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원구에서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의 역명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개정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역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지역의 이미지를 낙후된 곳으로 고착시킨다는 주민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주민 공모 결과 당고개란 이름 대신 ‘불암산역’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채택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4호선을 자주 이용하던 필자로서는 종착역으로 익숙했던 당고개역이 사라진다고 하니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지명은 우리들의 삶과 함께 태어나고 변화하고 사라진다. 산·강·들과 같은 자연 삼라만상의 이름에서 시작해 마을과 도시의 이름이 생성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시설물들을 축조하면서 이에 걸맞은 수많은 지명이 생겨난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지하철역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역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지하철을 탄 서울史』는 제목부터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불러왔던 지하철역의 이름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를 13가지 주제로 심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2024년 기준 서울 지역 지하철역은 331개, 수도권 전체로 헤아리면 624개나 되는 역이 있다. 수백 개나 되는 역 이름 중에는 인근 지명을 그대로 따온 것도 있고,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설 이름을 따온 것도 있다. 특히 서울은 오랜 역사를 지닌 지역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이나 유적, 인물과 관련되어 생성된 지명들이 매우 많으며 그 지명들이 역 이름에 그대로 반영된 경우가 많다. 제기동역, 동묘앞역과 같이 조선시대 왕의 제례와 관련된 이름도 있고 봉은사역, 미아역과 같이 사찰의 이름에서 유래된 역명도 있다. 봉화산역, 양재역처럼 조선시대 교통·통신 시설과 관련된 이름들도 있고 염창역, 잠실역, 송파역과 같이 조선시대 산업시설과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격변했던 우리 현대사를 담은 화랑대역, 올림픽공원역, 구로디지털단지역과 같은 이름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역 이름에 얽힌 각각의 역사를 주제별로 한 장 한 장 차근차근 풀어낸다.
1장에서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지하철 역명에 담긴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설명한다. 서울 지명의 유형과 특징, 그리고 역사 문화콘텐츠로 지명의 가치를 언급하면서 이 책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2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조선시대 정신문화와 연계된 지명들을 분야별로 풀어내었다. 2장은 왕의 제례와 유교 신앙과 관련된 역명, 3장에서는 불교문화와 사찰과 관련된 역명, 4장에서는 서울 민간신앙과 공동체 의례와 관련된 역명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5장에서는 광흥창역을 통해 조선시대 관리들의 녹봉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었고, 6장에서는 역·원·봉수와 같이 교통통신망과 관련된 역 이야기를 담아냈다. 7장부터 9장까지는 조선시대 산업과 관련된 역에 대한 이야기다. 7장은 송파, 광나루, 한강진 등에서 활동한 서울 경강상인들과 물자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고 8장은 잠실, 잠원역과 관련된 조선시대 양잠 정책을, 9장에서는 염창역과 서울 소금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마지막 10장부터 13장까지는 광복 이후 현대사 속 한 장면을 상징하는 역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창군 이야기, 광복 후 대학 설립의 과정,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체육대회 관련 이야기, 마지막으로 구로공단 조성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너무나 익숙했던 이름 속에 담겨 있는 생소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차역으로만 알고 있었던 청량리역이 사실은 고려시대 세워진 청량사淸凉寺라는 사찰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노량진 장승이 팔도 모든 장승 중 우두머리로 여겨졌던 까닭에 노량진역 남쪽 지역에 장승배기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도, 현재 노원역과 조선시대 노원역의 위치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필자가 이 책으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다.
또 마침 서두에 언급했던 당고개역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었다. 당고개는 원래 당집이나 서낭당이 있던 고개를 일컫는 말로 당현堂峴이라고도 했는데, 현재 역이 위치한 상계동 외에도 하왕십리, 창신동, 신계동 등 여러 지역에서 같은 지명이 나타난다. 당고개역 주변에도 과거 여행객들이 고개를 넘을 때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던 돌을 쌓아 올린 서낭당이 있었고, 그 옆에 당집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민간신앙이 활발한 지역이어서인지 지금도 다른 지역에 비해 무당집들이 많은 편이고, 아직까지 매년 음력 1월 15일이면 서낭제를 지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문화적 배경이 있었기에 1993년 4호선 개통 당시 ‘당고개역’이 역명으로 채택되어 30여 년간 불리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서낭당과 당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이며, 최근 역 주변으로 지역 재정비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주민들의 73.4%가 새로운 역명을 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당고개역’이란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이름 속에 얽혀있던 이야기들도 점차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갈 것이다.
이 책은 여러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로 역사 문화콘텐츠로서 지명의 의미를 강조한다. 지명은 문명과 교역의 발달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변화하고 축적되는 문화 활동의 산물로 우리 민족의 삶의 궤도와도 같다. 따라서 단순한 행정 편의적 발상이나 이기적 상업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변경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집필진은 누차 강조하고 있다.
지명의 역사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천여 년 이어져 온 서울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일임을, 13편의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상과 방식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것처럼 지명이 바뀌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며, 지하철역 이름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앞으로도 바뀌어 갈 것이다. 굳이 옛것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듯, 사라진 지명 속에 우리 앞 세대 선조들의 삶이 담겨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만약 앞으로 50년 뒤 『지하철을 탄 서울사』 2편이 나온다면, 현재 우리의 어떤 모습이 지명이란 이름으로 남을지 잠시 상상해 보길 바란다.
글 | 윤나영_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민속소식』 2024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