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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 우황청심원

소가 전해 준 마음

많은 이들이 매년 한 해가 저물 때마다 돌아오는 새해에 희망을 걸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려보곤 한다. 이와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돌아오는 2021 신축년辛丑年에 대한 희망을 담아 소띠 해 맞이 특별전 <우리 곁에 있소>를 연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이 전시에서는 한국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소와 사람이 맺어온 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고찰한다. 이 글에서는 전시에서 다뤄진 유물과 자료들 속에서 하나를 선정하여 조금 긴 호흡으로 풀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 수능시험이 있었다. 올해는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예년처럼 시험장 앞의 시끌벅적한 응원 구호도, 학부모들의 기원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면 예전에 필자가 그 시험을 보았던 날을 잠깐이나마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아침 일찍 시험장 앞까지 필자를 배웅한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다. 그날 시험장 정문으로 들어가려는 내게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말과 함께 큼직한 환약 하나를 주었다. 아마도 내가 긴장한 것이 역력했던 모양이다. 그 약을 먹고, 내 마음이 실제로 누그러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사히 시험을 치른 것은 어머니의 정성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필자의 기억 속, 어머니가 준 그 환약은 노란 금박이 반짝이는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이었다.

 

우황청심원은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이라고도 하며, 11세기 말, 중국 송나라 시대의 의서인 『太平惠民和劑局方태평혜민화제국방』에서 이에 대한 기록이 발견될 정도로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진 처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7세기 초 허준許浚, 1539~1615이 쓴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통해 중국 의학서에 전해지는 약재 구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처방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우황청심원은 대부분 제약회사들이 생산하는 상품화된 제품인데 이처럼 오래된 의학적 전통이, 산업화된 현대의 맥락에서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늘날 우황청심원은 전문의의 진료나 처방전이 없어도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우황청심원은 대체로 두근거림이나 신경과민, 불안증과 같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 볼 수 있는 증상에 크게 부담 없이 쓰이는 것 같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서 1990년대 초반에는 우황청심원이 만병통치약이라거나 술 깨는 약으로도 여겨졌다고 한다. 일반인의 인식에 우황청심원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비타민이나 소화제 같이 일상적인 약제의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의보감』에 묘사된, 우황청심원의 효능은 일반의 인식과는 다소 다르다.

급작스러운 중풍卒中風이나, 사람과 현실을 알아보지 못하고人事不省, 가래와 침이 막히며, 정신이 혼미하고, 말하는 것이 둔하고 더듬거리며蹇澁, 입과 눈이 비틀어져 쏠리고口眼喎斜, 손발이 따라주지 않는不遂 등의 증상을 다스린다. -우황청심원,『동의보감』, 「잡병편」 중

여기서 묘사하는 증상은 오늘날의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서는 혈관이 막혀 뇌의 조직이 괴사하는 질환인 뇌경색에 걸린 사람의 경우와 유사하다고 한다. 즉, 우황청심원은 꽤나 중대한 뇌신경질환에 사용하는 치료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우황청심원의 오남용을 경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황청심원을 일상적인 약제로 쓰는 관행은 매우 오래된 것 같다.
조선 시대에는 납일臘日 1)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약을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사용되는 약을 납약臘藥이라 하는데, 우황청심원이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납약에는 값비싼 약재가 사용되므로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주로 궁궐의 내의원에서만 제조되었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여러 다른 관청에서도 생산되어 하위 관료들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리고 일반의 부유층에서도 비슷한 관행이 있었던 것 같다. 납약을 선물하는 관행이 점차로 광범위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선물 받은 납약은 특정한 병증에 대한 치료제라기보다는 각 가정의 상비약으로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사향麝香·서각犀角·대두황권大豆黃卷 등 삼십여 가지 한약재가 들어가는 우황청심원의 처방에서 단연 대표가 될 만한 것은 바로 우황牛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우황은 혼백魂魄을 안정시키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놀라는 증상驚悸과 실없이 웃는 미친 증상癲狂 을 치료하며, 건망健忘을 다스린다고 한다. 신경성 질환에 안정 효과를 내는 우황청심원의 주요 효능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우황은 소의 쓸개에 생긴 담석膽石으로, 약재로서는 예나 지금이나 귀하게 여겨진다. 물론 오늘날보다는 전근대 사회에서 그것은 더더욱 귀한 것이었다. 실록에는 ‘우황 1부의 값이 거의 베 30여 필이나 되므로 백성이 매우 괴로워 한다중종23년’는 기사가 전하기도 한다. 소의 도살이 금기시되던 농경사회에서, 소의 배를 갈라야만 얻을 수 있고, 모든 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면 그것이 왜 귀하고 가치 있게 여겨졌는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소는 하품 밖에는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또 ‘소는 아낌없이 준다’고도 한다. 이는 한국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소가 물질자원으로서 얼마나 유용하게 계발됐는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는 실로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병든 소의 쓸개에서 꺼낸 담석마저도 우황이라 하여 약에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가 준 것은 단지 물질적인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능시험날 내가 우황청심원에서 보았듯, 소는 우리에게 건강과 심신의 안정과 어머니의 마음까지도 대신 전해 준 게 아닐까.

소띠 해 특별전 <우리 곁에 있소>는 2021년 3월 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 열린다. 이 전시에서는 전통적인 십이지의 체계 속에서 소가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시작으로, 우리 생활문화 속에서 소가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무게를 두어 살핀다. 전통사회에서는 축력을 제공하는 ‘일소’로 여겨졌던 소가, 오늘날 고기나 우유를 제공하는 ‘고기소’, ‘젖소’로 변화한 맥락을 짚어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함없이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소의 물질자원으로서의 가치를 확인한다. 또한 이 전시에서는 ‘우황청심원’과 같이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민속자료들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의 <목우도>나, 화가 김기창의 작품으로 알려진 부산박물관의 <우도> 등 다른 박물관·미술관의 유물과 작품, 그리고 기업내 아키비스트를 운영중인 ㈜매일유업의 소장품 등 폭넓은 협력 속에서 비교적 다양하고 접하기 어려운 자료들이 선보인다.

1) 동지가 지난 후 세 번째 미일(未日)

참고문헌
· 신동원, 2004,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역사비평사
· 허준, 김의건 譯, 1984, 『(국역)동의보감』, 대성출판사
· 『중종실록中宗實錄』 63권
· <우황청심제劑 한해 1천880만개 “꿀꺽”>, 매일경제, 1991. 7. 6.


글 | 최효찬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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