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박물관이 소장한 | 성냥

불티났던 성냥! 유물이 되어 박물관에 모셔지다

성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집안 곳곳에 성냥을 찾는 사람들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안채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랑채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아, 성냥 어디 있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을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성냥은 840점으로, 시대별로는 일제강점기에서 현대까지, 형태별로는 사각형·육각형·원통형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성냥을 기증하는 사례가 꽤 있다. 기증자들이 학창시절 취미로 모아 두었던 성냥으로, 그 형태는 광고용 성냥이 대부분이다. 자주 이용하는 식당이나 커피숍 그리고 국내 여행 당시 방문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수집했다. 이런 광고용 성냥갑에는 상호·전화번호·약도 등이 디자인되어 있다. 반면 박물관에서 유물로 구입한 성냥은 일제강점기에 생산되었거나, 광복 후 생산되어 가정에서 주로 사용했던 덕용1) 성냥 종류들이 대부분이다. 덕용 성냥갑에는 제조 회사명·상품명·가격 등이 디자인되어 있다.

원래 성냥이라는 말은 한자에서 비롯되었다. 한자어인 ‘석류황石硫黃’에서 비롯되었으며 “셕류황-셕뉴황-셕뉴왕-셕냥-셩냥-성냥”과 같은 음분변화를 거쳐 오늘날 ‘성냥’이 되었다2). 성냥은 1880년 김홍집을 따라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개화 승려인 이동인이 가져오면서 처음 소개되었으며, 1917년 일본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성냥공장 ‘조선인촌’에서 성냥을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조선총독부와 일본 기업이 성냥 산업을 독점하였고, 한국 기업이 본격적으로 성냥을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 1950년대부터이다. 성냥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는 전국에 300개가 넘는 성냥공장들이 건립되기도 했으며, 1972년에는 성냥 수출액을 200만 달러로 전망하는 기사3)도 확인할 수 있다.

성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4) 먼저 성냥의 재료가 되는 목재 구입부터 시작한다. 성냥 제작에 사용되는 목재는 주로 이태리포플러로, 성장 속도가 빠르고 가공하기가 쉽다. 그래서 성냥뿐 아니라, 젓가락, 이쑤시개, 합판 등에도 사용한다. 이외에도 백양나무나 당굴피나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음은 축목 작업이라고 하여 성냥의 몸통인 성냥개비이하 축목이라고 칭함를 제작하는 것이다. 목재를 옮기고 자르는 작업이다 보니 위험성이 높아 주로 남자들이 한다. 축목이 가능한 목재를 선별한 다음 일정한 크기약 40cm로 자른 후 목재 껍질을 제거한다. 껍질을 제거한 목재는 삭편기일명 묵기라고 하는 기계를 이용하여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진다. 이때 판의 두께는 2.2mm로 이 작업은 매우 정밀해서 직원 중에서도 최상급 기술자가 담당하였다. 이 작업이 끝나면 바로 합판을 일정한 길이로 자르는 절삭 작업을 한다. 축목의 길이는 4.2cm와 4.8cm 두 종류가 있다. 잘린 축목은 인풀 작업이라고 하여 인산인산+암모늄과 물을 섞은 액체에 담근다.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성냥을 사용한 후 바닥에 버릴 때 2차 발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성냥 제조 공정

인풀 작업이 끝나면 축목을 건조하고 선별하는 작업을 한다. 축목 건조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축목이 건조가 덜 되면 다음 단계인 두약 작업에서 두약이 축목에 잘 묻지 않고 흘러내려 상품으로 판매할 수 없게 된다. 건조를 끝낸 축목은 선별 기계로 옮겨져 폭이 2.2mm를 넘는 것을 선별한 후, 작업 도중 부러지거나 길이에 오차가 있는 것을 선별한다.

성냥 제작의 마지막 단계는 두약 작업이다. 축목에 발화를 시키는 두약을 바르는 것인데, 얼핏 보면 두약 작업이 쉬울 수 있지만, 매우 정밀하고 세밀한 과정을 거친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성냥도 과학이다’라고 할 수 있다. 두약 제조 방법은 전국의 성냥공장마다 다르며, 일종의 영업 비밀이다. 두약을 만들 때 어떤 약품을 얼마만큼의 비율로 제조하느냐에 따라 성냥의 성능이 달라진다. 특히 두약은 화학약품으로, 허가된 직원만 제조할 수 있다. 그래서 두약의 비율은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두약의 색깔이 일반적으로는 붉은색이지만 구매자의 요청에 따라 색깔을 달리 할 수도 있다.

