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은 2024년 8월 20일부터 11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 2에서 특별전 《요즘 커피》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밥심’보다 ‘커피 수혈’이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리는 요즘, 우리에게 커피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본다. 제1부 일상×커피에서는 외래 음료에서 민속 음료가 되기까지 커피의 한국 적응기를 소개하고, 제2부 연결∞커피에서는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는지 그 이유를 묻고 답한다.
밥보다 커피!
2021년 국민영양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많이 먹는 음식 1위는 배추김치, 2위는 커피, 3위가 밥이다. 밥심의 민족인 한국인이 어쩌다가 밥보다 커피를 더 많이 먹게 된 걸까? 이번 전시는 이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답을 찾기 위해 10대부터 60대까지 500여 명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기운(27%)”, “습관(26%)”, “맛(23%)”, “대화의 매개체(12%)”, “수험 생활의 동반자(10%)”, “취미(1%)”로 커피를 마신다고 말한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조금은 서글프다. 맛있어서, 취미를 위해 마시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잠을 깨기 위해, 다들 마시니까 어쩔 수 없이 마시기도 한다.
커피를 연구하는 전문가 네 명의 생각도 들어보았다. 전문가들은 모두 한국인은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카페인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살아남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한국인은 커피에서 맛, 멋, 정, 여유를 찾는 특유의 해학적 면모를 보인다고 한다.
맛: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인은 커피에 무언가를 섞어가며 입맛에 맞추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아이스커피, 1950년대 달걀노른자를 넣은 모닝커피, 1970년대 믹스커피, 요즘 유행하는 아샷추, 달고나커피 등 ‘비빔 커피’가 그 예이다.
멋: 커피를 마시는 공간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해 변해 왔다. 우리는 흥의 민족이 아니던가. 커피를 파는 곳은 단순히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기분을 함께 팔았고, 늘 핫플레이스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정: ‘정’의 민족 한국인은 커피 인심도 후하다고 한다. 기념일에 커피를 선물하고, 손님을 대접할 때 커피를 내놓으며, 어딘가를 방문할 때 커피를 사 간다. 지인에게 커피 한잔하자는 인사를 하고, 경로당 찬장·사무실 탕비실·병원 대기실·식당 출입구 등 사람이 모이고 머무는 곳에는 커피믹스나 커피 자판기가 놓여 있다.
홈: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집밥의 민족답게 집에서도 커피를 즐기려는 문화가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한국인이 홈 카페를 즐기는 이유는 커피에 대한 로망과 편안함 그 사이 어딘가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스트셀러 아메리카노, 스테디셀러 믹스커피
우리가 즐겨 마시는 커피는 무엇일까? 국립민속박물관의 현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위 아메리카노, 2위 라테, 3위 믹스커피이다. 아메리카노가 베스트셀러인 것은 예상한 결과지만 믹스커피가 3위라는 것은 조금 놀랍다. 믹스커피는 나이 든 과장님이나 드시는 옛날 커피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미국식 커피 아메리카노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불과 삼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늘도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노랫말처럼 아메리카노는 우리의 일상 음료가 되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지친 일상에 활력을 주고, 잠을 깨고 집중력을 높이기에 적당하며, 가장 저렴하고 무난하면서 가벼운 맛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믹스커피는 어떨까? 응답자의 48%가 첫 커피로 믹스커피를 꼽았고, 자칭 믹스커피 마니아들은 믹스커피를 “인생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이 모두 담겨 있다나?
“1%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1%”라는 멋진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의 믹스커피는 라테커피, 옛날 커피로 여겨지면서도 여전히 많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사랑받고 있다. 한국인의 믹스커피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믹스커피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을 직접 가보았다. 전시장에서는 서울 동묘시장, 강릉 안목해변, 경주 김유신장군묘, 전주 버스터미널 등을 돌아다니며 시그니처 믹스커피를 마시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커피 한잔하시죠!
