담한다는 비율이 20대 56.4%, 30대 44.1%로 나타났다. 육아 역시 남편의 참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5만 4,240명으로 전년보다 28.5% 증가했으며, 전체 휴직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저출산 해결 방안 중 하나로 꼽히게 되면서 정부에서는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그러다보니 분명 “나 때는 안 그랬는데…”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요즘 아빠들은 다르다. 육아에서도 아이와 다정하게 소통하는 친구 같은 아빠들이 많아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빠들이 달라졌을까? 왜 달라졌을까? 아버지들의 사랑이 변한 걸까? ‘아빠’,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이러한 궁금증에서 《아버지》 전시 준비는 시작됐다.

‘사랑’ 말고 뭐 없을까?
5월은 가족 행사가 많은 계절이다. 이때 오픈해야 하는 ‘사랑’ 전시라면, 가정의 달 기념으로 ‘가족 사랑’ 주제가 적격이다. 부모의 사랑하면 으레 등장하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를 택한 것은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어머니하고는 다른 느낌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익히 들어왔지만, 아버지만의 사랑은 왠지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버지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아버지에 관해서 물으니, “아버지와는 별로 대화가 없다”, “아버지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의 아버지는 그저 과묵하기만 한 걸까? 그렇게 수집하기 시작한 ‘아버지’ 이야기는 이후에 가슴 먹먹한 사연들로 하나둘 모아졌다. “없다”로 시작했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아버지에 대한 사연이 있었고, 그 안에 감동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만 담기엔 부족한 그 묵직한 무엇. 치열하게 고민했으나, 아직도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이 주제이지만 전시 타이틀을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묵직한 무엇’은 《아.버.지.》라는 세 글자에서 느껴지는 울림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100인의 아버지를 만나다
먼저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메일로도 사연을 받았다. 남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짓고,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 찡했다. 눈물 없이는 할 수 없는 전시 준비였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내어준 참여자들과 사연을 정리하며 함께 울었던 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100여 명의 사연이 담긴 ‘참여 전시’이다. 누군가는 이야기로, 혹은 사진이나 물건으로, 저마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전시에는 참여자의 사연을 합쳐 모두 144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레시피수첩
아버지의 편지

항암치료로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을 감추고자 딸 결혼식에 썼던 아버지의 모자, 그 모자에는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기 위해 여러 날 힘겹게 걷는 연습을 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숨어 있었다. “비가 오면 늘 고추장떡이나 수제비를, 일요일에는 김치볶음밥이나 부대찌개를 해 주셨습니다. 그 맛이 아직 생생한데, 다시는 맛볼 수 없어서 아쉬워요. 그때를 추억하며 어설프게나마 아빠의 레시피를 흉내 내 봅니다”라며 내어준 아버지의 레시피 수첩, 제자들에게 선물 받은 순금 열쇠를 녹여 가족 간의 화합을 당부하며 다섯 며느리에게 만들어 준 금가락지, “사랑한다는 말도 아까운 내 아들”이라고 군에 간 아들에게 그리운 마음을 절절하게 쓴 아버지의 편지, “최선을 다하는 습관과 부지런함, 절대로 좌절하지 않는 집념, 아빠가 너에게 물려주려는 재산이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빠인 내가 실천으로 보여야지”라고 다짐하는 아버지의 일기도 있다. “아버지는 건설 회사에 다니셔서 현장 근무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저와 동생들 생일에 함께 하지 못할 땐 전보를 보내주시며 축하해 주셨어요.” 그때 보내주신 전보를 보면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진다는 딸, “아버지가 전쟁통에 가지고 다니셨던 숟가락을 제가 미국으로 갈 때 복제해서 물려주셨어요. 그 덕분에 30여 년간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아들의 말에서 자식이 어디를 가든 밥 굶지 않고 평안하길 바랐을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버지가 사다 준 티셔츠 여기저기에 구멍이 났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입고 있는 딸,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제주 애기구덕그 구덕에서 자란 아기들이 잘 성장했다고 하여 인기 있는 육아템을 미리 구해 놓은 예비 아버지의 사연까지, 저마다의 이야기와 사연이 담긴 물건들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여기에 스무 명의 아버지와 자녀가 참여한 인터뷰 영상이 더해져 누구든 자신의 아버지나 자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조선 아버지의 속정
권위적이고 엄격했으리라고만 짐작했던 그 시절 아버지들도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여느 아버지 못지않게 자상하고 따뜻했다. 아버지 정약용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에 관한 애틋함을 글로 전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1810년 전라도 강진의 유배지에서 부인 홍씨가 보낸 노을 빛깔의 치마를 잘라, 자식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들을 적어 서첩을 만들었다. ‘노을처럼 붉은 치마로 만든 서첩’이라는 의미의 하피첩霞帔帖은 2010년 보물로 지정된 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여러번 전시한 바 있다. 이전의 특별전시를 놓친 관람객이라면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히피첩(왼쪽)과 천인천자문(오른쪽)

이 밖에도 천 명이 한 글자씩, 천 개의 글자를 써서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도 전시된다. 천인천자문은 집안에 새로 태어난 아이를 위해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천 명의 지인을 찾아가 한 글자씩 부탁하여 받아 만든 책이다. 천 명의 지혜가 아이에게 전해져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뜻을 담아 아이의 돌상에 올려놓는다. 이번에 소개하는 천인천자문은 김교철金敎哲이 1934년 2월 8일, 그의 아들 정옥正沃의 돌을 기념하여 만든 책이다. 단 하나의 글자를 부탁하려 천 명의 지인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정성을 떠올리게 하는 소장품이다.

아버지는 있다
아버지에 대한 질문에 “할 말이 없다”라는 대답으로 시작한 참여자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꺼냈다. 그 시절 아버지는 말이 없었고, 일하느라 집에 없었으며, 그 흔한 우리 가족 사진 속에도 없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켜내려는 마음으로 집 밖 일터에 있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의 아이들을 찍어 주느라 사진 밖에 있었다. 참여자들은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과 지나온 그의 삶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돌아보니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버지》
시대가 변화하면서 아버지의 모습도 변화했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엄한 아버지를 만들기도 했고, 경제적인 역할이 아버지를 사회로 내몰기도 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다정하게 소통하는 친구 같은 아빠를 선호하며,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슈퍼맨형 아빠도 등장했다. 이번 전시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사람을 향하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우리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해온 아버지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해서 무심했는지 모른다. 전시를 통해 아버지를 돌아보며,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글쓴이 | 변정숙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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