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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큐레이션

우리 기도문, “비나이다 비나이다”가 펼쳐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한국인의 고유신앙:
영등·수목·칠성』

마치 부제처럼 붙어 있는 “비나이다 비나이다.”는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비손하며 오랫동안 전해 온 기도문이다. 이는 정성을 들여 기도를 올릴 때 나오는 첫마디이기도 하고, 끝마디이기도 하다.

때로 ‘고유신앙’이라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성이 결여된 신앙이라는 시각이 전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머리글에서 그가 펼쳐 내고자 하는 고유신앙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시간)의 흐름 안에서 지금까지 “끈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긴 세월을 통해 인식된 믿음을 기반하고 있는 우리의 신앙이 곧 고유신앙이라고 말한다(5쪽). 민속학에서는 이를 ‘민간신앙’의 범주 안에서 다루고 있다.

민간신앙은 글자 뜻 그대로 백성들 사이에서 전승되어 온 신앙이다. 민속의 연구 대상이 민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일상적으로 백성으로 인식하지만, 오로지 백성에게만 한정 짓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 살아온 모든 사람을 기반으로 한다. 민간신앙은 초기 역사부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되고 형성되어 온 신앙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민간신앙은 저자가 말하는 고유신앙과 일치한다.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여인들이 올린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그 여인들의 든든한 지킴이가 누구인지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그 해답은 이 땅의 백성들을 통해 이어져 온 우리의 고유신앙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고유신앙』은 민간신앙의 광범위한 범주 안에서 영등과 수목, 칠성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펼쳐 내고 있다. 고대부터 인간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에 임하는 신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이 생을 지속하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농사와 어업의 풍요를 가져올 바람의 신, 영등. 위험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받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집과 마을 입구를 지켜주는 나무에 좌정한 수목신. 이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수명장수를 돌보는 하늘의 신, 칠성까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한국인의 고유신앙: 영등·수목·칠성』 | 김준호(지은이) | 2023.12.12. | 학이사(이상사)

책은 1부 영등 신앙, 2부 수목 신앙, 3부 칠성 신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은 독립적인 구성을 선보인다.

1부, 영등 신앙에서는 봄이 되면 한반도 남쪽에서부터 불어 올라오는 바람의 신, ‘영등(이월)’에 대해 펼쳐 낸다.

1부에서는 “영등할미”라 불리는 이 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 문화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지 파헤친다. 물론 영등할미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저자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마치 영등할미가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손심심 씨의 삽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신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길라잡이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이 책의 글과 삽화를 통해 충분히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다. 그 바람을 몰고 잠시 잠깐 이 땅에 내려왔다 가시는 영등에게 기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2부, 수목 신앙은 나무와 인간의 연결고리에 집중한다.

인간의 삶을 안정적일 수 있게 해 주는 첫 번째 공간인 ‘집’에 나무가 쓰이고, 이곳에 나무의 신명神明이 좌정한다. 집이라는 건축물의 대들보는, 식구들 사이의 아버지와 같다. 그래서 대들보에 모셔진 성주는 아버지인 대주大主의 역할을 한다. 본 장에서는 나무가 지니고 있는 변별성에도 주목한다. 수많은 나무들 중 우리네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은행나무, 회화나무, 향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 낸다.

3부, 칠성 신앙은 우리 민족이 하늘을 어떻게 삶 안으로 가져왔는지 보여준다.

하늘을 올려 보며 정성을 다하던 기도는 급기야 하늘을 삶 안의 놀이판인 윷판으로 만들어 낸다. 더불어 우리의 윷판을 주목한 외국인 인류학자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의 연구성과를 소개한다.

저자 김준호는 18세에 국악인의 삶에 들어선 이후, 여러 국악 명인들에게 수학하고 정진했다. 2014년에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 동래지신밟기 예능보유자가 되어 우리의 무형유산을 잇고 있다. 그는 풍속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 지금껏 “공부하다 죽어라.”를 신조로 민속학자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2023년에 펼쳐 낸 『한국인의 고유신앙: 영등·수목·칠성』은 그가 자라며 보아온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풀어낸 이야기다. 그의 삶이 학인學人의 길에 들어선 뒤 얼마나 치열했을지, 그 독서와 공부 그리고 현장에서의 땀의 양이 얼마나 방대할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처음 보면 다소 딱딱해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책을 읽고, 잠시 마음을 담아 보길 권한다. 무한한 시간 안에서, 끊임없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의 삶이 보인다. 한국인의 심성 안에 뿌리내린 고유신앙이 어떻게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행해지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 엿보게 한다. 경남 사천의 이또분 할매가 영등바람을 올리며 손을 비비며, 가만히 이야기한다. 바람신에게 소박한 기도의 말을 올린다.

영등할매 영등할매요 영등할매 영등할매요
우짜든지 우리집안 편안하게 해주시고
배사업하는 저거아부지 뱃길편케 해주시고
우리아이들 안아푸고 건강하게 해주시소
내하나야 우찌되던 내자석들 잘되게 해주시소
영험하신 영등할매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책, 62쪽)

이월 초하루 영등에게 올리는 기도는 우리 집에서만 하는 일이 아니다. 옆집 할매도 올리고, 또 그 옆집 할매도 올린다. 농사를 짓고 자손이 있는 집이면 모두 올리는 기도다. 그래서, 내 집의 평안을 기도하는 것이 단순히 내 집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다. 내 집의 평안은 옆집의 평안이 되고, 마을 공동체 모두의 평안이 된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다.

‘북 큐레이션’은 문화계 또는 민속학 분야에서 출판된 도서를 서평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오선영_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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