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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박물관

요강

“요강[尿缸]은 집 안에 두고 용변을 해결하던 그릇으로, 화장실이 집 안에 설치되고 수세식 변기가 자리잡기 전까지 방구석을 차지했던 생활필수품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와 재질의 요강들이 제작·사용되어왔는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9수장고에서는 주로 도자기로 만들어진 요강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던 사람들은 요강 앞에서 먼저 어린 아기들의 배변훈련과 기저귀 떼기 용도인 이동식 소형변기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 부부는 어린 시절 한옥에서 생활했던 만큼 요강에 얽힌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아내의 추억, 할머니의 사기요강
할머니 방에는 늘 요강이 있었다. 우리는 겨울이면 철새처럼 할머니 방을 찾아들었다. 집에서 제일 따뜻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분신, 하얀 빛깔의 요강은 한겨울의 긴긴밤 변소간(변소의 비표준어)의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었다. 다른 집에도 대개 한두 개의 요강이 있었지만, 우리 집 요강은 특별했다. 하필 변소간이 대문을 지나 길 건너에 있었고 그것도 마을 중간쯤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인데, 명절이면 도회지로 나갔다 돌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줍고 웃음 많던 사춘기 소녀 시절에 이 변소간 문제는 크게 다가왔다. 어느 날인가 담벼락으로 사람이 뜸한 틈을 보고 잽싸게 뛰어 들어간 변소간에서 한나절이나 갇혀있었던 적도 있다. 볼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내 친구 선아의 사촌오빠(온 동네 여자들의 인기남)가 거기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소간을 거기다 만든 증조분지 고조분지를 원망했다가, 요강을 이용할 걸하고 후회했다가, 나중에는 그 오빠를 기다리게 한 누군지도 모를 사람까지 미워했다. 온몸에 똥냄새를 잔뜩 머금은 채 대문 안까지 도망치다시피 뛰어든 그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후 뒷간에 스테인리스 요강이 생긴 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6남매 모두의 불평과 원망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줌은 상관이 없지만 똥은 용변 본 사람이 치워야 했다. 할머니 방 요강은 새벽같이 일어나시는 할머니 손에 늘 반질반질 닦여있었다. 재질도 사기인 데다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인지 멋져 보였다. 뒷간 요강은 상태가 좀 거시기했다. 서로 미루다 엄마에게 혼쭐이 나기도 하고 가끔은 할머니가 쇠죽 끓인 물로 닦으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깨끗이 닦여지는 건 좋은데, 할머니의 결론은 늘 엄마였다. 자기가 사용한(엄마도 자주 이용) 것도 관리 못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밤새껏 앓으며 끙끙대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데 대한 할머니의 화살이었다.

그림_문연아(어반스케치 회원)

할머니 방 요강이 미운 적도 많았다. 요강을 턱 밑에 안고 구토(할머니는 위장병이 있었다)를 할 때면 으레 언니나 나는 잠에서 깨야 했다. ‘등 두드려라, 다리 주물러라, 숭늉 퍼와라.’ 한바탕 난리가 났고 요강 안에 희누런 토사물을 보면 왠지 나도 위병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토증이 며칠 지속돼도 엄마가 나와보지 않으면, ‘인정머리 없다, 곰이다.’ 화살이 또 엄마에게 날아갔다. 그럴 땐 저놈의 요강이 없었으면 하고 애꿎은 요강을 원망하기도 했다. 남동생의 실수로 할머니의 하얀 요강이 깨지고 뒷간 요강처럼 스테인리스 요강이 들어온 날, 할머니는 가벼워도 엉덩이가 불편하다고 어색해하셨다. 우리 형제들이 서울로 유학을 올 때 함께 올라오신 할머니는 그때도 그 요강을 가지고 오셨다. 다섯 집이나 세 들어 사는데 화장실이 딸랑 하나여서 가끔 그 요강을 요긴하게 사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편의 추억, 어머니의 가마 요강
우리 집 주방의 찬장 한구석에는 놋쇠로 만든 조그만 가마 요강이 하나 놓여있다. 박물관 수장고와 전시실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여러 재질의 가마 요강들을 보아왔던 터라 눈길이 가는 명품은 아니다. 오히려 아래에서부터 1/5 지점까지 거무튀튀하게 변색되어 있는 상태다. 내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평범하면서도 볼품이 없는 요강이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결혼한 이듬해 설날, 아내는 본가 거실의 장식장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뚜껑이 예쁜 놋쇠 항아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놋쇠 특유의 반짝임이나 모양새도 눈에 띌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쓰였다. 살짝 다가온 어머니께서 그건 요강이라 하면서, 당신이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꽃가마 안에 넣어주었다고 하셨다. 전쟁통에 급히 전통 혼례를 치렀는데, 시집가던 날 가마가 흔들리고 또 가마꾼들을 의식해서 그 안에서 용변을 볼 수 없었다는 말씀도 더하셨다. 그때 아내는 지름이 겨우 한 뼘밖에 안 되는 것이 요강이라니 놀라워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장식장 안에서 제일 탐나는 것을 하나만 고르라는 말씀에, 아내는 주저함이 없이 그 요강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내 줄 만하다 싶을 때 주시라며 도로 제자리에 놓았는데, 어머니께서는 망설임도 없이 아내 품에 꼭 안겨주셨다. 그 후로 이사할 때마다 꼭 챙겨야 할 물건이 되었고, 한때 귀중한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림_심영애(어반스케치 회원)

양반댁 규수가 나들이 갈 때 사용하는 꽃가마용 요강이며, 최상의 상태일 경우 50만 원(1998년 기준)이라고 감정받았다. 순간 귀한 물건들을 화폐단위로 환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밀려왔다. 물론 희소가치를 따져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물건에 얽힌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돈으로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어머니의 가마요강은 어머니의 깔끔한 성격과 정반대되는 것이었지만, 당신의 어머니 혹은 그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지난날들의 흔적이 아닐까 하여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가온다.


글 | 구문회_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정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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