“식사 한번 하시죠.”라는 말보다 “커피 한잔하시죠.”라는 인사말이 더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커피 한 잔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매개체, 대화와 관계를 이어가는 수단,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원동력…. 설문 조사와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커피는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그 커피가 믹스커피이든 아이스아메리카노이든 스페셜티커피이든 캡슐커피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우리는 커피로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다독인다. 그리고 너, 나, 우리 사이를 엮어간다. 전시에서는 커피로 연결되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안에는 커피를 마시며 엄마를 떠올리는 딸의 아련한 이야기, 사회생활을 위해 커피를 배운 직장인의 짠한 이야기, 커피 한 잔을 두고 원하는 대학과 직장을 꿈꾸는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옛날에도 그랬다
우리의 일상은 꽤 오래전부터 커피와 함께했다. 1880년대 말 부산 해관에서 일한 민건호(閔建鎬, 1843~1920)는 업무 관계자들에게 커피를 대접받기도 하고 선물하기도 했다. 1930년대 이상(李箱, 1910~1937)을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푹 끓인 커피는 일종의 ‘도락(道樂)’으로 여겨졌다. 1950년대 일자리를 찾던 많은 사람에게 다방 커피 한 잔은 하루를 버틸 힘이 되었다. 고독의 시인 김현승(金顯承, 1913~1975)은 직접 내린 커피, 또는 다방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서점보다 카페 간판이 더 흔한 1980년대 대학가 카페에는 시대를 논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대학생들이 있었고, 1990년대 거리에는 테이크아웃(Take Out) 커피를 들고 활보하는 엑스(X)세대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점심시간에는 대용량 커피를 들고 오전 업무의 스트레스를 잊으며, 웃음 짓는 직장인들이 있다. 잔 안에 담긴 커피의 색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항상 커피와 함께하고 있다. 전시에서는 늘 우리 곁에 있는 커피를 이야기한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사용한 오얏꽃무늬 커피잔, 조선의 관광 상품 인삼커피, 박완서가 기절하게 쓴맛이라고 했던 씨레이션(C-Ration) 커피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커피도 소개한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재미있는 전시란?
전시를 기획하는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라면 선배와 동료에게 으레 듣는 질문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전시의 메시지가 무엇이냐? 둘째, 사람 냄새가 나는 전시냐? 셋째, 재미있는 전시냐? 관람객이나 동종 업계의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전시를 준비하며 이 세 가지를 갖추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실물 중심 역사 계열 전시를 선호하는 필자의 가치관과 취향을 내려놓는 과감한 선택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메시지, 사람 냄새, 재미가 없다고 할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이번 전시를 보는 몇 가지 팁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이번 전시에 ‘메시지’는 없다.
전시에서는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오늘날의 현상을 이야기한다. 왜 커피를 많이 마시지? 옛날에는 어땠지? 우리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이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는 전시이다. 그러니 전시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그냥 전시를 보면서 나는 어떠한지,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무엇인지, 나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둘째,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요즘’은 오늘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30년대, 1970년대에도 그 시대의 요즘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대(當代)의 요즘 커피를 이야기한다. 그때 그 시절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전달하려 했다. 패널과 레이블 곳곳에 숨겨진 큰따옴표 안에 그 이야기를 담아 두었으니, 옛날과 요즘 ‘사람’의 커피 ‘냄새’ 나는 이야기를 전시장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예) 다방의 일게(一憩)가 신선한 도락이요, 우아한 예의(이상, “추등잡필(秋等雜筆)”, 『매일신보』, 1936. 10. 14.)
셋째, 전시의 ‘재미’를 위해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요소를 전시의 처음과 끝에 배치했다.
시작은 커피 자판기이다. 커피 취향을 묻는 말에 답한 후, 선택한 커피 한 잔이 담긴 그림 카드를 가져갈 수 있다. 마지막에는 커피를 마시는 이유에 스티커를 붙이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이 코너를 통해 우리에게 커피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우리는 커피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팍팍한 요즘, 이번 전시가 커피와 나, 그리고 우리를 생각해보는 한 잔의 여유로움이 되었으면 한다.
글 | 오아란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