두약 제조가 끝나면 윤전기를 가동한다. 윤전기는 축목에 두약을 찍는 기계로, 건조한 축목을 윤전기에 보내면 윤전기 바라고 하는 틀에 축목이 꽂힌다. 이때 윤전기 바에 약 85%의 축목이 꽂혀야 정상인 것이다. 축목이 꽂힌 윤전기 바는 축목을 파라핀에 찍는다. 파라핀을 찍는 이유는 발화촉진제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두약을 찍고, 두약을 찍은 축목은 윤전기를 한 바퀴 돌면서 건조가 되어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진 성냥은 최종 검사를 거쳐 하나의 성냥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처럼 너무나 손쉽게 불을 켜고 버리는 성냥 하나를 만드는데 약 20번의 크고 작은 공정을 거친다.

완성된 성냥은 포장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성냥과 함께 중요한 것이 바로 성냥갑이었다. 형태면에서는 사각형에서부터 팔각형까지, 디자인 면에서 성냥갑 표지로 길상吉祥을 의미하는 상징물에서 유명연예인까지 매우 다양했다. 예를 들어, 의성 성광성냥공업사에서 ‘향로’의 성냥갑에 오리를 그려넣어 동해안 어촌 지역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오리가 물에 빠지지 않고 생선도 잘 잡는 동물로 여겨져, 오리가 그려진 성냥을 사용하면 사고도 없고 조업도 잘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냥은 그 지역을 대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충남 천안의 아리랑 성냥, 부산의 유엔 성냥, 경북 영주의 돈표 성냥과 의성의 향로 성냥 등이 있다. 이는 마치 소주 이름만으로 생산 지역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성냥갑

성냥은 발화 도구뿐 아니라 선물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전통적으로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 특별히 부엌과 불을 관장하는 조왕에게 제를 지냈다. 이는 취사와 난방에서 필수 요소인 불의 가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냥은 이사 후 처음으로 집을 외부인에게 선보이는 집들이 선물로 인기가 높았다. 작은 불씨에서 성냥불이 켜지듯 가세家勢가 펼쳐지라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냥은 라이터, 가스레인지, 보일러 등의 등장으로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성냥은 다른 기능을 추가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광고였다. 음식점이나 숙박업소 같은 곳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성냥은 사용되었다. 광고용 성냥은 대부분 휴대용으로 성냥갑의 크기가 작았다. 이런 이유로 당시 광고용 성냥을 취미로 수집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광고 매체의 등장으로 점차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성냥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니 성냥을 볼 수조차 없다. 그 옛날 불을 지펴 밥을 짓고, 군불을 때 난방을 하던 것이 지금은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과 보일러의 난방 버튼만 누르면 되고, 담배에 불을 붙일 때는 라이터를 켜면 된다. 20~30년 전만 해도 집안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성냥이 이제는 박물관에 가야지만 볼 수 있을 만큼 희귀한 물건이 되었다.

성냥의 가치는 발화 도구, 집들이 선물, 광고 매체로만 한정할 수 없다. 성냥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성냥은 한국 근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일제강점기 때 성냥공장 여공을 통해 부당한 대우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조선 노동자들의 삶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지역을 거점으로 건립된 성냥공장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성냥을 생산하는 공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성냥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코로나19로 힘든 지금,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성냥을 통해 희망이라는 불씨를 지펴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 배영동, 「집들이(入宅) 풍속의 전통과 변화」, 『비교민속학 32』, 비교민속학회, 2006.
· 국립민속박물관, 『의성 성광성냥공업사와 극장 간판화가 백춘태 –사라져 가는 직업」, 2012.
· 김양섭, 「해방 전후기 인천 성냥제조업의 변화」, 『인천학 연구 22』, 인천학연구원, 2015.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화·생·방·전 – 불·성냥·소방 그리고 인천』, 2016.

1)성냥갑에 750개 이상의 성냥개비가 들어가 있는 것을 말함.
2)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참조.(www.korean.go.kr)
3)『동아일보』 「이색 수출(異色輸出) 성냥 올 2백만 달러 불꽃처럼 번질 전망(1972년 12월 25일자 기사),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화·생·방·전 – 불·성냥·소방 그리고 인천』, 2016 참고
4)작업 과정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012년 경상북도 의성군 소재 ‘의성 성광성냥공업사’의 성냥 제작 과정을 참여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기술하였다.


글 | 손대원_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원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