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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3

국립민속박물관 2024년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

음력 정월대보름 밤, 마을에 큰 의례가 벌어진다. 아름드리 당산나무 앞 제단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이 놓이고, 마을 어른들은 술잔을 올리며 마을을 지키는 신에게 마을의 평안을 축원한다. 삼삼오오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제관들의 축문에 맞춰 저마다의 소망을 빌고 소지를 올리며 가족의 안녕을 바라지만 제의가 끝난 뒤 풍물 가락에 맞춰 흥겨운 춤을 추면서는 다함께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

그렇게 큰 제의가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면 당산나무 앞은 다시 고요해진다.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와 마을제의의 구성원이 되지만, 당산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마을 앞 그 자리에서 묵묵히 마을을 지킨다. 제의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종종 그 나무를 찾아 자신과 가정의 복과 운을 소원하고 내일을 다짐한다. 그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나무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이 깃들여져 있다고 굳게 믿는다. 마을의 수호신은 나무이기도 하고 커다란 돌이나 돌탑, 당집, 장승이나 솟대가 되기도 하지만 한 자리에서 오직 마을을 지키는 역할은 모두 같다. 이렇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마을의 믿음, 마을 공동의 의례 이것이 마을신앙이다.

전국의 마을신앙을 직접 찾고 기록하는 사업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 2022년부터 전국을 여섯 개 권역으로 나누고, 매년 해당하는 권역의 마을신앙을 직접 찾아 조사·기록하고 있다. 2022년은 세종과 대전을 포함한 충청도 마을신앙을 조사하여 160개 지역에서 전승되는 마을제의의 모습을 살펴보았으며, 지난해에는 광주광역시를 비롯하여 전라도와 제주도 지역 124개 마을에서 진행되는 제의를 관찰하고 마을신앙의 유래와 제의의 과정을 3권의 보고서에 담았다.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상부마을 풍어제

올해는 대구, 울산을 포함한 경상도가 조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번 조사에 부산은 왜 빠졌을까? 부산광역시는 지난 2020년 ‘2021 부산민속문화의 해’를 앞두고 두 달 동안 부산 전 지역을 조사하여 182개의 마을 제의를 확인하고 4권의 조사보고서를 펴냈기 때문이다. 부산 내에서도 서로 다른 민속문화를 찾기 위해 시작된 마을신앙 조사사업은 이제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민속연구과의 핵심 사업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마을신앙은 동제라 부르는 의례, 마을제의이다. 마을제의는 신격이나 제의의 특성에 따라 또는 지역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른데 경상도에서는 주로 당산제, 동제라고 부른다. 깊은 산속 마을에서는 산신제, 성황제라 부르기도 하고 바닷가 지역에서는 용왕제라 불린다. 마을신앙 조사는 이런 명칭을 가진 마을제의를 면밀히 관찰하여 제의의 유래, 전승 양상, 진행 과정 등은 물론 마을제의의 배경이 되는 마을의 형성 과정과 주변 환경까지 조사하는 것이다.

2024년, 경상권 125개 마을신앙을 조사하다
올해는 경상권 48개 시군 125개 지역의 마을신앙을 조사한다. 이번 조사에는 지역 연구자를 비롯하여 관내 직원까지 110여 명의 조사자가 일제히 투입되어 생생한 민속의 현장을 기록하게 된다. 특히 이번 조사는 지금까지의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 중 가장 많은 수의 조사자가 동시에 조사를 진행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경상권 마을제의는 정월대보름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에 한 조사자가 여러 제의 현장을 돌며 조사하기 어렵다. 오직 그 마을만의 제의를 보고 기록하기에 저마다 마을신앙의 특징이 도드라지게 드러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어떤 마을에서는 마을을 지켜주는 인물이나 신의 탄생일 또는 기념일에 제의를 지내기도 하는데, 많진 않지만 정월대보름 이후에 진행되는 마을제의에도 참관하여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경상도 마을신앙의 보편적이고 특징적인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조사자들이 관찰하고 기록한 마을신앙을 정리하고 하나로 묶어 경상권 마을신앙 조사보고서를 펴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직접 참관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지역을 포함하여 경상권 전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마을신앙 현황조사 역시 진행될 것이다.

마을신앙 조사 과정에서 어려운 점과 보람찬 점
마을제의 조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그 지역에 실제 마을제의가 전해져 내려오는지, 올해도 제의가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모든 마을을 다니며 하나하나 조사할 수 없기에 문헌 자료를 찾고 지역신문 기사를 훑고 문화관광 사이트를 살펴보며 어느 마을에 어떤 마을신앙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또한 지자체 담당 부서나 읍면동 주민센터, 지역 박물관이나 문화원 등을 통해 조사하거나 마을 이장님들의 연락처를 얻어 일일이 전화해 물어보기도 한다. 수화기 너머로 그 지역에서 마을제의를 지낼 예정이라는 답변을 들을 때가 조사자들에게 가장 보람찬 시간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대부분 음력 정월대보름 전날 밤부터 대보름 새벽 사이에 마을제의를 지낸다. 남해안의 용왕제는 며칠씩 지내는 곳도 있다. 따라서 멀리서 온 조사자들도 마을주민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정월대보름 아침을 맞는다. 마을제의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하면서도 대보름의 둥근 달과 아침 해를 바라보며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 역시 조사자에게 뜻깊은 시간일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해산사 해신제

왜 마을신앙에 주목해야 할까?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임관정요》 「풍속」 장에서 하나의 고을에서도 읍리와 향촌 간에 백성들의 풍습民風이 현격히 차이난다고 말했다. 또한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 십리부동속十里不同俗이라는 말처럼 지역, 마을마다 생활방식과 문화가 달랐다. 한 고을 내에서도 마을마다 풍속이 다른 것처럼 마을신앙도 각각의 마을마다 다르다. 오늘날 행정편의에 따라 구획된 행정구역과 달리 예로부터 자연촌락을 구분하고 확인하는 첫 번째 지표는 마을제의[동제]였다. 같은 마을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의례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으며, 혼례와 상례 등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했다. 특히 다른 마을 사람들은 동제에 참가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마을의 금기도 달랐다. 그리고 오랜 기간 이를 지키고 이어나가며 그 마을만의 풍속과 전통을 만들어 갔다. 마을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요한 생활 터전이자 하나의 생활 단위로 혈연집단과는 다른 원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을주민 모두가 함께하는 마을신앙을 조사하면 그 마을의 관습은 물론 역사, 전통과 민속문화에 대해 알 수 있다. 산업화 이후 획일화된 도시와 농촌의 사회구조 속에서 마을만의 동질성과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마을의 도시화나 청장년 세대의 도시집중,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마을신앙의 규모가 축소되거나 단절된 곳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마을신앙은 전통문화의 반영이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되고 거듭나기도 했지만, 마을 공동체의 문화 의식과 염원을 담아 마을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마을도 많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전국 곳곳의 마을신앙을 조사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수백 년 마을의 전통을 확인하고 한 지역에서도 서로 다른 민속문화를 탐구, 기록하여 마을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마을신앙을 보존하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닿아있는 것이다.


글 | 박형준_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온라인 콘텐츠> 1967, 한국의 마을제당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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